[놀뫼단상] 축제와 숙제

놀뫼신문
2019-07-24

정경일 (건양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과 교수)



오랜 만에 반가운 소식 하나가 날아들었다. 지난 7월 6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우리 고장의 대표적 유교 문화유산인 돈암서원을 비롯한 한국의 서원을 세계유산으로 결정하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닌 유산을 보호하고 이를 미래 세대에 온전히 물려주기 위해 지정하는 문화재이다. 그러므로 돈암서원이 이 유산으로 선정되었다는 것은 이제 돈암서원은 단지 논산, 나아가 대한민국의 문화재가 아니라 온 인류의 정신세계를 관통하는 위대한 문화유산임을 온 세계가 인정한 것이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며 논산 시민 모두가 함께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할 축제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는 모두의 축제 


유네스코가 선정하는 세계유산은 그 모양이 매우 독특하면서도 다양하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평원에서부터 이집트의 피라미드, 호주의 산호초와 남미대륙의 바로크 성당에 이르기까지 모두 인류의 유산이다. ‘세계유산’이라는 특별한 개념이 나타난 것은, 이 유산들이 특정 소재지와 상관없이 모든 인류에게 속하는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유산이란 우리가 선조로부터 물려받아 오늘날 그 속에 살고 있으며, 앞으로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자산이다. 자연유산과 문화유산 모두 다른 어느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우리들의 삶과 영감의 원천이다. 그리고 이것들이 세계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지정되고 관리되는 것은 이 유산이 가지고 있는 가치가 한 나라에 머물지 않고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우리 앞에 놓인 숙제는 이제부터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선정의 기쁨은 잠시이고,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면 과제는 더 늘어난다. 유네스코는 한국의 서원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서원의 통합 보존관리 방안 마련’을 권고했다. 물론 관리와 보존도 중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문화재청과 지자체,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전문가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9개 서원을 아우르는 통합적인 보존관리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시설물의 보존이나 관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연 이를 이용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우리의 일치된 인식이다. 오래전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 한 권이 대단한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심어져 있는 유교적 전통과 인식체계가 현대적인 사회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주장을 담은 이 책은, 과연 현대사회에서 유학이 해야 할 또는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을 던져주었고, 이러한 물음은 현재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인다.  21세기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시대정신을 어떻게 유교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이를 자라나는 세대에게 전수하느냐 하는 것은 단순히 서원 근처에 몇 개의 건물을 새로 짓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예절위주의 교육프로그램을 운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새로운 가치관의 정립이 숙제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종종 논산시 유림들의 모임이 개최되곤 한다. 그때마다 유심히 보면 모이는 분들의 연령층이 매우 높다. ‘청년’ 유림들의 모임인데도 60대의 참석자들이 대부분이다. 이것이 현재 우리 유교문화가 처해 있는 현실이다. 유교적 전통이 젊은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전수되고 재해석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통로가 막혀 있음이 너무 안타깝다. 

이제 서원은 특정 가문이나 계층의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것이고 향후 이 사회를 짊어지고 나갈 젊은 세대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해 가야 한다. 자칫 유학이 고리타분한 노인들만의 것이라거나, 한복을 입고 엎드려 절하는 것만을 예절의 기본이라고 가르치고 만다면 서원은 그저 건물로만 남게 될 것이다. 

기호유학의 중심지인 논산은 이제 충남유교문화원과 함께 돈암서원이라고 하는 두 개의 커다란 유교적 자산을 가지게 되었다.  이 두 개의 날개가 조화를 이룰 때 논산의 문화는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