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녀봉은 나에게 아주 특별한 장소이다. 나뿐이 아니라 강경에 사는 사람이나 강경을 거쳐간 사람 모두에게 특별한 장소로 기억에 남았을 것이다. ‘강경 사람’으로 옥녀봉에서 사진 한 장 찍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중학교에 다닐 때 옥녀봉에서 사진을 찍은 적이 여러 번이다. 중학교 3학년 어느 날인가 하숙집 딸인 초등학교 4학년인 영주와 함께 옥녀봉에 올라가 사진을 찍은 일이 있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몇 년 사이에 세상이 많이 달라져 사진을 찍는 일이 더 빈번하였다. 무슨 놀이를 가듯이 어떤 명소, 강경에서는 옥녀봉과 돌산이나 나루터에 가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옥녀봉에는 아주 오래된 팽나무가 가지를 비스듬히 드리우고 있어서, 지금은 둥치만 남았지만, 그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는 일은 아주 멋을 부리는 일이었다. 또 옥녀봉에 앉아 강 건너 들판에 드리운 저녁놀을 배경으로 찍는 사진도 일품이었다.
■ 망가진 옥녀봉의 아름다움
벌써 50년이 넘은 일이지만, 나는 지금도 옥녀봉에 오를 때마다 사진 찍던 그때를 회상한다. 그러면 어느덧 팍팍하던 마음이 느긋해진다. 그래서 강경에 갈 때마다 옥녀봉에 올라갔다. 이 역시 오래전 일이지만 내가 논산문인협회장을 할 때 옥녀봉에서 젓갈축제의 한 행사로 시 낭송의 밤을 기획하여 진행했던 적이 있다. 당시 심대평 지사님과 임성규 시장님이 오셔서 시를 낭송하시기로 했던 터라 내가 진행을 맡았었다. 심 지사님이, 예상 밖으로 행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셔서 지사님이 가시면 자리를 떠서 다른 일을 보려던 사람들이 낭패했다는 말도 있었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문명(文名)을 날리고 있던 박범신 선생을 처음으로 논산에서 초청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옥녀봉은 그렇게 좋은 기억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강경에 갈 때마다 옥녀봉에 올랐고, 옥녀봉에 올라가기 위해 강경에 가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땐가 옥녀봉에 올라가니 봉수대를 설치하였다. 그 뒤로 봉수대 옆에 풍력 발전 시설을 설치하였다. 봉수대 설치로 옥녀봉의 자연미 상실은 충분한데 설상가상이었다. 풍력 발전을 홍보하기 위한 것인지, 그 전기로 어떤 시설을 유지하기 위한 것인지 몰라도 참 기발한(?) 발상이었다. 선후 관계는 몰라도 폭포까지 설치하여, 이 3종 세트는 나의 옥녀봉에 대한 그리움을 완전히 없애버렸다.
그 뒤 오랜만에 다시 옥녀봉에 오르니 여전히 폭포는 물 한 방울 떨어지지 않고 말라 있었지만 풍력 발전 시설은 철거되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옥녀봉에 대한 그리움은 회복되지 않았다. 그 뒤 또 오랜만에 오르니 아주 말끔하게 화장실을 지어 놓았다. 그 대신 금강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바라볼 수 있는 장소 하나를 잃고 말았다. 이렇게 옥녀봉은 내 기억에서 폐가(廢家)가 된 고향집처럼 망가졌다.
■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기억을 회복하다
옥녀봉에 있는 식산은행장 관사의 주인이 몇 해 전에 바뀌었다. 그는 그 낡은 건물에 옥녀봉예술촌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 붙였다. 그리고 앞으로 거기서 어떻게 공연을 펼쳐나갈 것인가를 말하는 그 사람은 먼 나라를 꿈꾸는 것처럼 들떠 있었다. 그 뒤로 몇 차례 공연을 있었는데, 많은 관객을 불러들이려 하지 않았고 입장하는 티켓을 판매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공연들은 이제까지 우리 지역에서 만날 수 없었던 신선한 무대였다.
그런데 며칠 전에 옥녀봉에 대한 기억을 크게 바꾸는 일이 벌어졌다. <별들의 낭독>이라는 현수막이 나붙었다. 우리에게 낯익은 목소리의 주인공들이 옥녀봉에 와서 낭독회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태조 왕건과 제1공화국 같은 드라마의 해설, 또 <따봉>으로 인상 깊은 델몬트 쥬스 광고의 목소리 김종성 성우와 형사 가제트의 목소리 배한성, VJ 특공대의 박기량, 팔색조의 목소리 서혜정, 애니메이션과 게임, 영화 등을 종횡무진하는 김상현 등이었다,
목소리만 듣던 <별>들이 내 눈앞에 나와 시를 읽었다. 날씨도 좋았고, 암벽을 그대로 쓴 무대도 특이했으며 진행 방식도 색달랐다. 무엇보다 적당하게 모인 관객들의 관람 분위기는 무어라고 표현해야 할지, 때로 뜨겁고 냉철하고 숨을 죽였다가 열광했다. 행사가 끝난 후에 김종성 성우는 “이런 감격적인 무대는 처음이고 내년에도 다시 오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출연자도 관객도 감동의 시간이었다. 앞으로 옥녀봉예술촌에서 새롭고도 수준 높은 공연이 이어질 것이다.
이날 밤 <별들의 낭독>은 나의 옥녀봉에 대한 기억을 다시 아름답게 바꾸어 놓았다. 이런 행사를 한 푼의 외부 지원을 받지 않고 사재를 털어 준비한 사람은 바로 조수연이라는 기괴한 사람이었다.

