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함께 사는 길

놀뫼신문
2019-12-10

       

전순영 시인 


2019년 11월 9일. 시인협회에서 논산으로 문학기행을 갔다.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갔는데, 첫눈에 들어오는 갖가지 음식들이 지극한 정성으로 마련되었음을 한 눈에 볼 수가 있었다. 평범한 두부조림 위에도 예쁘게 꽃처럼 차려진, 모든 반찬이 정갈하고 기품 있어 보였다. 음식을 먹으며 맛도 좋지만 밥도 반찬도 남기지 않게 조금씩 담았다는 것이 이 식당의 장점이다. 우리나라에서 일 년에 버려지는 음식이 몇 조원이라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 손님도 모자라는 반찬을 더 달라고 하지 말고, 남은 반찬을 다 먹은 것이 자원을 아끼고 쓰레기를 줄이는 길이지 않겠는가 싶다.  

많은 사람들의 밥을 시간 때에 맞추어 내놓은 따뜻한 밥그릇을 어루만지며 ‘소나무’ 란 상호를 생각해본다. 그래 소나무는 늘 푸르고 변함이 없고 기품이 있지. 그래서 ‘소나무’식당이 소나무처럼 늘 푸르른 정신으로 싱싱한 솜씨로 손님을 대접하는 게 아닐까. 더 반가운 것은 새하얀 천으로 된 물수건이었다. 수많은 식당들이 거의가 종이로 된 물수건을 사용하는데, 이 식당에서는 새하얀 천으로 된 물수건을 곱게 접어서 밥 그릇 앞에 공손하게 놓았다. 하루가 멀다할 정도로 우리생활에서 공해가 되거나말거나 그저 편리함만을 쫓아 생산되는 생활용품이 수도 없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손을 닦는 물수건은 나무를 베어서 만들어야 하고, 특히 나쁜 것은 일회용품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 식당들이 하루에도 천문학적인 물수건을 한번 쓰고 태워서 온난화를 가중시키고 있다. 

아기 기저귀도 천으로 해서 쓰면 ‘형광염료’ 라는 성분이 없어 아기 건강에도 좋고 빨아서 계속 쓰기 때문에 자원낭비를 막을 뿐만 아니라 나무를 베지 않아서 역시 온난화 예방에 보탬이 되는 일임에도 천으로 된 기저귀는 눈을 씻고 봐도 볼 수 없고, 종이 귀저기만 한번 쓰고 태워서 온난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바쁜 세상에 언제 기저귀를 빨아서 쓰겠냐고? 옳은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목숨을 위협당하면서 종이기저귀를 쓰는 것이 옳은 일인가. 목숨을 위해 온난화 예방에 보탬이 되는 천 기저귀를 쓰는 것이 옳은 일인가, 우리 함께 생각해 볼 일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지구 온난화로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이때, 노력해서 ‘온난화’를 줄이지 않으면 우리 목숨이 위태로운 시점에 와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몸으로 실천하지 않고 말들만 난무하는 이때, 이 소나무 식당에서는 그걸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 그렇게 반가운 일이다.  

이런 업소를 보사부에서 찾아내 모범 업소로 상이라도 주고 ‘언론’에 공개하여 많은 식당이, 아니 대한민국 모든 식당들이 천으로 된 ‘물수건’을 쓰게 한다면 온난화를 줄이고 나무를 살리는 일이 될 것이며, 산소를 우리가 더 많이 마시는 일거삼득이 되는 일임에도 정부는 시행하지 않고 있다. 작은 일이라도 국민 모두가 실천할 때 우리나라가 온난화에서 한 걸음이라도 벗어나는 계기가 되지 않겠는가. 지금까지 정부정책은 말로만 떠들고 있지 실제 온난화를 줄여 가는데 국민이 몸으로 실천하여 실효를 거둘 수 있는 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우리정부는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전망치(BAU)대비 37%까지 줄이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국제사회에 부끄러운 일이 될 뿐 아니라 실천 없이는 온난화에서 한 걸음도 벗어날 수가 없다. 우리가 쓰는 화장지나 그 외 물 티슈 등 모든 종이를 표백제를 쓰지 않고 나무색 그대로 하면 건강에도 좋고 쓰고 난 표백제를 버려서 식수오염을 막을 수 있고, 전체적으로 자원 낭비를 줄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모든 종이를 몸에 해로운 형광염료라는 표백제를 써서 새하얗게만 만들어내고 있다.

이제 나라주인인 국민모두가 나서서 온난화문제와 또는 겨울이면 숨쉬기도 어렵게 밀려오는 미세먼지 등을 놓고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우리가 손으로 만들어온 온난화를 우리가 손으로 노력해서 줄이지 않으면 시시각각 우리 목숨이 위험수위로 한 발짝씩 다가가고 있다. 

문학기행을 온 나는 종일 온난화 생각에 사로잡혀서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시비 관람이나, 사찰, 고택, 관람 등을 건성으로 지나쳐 버리지 않았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서울로 상경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위가 안 좋은 나는 여행길에도 보온물병을 가지고 다니는데, 받아 놓은 생수가 그대로 있기에 다시 돌려주었다. 차가 밀리면서 목이 말랐다. 다시 생수를 달라고 해서 마시면 반도 못 먹고 남은 비닐물병이 쓰레기가 될 걸 생각하니, 조금만 참자하면서 차는 어둠속을 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