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말에 철학 전공인 김형석·안병욱 교수님들의 글이 세상을 휩쓸었다. 그야말로 ‘낙양(洛陽)의 지가(紙價)를 올렸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도 책을 사서 읽었다. 우리 사회는 그때만 해도 아주 이성적인 사회여서 무언가 가치 있는 삶을 살아보려는 노력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보다 성숙한 삶을 살 것인가, 그래서 인생을 알차게 가꾸어 보려 노력하는 시절이었다. 이성은 마비되고 감정이 폭발하는 오늘날과 비교해 보면 그때가 훨씬 성숙한 사회였다.
얼마 후에 뒤를 이어 많은 국민의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았던 분이 유안진 시인이었다. 재색을 겸비한 그녀가 쏟아내는 생각과 말은 바람을 타고 퍼졌다. 특히 정주영 회장님이 사원 연수에서 그분의 글을 인용하였다고 하여 크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유안진 시인은 좋은 시도 많이 쓴 시인이다. 언젠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예쁜 그림을 얹은 시집을 보내와 내가 한동안 애지중지했었다. 요즘 들어 교분은 뜸하지만, 가끔 그분의 시를 생각한다. 며칠 전에 읽었던 시이다.
밤중에 일어나 멍하니 앉아 있다
남이 나를 헤아리면 비판이 되지만
내가 나를 헤아리면 성찰이 되지
남이 터뜨려 주면 프라이감이 되지만
나 스스로 터뜨리면 병아리가 되지
환골탈태換骨奪胎는 그런 거겠지.
-「계란을 생각하며」 / 유안진
이 시를 읽으면서 여러 생각을 했다. 자신을 성찰하는 사람은 병아리가 되어 밝은 세상에서 살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 껍질을 깨지 못하는 사람은 식탁의 프라이가 되고 만다. 그러면 이 차이는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그 단초는 성찰에 있다. 자신을 성찰하는 사람은 가지고 있는 결점을 파악하여 보완하고 교정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에게 도취한 사람은 붉다능한 일이다.
■ 마음이 문제다
늘 마음이 문제이다. 눈으로 보는 것 같지만 눈으로만 보지 않는다. 귀로만 듣는 것 같아도 귀로만 듣지 않는다. 눈을 통해서 마음으로 보고, 귀를 통해서 마음으로 듣는다. 그런데 눈으로만 보고 귀로만 듣는 사람이 많다.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이 다가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다시 마음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귀에 들리는 것도 마음으로 깊이 새겨 보아야 한다. 또 마음은 보이지 않으므로 지어먹은 마음과 달리 말하고 서슴없이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그것을 자신의 능력이라 생각하고, 상대가 민감하게 반응할수록 더욱 기묘한 언행을 창안해 낸다.
그러면 멀쩡해 뵈는 사람이 이런 허방다리에 빠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켜켜이 쌓인 교만 때문이다. 교만은 우리의 가장 간악한 적이다. 첫째는 내 마음속에 있어서 그렇고, 적이 아니라 동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밑바탕에는 견고하게 교만이 깔려 있다.
교만은 비뚤어진 자기 신념에서 싹이 튼다. 그 싹은 기르지 않아도 무럭무럭 자라서 자신을 휘감아 눈을 멀게 하고, 나중에는 목을 조인다. 칡넝쿨에 몸을 맡긴 소나무는 마침내 말라 죽고 만다.
자신을 성찰하는 마음의 온상은 겸손이다. 그래서 옛 성인은 신독(愼獨)을 강조하셨다. 늘 몸가짐을 가지런히 해야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겸손이라는 제동장치가 없으면 암초와 충돌하여 폭발하고 만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교만에 빠져 프라이가 된다.
프라이처럼 깨지지 않는 방법이 있다. 속은 곯고 겉까지 썩어서 아무도 손대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래, 너 오래오래 곯은 달걀로 살아라.

