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집] 노인회 야유회

2025-05-19

며칠 전부터 오늘이 오기를 기다렸다. 오늘은 우리 동네 노인회에서 야유회를 가는 날이다. 어제저녁에 오늘 입고 갈 옷을 골라 놓았다. 아내도 나이답지 않게 좋은 옷과 모자를 챙겼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시간에 늦지 않게 서둘러 마을회관으로 갔다. 이미 버스의 앞자리는 어르신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한동네에 살면서도 먼빛으로나 얼굴을 보던 분들이다. 몇몇 분은 건강이 안 좋으시다는 얘기를 들어서 동참하시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는데 부축을 받고 오셔서 반가웠다. 그분들과 앞으로 몇 번이나 같은 버스를 탈 수 있을지.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아버지 연배의 아저씨들이 동네의 농사일을 다 하셨다. 모내기할 때나 가을걷이를 할 때는 이른 아침부터 어둑어둑할 때까지 일을 하셨다. 그분들이 농사를 지어 주셔서 나는 밥을 먹고,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 살기 좋은 동네

그런데 그 어른들이 연세가 들어 일손을 놓자 그 아래 어른들이 이어받았다. 한동안 이분들이 초상(初喪) 때의 산역(山役) 같은 마을의 어려운 일을 도맡아 했다. 아버지 친구분들은 다 저세상으로 가신 지 오래되었고, 그 아래 어른들도 지금은 혼자 걷기도 어려운 노인이 되었다. 이분들을 뵐 수 있는 날이 그리 길지 않을 것 같다. 

젊어서 경운기로 논밭을 갈고, 오토바이 엔진 소리로 마을을 흔들던 형님들도 어느덧 팔십이 넘어 구십을 향해 간다. 해질녘마다 마을 구판장 들마루에 술판을 벌이고 정을 두텁게 쌓았는데, 만날 때마다 소매를 잡았는데, 여기저기 몸이 아파서 대부분이 술을 끊고 말았다. 

버스 안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 전에는 출발하자마자 술잔이 오갔는데, 술잔을 받는 사람이 드물다. 흥이 좋아 음악만 들리면 온몸을 흔들어 대던 이웃 아주머니는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는다. 티브이만 혼자서 흥이 났다.

노래와 춤이 없어도 버스 안은 따뜻한 정으로 가득하다. 오랫동안 한동네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모인 자리이기 때문이다.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기뻐하고 흉이 있어도 눈감아 주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나더러 왜 그 산골 마을을 벗어나지 못하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나는 아직 이 동네를 떠날 생각이 전혀 없다. 내가 텃밭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일이 떠오른다. 완두콩을 심은 것을 보고 순을 올리라고 나뭇가지를 한 다발 갖다 주고, 호박 넝쿨이 땅바닥을 기는 것을 보고 대나무를 가져와 순을 놓아 주고, 농약을 하는 중이라면서 진딧물이 잔뜩 낀 우리 돔부에 농약을 뿌려 주기도 했다. 이런 동네, 이런 이웃을 어찌 떠나 어딜 간단 말인가.


■ 후회하지 않으려면

오가는 버스 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사람이 사는 기쁨은 따뜻한 정을 나누는 데에 있다. 그 첫째가 사는 동네 이웃들과의 관계이다. 마을에 사는 사람들 누구도 내게 서운한 생각을 갖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되풀이했다. 아니 동네 사람들만이 아니라 어떤 사람에게도 소홀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그런 생각으로 살아왔지만, 앞으로는 생각을 더욱 다져서 소홀함이 없도록 하고 싶다.

또 한 가지는 내가 미워했던 사람들을 모두 용서하는 것이다. 이런저런 일들로 사람들과 가끔 갈등한 적도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옳다는 생각으로 이와 다른 이들을 싫어하였으며 미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일 또한 없는 것이 좋겠다. 그런데 아무래도 내가 소신이라고 생각하는 몇 가지는 쉽게 바꾸지 않을 텐데 어쩌나 걱정이다.

조금 이르든지 늦든지 머지않아 행동이 자유롭지 않게 되고 의식만 말짱한 때가 올 것이다. 그때 자리에 누워 많이 생각할 것이고, 많이 후회할 것이다. 특히 남을 미워한 일, 누구를 용서하지 못하여 가슴에 품고 이승을 떠나는 자신이 무척 안쓰러울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차근차근 풀어야겠다.

한동네에 살면서도 한자리에 앉기 힘든 사람들과 같이 먹는 점심은 풍성했다. 바닷가 식당에서 먹는 해물 맛이 좋아서가 아니다. 몇 시간 버스를 타면서도 지루하지 않았던 것도 차창 밖의 풍경이 아름다워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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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