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공간] 인사가 '만사' 아닌 ‘망사’가 된 계룡시

2025-04-13


이탈리아어로 ‘조카’를 뜻하는 'nepotismo'에서 유래한 ‘네포티즘(nepotism)’은 연고주의, 족벌주의를 일컫는다. 공공기관이나 행정조직에서 능력이나 자격보다 인연과 관계가 우선되는 인사는 단지 불공정함을 넘어 공공신뢰의 붕괴를 초래한다.

역대 어느 정권보다 윤석열 정부가 보여준 편협한 인사의 연속은 이미 정권 전체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계룡시에서도 유사한 장면을 마주하고 있다. 이응우 계룡시장이 보여온 인사 행보는 ‘만사(萬事)’가 아닌 ‘망사(亡事)’에 가까워지고 있다.


편의에 의한 인사, 기준의 해체


이응우 시장의 인사는 취임 직후부터 논란이 이어졌다. 5급 상당 정책보좌관, 6급 상당 정무비서관 임명에서부터, 병영체험관 등 각종 기간제 근로자 채용에 이르기까지, 이응우표 네포티즘은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시민사회는 이미 그때부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지난 4월 1일에도 또 한차례 사건이 벌어졌다. 1년 6개월여간 공석이었던 계룡시 장애인체육회 사무국장 자리에, 공개채용 없이 특정 인물을 지명한 것이다. 이를 위해 체육회 이사를 교체하고, 정관을 개정했다. 특히 기존 정관에서 명시되어 있던 “체육단체·행정·교육분야 5년 이상 경력”이라는 자격 요건은 삭제되었고, 인사위원회는 “임기가 1년 2개월밖에 남지 않아 시급히 채용해야 했다”는 이유로 지명을 결정했다.

이는 누가 보아도 절차의 파괴이자 기준의 해체다. '급하다'는 명분으로 최소한의 공정성과 투명성까지 무시한 행정은, 시민의 신뢰를 기대하기 어렵다.


‘법’을 아는 자가 ‘법’을 무너뜨릴 때


달라이 라마는 말했다.

“법을 잘 배우고 잘 지켜라. 그래야 그것을 제대로 어길 줄 알게 된다.”

형식적 절차만 따르고, 본질과 취지를 무시한 법 집행은 사실상 권력의 도구화에 불과하다.

법(法)은 ‘물 수(水)’에 ‘갈 거(去)’가 합쳐진 글자다. 이는 법이 “물 흐르듯 공평하게 작동해야 하며, 잘못된 것을 제거하는 기능을 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러나 지금 계룡시 행정에서 보이는 모습은 법과 원칙이 아닌 편의와 계산, 권력과 이해관계가 우선되는 정황들이다.

그 결과 시민들은 행정에 대한 피로감과 불신을 더욱 깊이 체감하고 있으며, ‘재선을 위한 인사 행정’이라는 의심까지 더해지고 있다.


'무지'보다 더 무서운 '무시’


지금 계룡시 인사는 무지(無知)보다는, 무시(無視)에 가깝다.

무지는 몰라서 생긴다. 하지만 무시는 알고도 외면하는 것이다. 시민을 행정의 중심이 아닌 장식품으로 치부하고, 기준을 만들고 무너뜨리는 일을 반복하는 그 과정 속에서 의도는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 날개를 편다.”는 헤겔의 말처럼, 때로는 한 시대의 본질은 그 황혼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보인다. 지금 우리가 계룡시에서 마주하는 행정의 풍경은 단지 한 명의 인사 스타일을 넘어, 공공성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교본이 되고 있다.

재선에 대한 열망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열망이 절차를 뛰어넘고 원칙을 무시하며, 법의 회색지대에 숨어 권력을 유지하는 게 중요할 뿐 사회의 공통 가치 같은 건 단 한 글자도 중요하지 않다는 태도는 마침내 시민의 마지막 인내와 신뢰까지 갉아먹게 된다.

지금 계룡시에 필요한 것은 정무적 계산이나 정치적 유불리가 아닌 행정의 기본인 인사며 민주주의의 기본인 시민적 정의다.

시민의 눈은 '미네르바의 부엉이'로 지금도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결국, 그 판단은 내년 6월 투표함 속에서 결정될 것이다.


- 전영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