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장)
1960년대 말에 철학 전공인 김형석·안병욱 교수님들의 글이 세상을 휩쓸었다. 그야말로 ‘낙양(洛陽)의 지가(紙價)를 올렸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도 책을 사서 읽었다. 우리 사회는 그때만 해도 아주 이성적인 사회여서 무언가 가치 있는 삶을 살아보려는 노력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보다 성숙한 삶을 살 것인가, 그래서 인생을 알차게 가꾸어 보려 노력하는 시절이었다. 이성은 마비되고 감정이 폭발하는 오늘날과 비교해 보면 그때가 훨씬 성숙한 사회였다.
얼마 후에 뒤를 이어 많은 국민의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았던 분이 유안진 시인이었다. 재색을 겸비한 그녀가 쏟아내는 생각과 말은 바람을 타고 퍼졌다. 특히 정주영 회장님이 사원 연수에서 그분의 글을 인용하였다고 하여 크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유안진 시인은 좋은 시도 많이 쓴 시인이다. 언젠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예쁜 그림을 얹은 시집을 보내와 내가 한동안 애지중지했었다. 요즘 들어 교분은 뜸하지만, 가끔 그분의 시를 생각한다. 며칠 전에 읽었던 시이다.
밤중에 일어나 멍하니 앉아 있다
남이 나를 헤아리면 비판이 되지만
내가 나를 헤아리면 성찰이 되지
남이 터뜨려 주면 프라이감이 되지만
나 스스로 터뜨리면 병아리가 되지
환골탈태換骨奪胎는 그런 거겠지.
-「계란을 생각하며」 / 유안진
이 시를 읽으면서 여러 생각을 했다. 자신을 성찰하는 사람은 병아리가 되어 밝은 세상에서 살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 껍질을 깨지 못하는 사람은 식탁의 프라이가 되고 만다. 그러면 이 차이는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그 단초는 성찰에 있다. 자신을 성찰하는 사람은 가지고 있는 결점을 파악하여 보완하고 교정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에게 도취한 사람은 붉다능한 일이다.
■ 마음이 문제다
늘 마음이 문제이다. 눈으로 보는 것 같지만 눈으로만 보지 않는다. 귀로만 듣는 것 같아도 귀로만 듣지 않는다. 눈을 통해서 마음으로 보고, 귀를 통해서 마음으로 듣는다. 그런데 눈으로만 보고 귀로만 듣는 사람이 많다.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이 다가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다시 마음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귀에 들리는 것도 마음으로 깊이 새겨 보아야 한다. 또 마음은 보이지 않으므로 지어먹은 마음과 달리 말하고 서슴없이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그것을 자신의 능력이라 생각하고, 상대가 민감하게 반응할수록 더욱 기묘한 언행을 창안해 낸다.
그러면 멀쩡해 뵈는 사람이 이런 허방다리에 빠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켜켜이 쌓인 교만 때문이다. 교만은 우리의 가장 간악한 적이다. 첫째는 내 마음속에 있어서 그렇고, 적이 아니라 동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밑바탕에는 견고하게 교만이 깔려 있다.
교만은 비뚤어진 자기 신념에서 싹이 튼다. 그 싹은 기르지 않아도 무럭무럭 자라서 자신을 휘감아 눈을 멀게 하고, 나중에는 목을 조인다. 칡넝쿨에 몸을 맡긴 소나무는 마침내 말라 죽고 만다.
자신을 성찰하는 마음의 온상은 겸손이다. 그래서 옛 성인은 신독(愼獨)을 강조하셨다. 늘 몸가짐을 가지런히 해야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겸손이라는 제동장치가 없으면 암초와 충돌하여 폭발하고 만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교만에 빠져 프라이가 된다.
프라이처럼 깨지지 않는 방법이 있다. 속은 곯고 겉까지 썩어서 아무도 손대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래, 너 오래오래 곯은 달걀로 살아라.
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