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장)
옥녀봉은 나에게 아주 특별한 장소이다. 나뿐이 아니라 강경에 사는 사람이나 강경을 거쳐간 사람 모두에게 특별한 장소로 기억에 남았을 것이다. ‘강경 사람’으로 옥녀봉에서 사진 한 장 찍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중학교에 다닐 때 옥녀봉에서 사진을 찍은 적이 여러 번이다. 중학교 3학년 어느 날인가 하숙집 딸인 초등학교 4학년인 영주와 함께 옥녀봉에 올라가 사진을 찍은 일이 있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몇 년 사이에 세상이 많이 달라져 사진을 찍는 일이 더 빈번하였다. 무슨 놀이를 가듯이 어떤 명소, 강경에서는 옥녀봉과 돌산이나 나루터에 가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옥녀봉에는 아주 오래된 팽나무가 가지를 비스듬히 드리우고 있어서, 지금은 둥치만 남았지만, 그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는 일은 아주 멋을 부리는 일이었다. 또 옥녀봉에 앉아 강 건너 들판에 드리운 저녁놀을 배경으로 찍는 사진도 일품이었다.
■ 망가진 옥녀봉의 아름다움
벌써 50년이 넘은 일이지만, 나는 지금도 옥녀봉에 오를 때마다 사진 찍던 그때를 회상한다. 그러면 어느덧 팍팍하던 마음이 느긋해진다. 그래서 강경에 갈 때마다 옥녀봉에 올라갔다. 이 역시 오래전 일이지만 내가 논산문인협회장을 할 때 옥녀봉에서 젓갈축제의 한 행사로 시 낭송의 밤을 기획하여 진행했던 적이 있다. 당시 심대평 지사님과 임성규 시장님이 오셔서 시를 낭송하시기로 했던 터라 내가 진행을 맡았었다. 심 지사님이, 예상 밖으로 행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셔서 지사님이 가시면 자리를 떠서 다른 일을 보려던 사람들이 낭패했다는 말도 있었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문명(文名)을 날리고 있던 박범신 선생을 처음으로 논산에서 초청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옥녀봉은 그렇게 좋은 기억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강경에 갈 때마다 옥녀봉에 올랐고, 옥녀봉에 올라가기 위해 강경에 가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땐가 옥녀봉에 올라가니 봉수대를 설치하였다. 그 뒤로 봉수대 옆에 풍력 발전 시설을 설치하였다. 봉수대 설치로 옥녀봉의 자연미 상실은 충분한데 설상가상이었다. 풍력 발전을 홍보하기 위한 것인지, 그 전기로 어떤 시설을 유지하기 위한 것인지 몰라도 참 기발한(?) 발상이었다. 선후 관계는 몰라도 폭포까지 설치하여, 이 3종 세트는 나의 옥녀봉에 대한 그리움을 완전히 없애버렸다.
그 뒤 오랜만에 다시 옥녀봉에 오르니 여전히 폭포는 물 한 방울 떨어지지 않고 말라 있었지만 풍력 발전 시설은 철거되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옥녀봉에 대한 그리움은 회복되지 않았다. 그 뒤 또 오랜만에 오르니 아주 말끔하게 화장실을 지어 놓았다. 그 대신 금강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바라볼 수 있는 장소 하나를 잃고 말았다. 이렇게 옥녀봉은 내 기억에서 폐가(廢家)가 된 고향집처럼 망가졌다.
■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기억을 회복하다
옥녀봉에 있는 식산은행장 관사의 주인이 몇 해 전에 바뀌었다. 그는 그 낡은 건물에 옥녀봉예술촌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 붙였다. 그리고 앞으로 거기서 어떻게 공연을 펼쳐나갈 것인가를 말하는 그 사람은 먼 나라를 꿈꾸는 것처럼 들떠 있었다. 그 뒤로 몇 차례 공연을 있었는데, 많은 관객을 불러들이려 하지 않았고 입장하는 티켓을 판매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공연들은 이제까지 우리 지역에서 만날 수 없었던 신선한 무대였다.
그런데 며칠 전에 옥녀봉에 대한 기억을 크게 바꾸는 일이 벌어졌다. <별들의 낭독>이라는 현수막이 나붙었다. 우리에게 낯익은 목소리의 주인공들이 옥녀봉에 와서 낭독회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태조 왕건과 제1공화국 같은 드라마의 해설, 또 <따봉>으로 인상 깊은 델몬트 쥬스 광고의 목소리 김종성 성우와 형사 가제트의 목소리 배한성, VJ 특공대의 박기량, 팔색조의 목소리 서혜정, 애니메이션과 게임, 영화 등을 종횡무진하는 김상현 등이었다,
목소리만 듣던 <별>들이 내 눈앞에 나와 시를 읽었다. 날씨도 좋았고, 암벽을 그대로 쓴 무대도 특이했으며 진행 방식도 색달랐다. 무엇보다 적당하게 모인 관객들의 관람 분위기는 무어라고 표현해야 할지, 때로 뜨겁고 냉철하고 숨을 죽였다가 열광했다. 행사가 끝난 후에 김종성 성우는 “이런 감격적인 무대는 처음이고 내년에도 다시 오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출연자도 관객도 감동의 시간이었다. 앞으로 옥녀봉예술촌에서 새롭고도 수준 높은 공연이 이어질 것이다.
이날 밤 <별들의 낭독>은 나의 옥녀봉에 대한 기억을 다시 아름답게 바꾸어 놓았다. 이런 행사를 한 푼의 외부 지원을 받지 않고 사재를 털어 준비한 사람은 바로 조수연이라는 기괴한 사람이었다.
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