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따라 삼백리-2] 건양(建陽)과 명곡관

놀뫼신문
2020-05-13


5·16은 건양학원 개교기념일이기도 하다. 건양학원은 유치원에서부터 건양중·고등학교, 건양대학교, 건양대병원에 이르기까지 논산에서 대전을 아우르는 교육브랜드다. 그러면 건양학원의 명칭은 어떻게 정해졌나? <명곡 김희수 회고록>인 ‘작은 수첩 큰 실천으로 걸어온 길’을 펼쳐본다. 

“건양학원의 명칭은 나의 공주중학교 은사이신 민태식 선생님께서 지어주셨다. 선생님은 8·15 광복 후 잠시 개성 국립박물관장을 지내신 동양철학의 대가로 서울대에서 근무하신 분이다. 또 충남대 총장직을 역임하신 바 있으며 인격과 학식, 덕망이 높아 학생들이 모두 존경했다. 내가 고향의 중학교를 인수했다는 말씀과 함께 학원명을 부탁드렸더니 며칠 후 연락을 주셔 반포동 아파트로 찾아뵈었다. 선생님께서 건양이 육영기관 이름으로는 아주 좋다고 추천해 주시기에 인수학원을 건양학원으로 바꾸게 되었다.”

건양(建陽)의 의미가 얼마나 좋길래 추천해 주었단 말일까? 김희수 전 총장의 육성을 계속 들어본다. “건양은 양(陽)의 새로운 태동을 의미하는 단어이지. 1896년 국운이 위태로운 시기에 나라를 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채택한 조선의 연호(年號)로서 ‘인재양성을 통해 나라를 크게 번창시키는 주체가 되자’는 뜻을 담고 있어.” 건양은 희귀 단어가 아니다. 입춘대길(立春大吉) 다음에 붙는 건양다경建陽多慶) “입춘이 되니 크게 길할 것이고, 따뜻한 기운이 도니 경사가 많으리라”

김희수 김안과병원 이사장이 교육자로 제2의 삶을 시작한 것은 41년 전이다. “폐교 위기에 있는 중학교를 인수해 달라”는 양촌 유지들의 권유를 받아들여 건양중고등학교를 설립했다. 1979년 8월 학교법인 ‘인수학원’을 인수한 김희수 이사장은 다음해인 5월 16일 ‘건양학원’으로 법인명을 변경해서, 5·16이 개교기념일이 된다. 1980년 양촌중학교로 변경했다가 1994년에는 건양중학교, 2013년 건양대학교 병설 건양중학교로 변경을 거듭한다. 이때 건양고등학교도 동일한 형식으로 교명 변경을 하였다. 건양고는 1983년 양촌고등학교로 개교했다가 1994년 건양고등학교로 교명 변경을 거쳤다. 건양대가 문을 연 것은 1990년 11월, 대학병원은 2000년 개원인데, 이로써 건양은 하나의 거대한 ‘교육군(敎育群)’이 된 것이다.  


명찰지원(明察知遠)과 명곡관


명곡관은 건양대 본부 건물이다. 김희수 총장의 호 ‘명곡(明谷)’을 딴 이름인데 그는 호를 왜 명곡으로 지었을까? 그의 총장시절 벽에는 ‘명찰지원(明察知遠)’라는 휘호가 걸려 있었다. “밝게 살펴 멀리까지 안다”는 의미다. 맑은 눈으로 널리 세상을 살피는 깊은 생각으로도 해석된다. 

1962년 광복절은 서울 영등포에 김안과가 개업한 날이다. 원장의 성을 딴 이름 ‘김안과’는 간호조무사 2명과 함께 출발하였다. 이제는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안과의 금자탑이 된 ‘김안과’는 침침한 눈을 밝게(明) 해주는 광명(光明) 천사 60년의 역사를 펼쳐왔다. 

빛 다시 찾은 광복(光復)절의 ‘밝음’은 확장일로이다. 1991년 논산 창의융합캠퍼스 개교 이래 만들어진 명곡도서관은 2014년 대전 메디컬캠퍼스에도 명곡도서관으로, 명곡의과학연구소 등으로 ‘명곡’이라는 브랜드는 외연을 확장중이다. 김안과의 ‘김’은 광산 김씨이다. 건양역사관은 건양대 학맥을 조선시대 사립대학 돈암서원으로 접맥해 놓았다. “논산이 조선 예학의 본산이고 내가 조선 최고 유학자의 후손이라는 점에서 우리 대학이 논산에 자리잡게 된 것이 우연의 일치만은 아니라는 자각을 갖게 했다.” 명곡 김희수 총장의 자부심이다. 


- 이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