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공간] 내가 기자인데, 기자 때문에 부끄럽다

놀뫼신문
2020-03-09

전영주 발행인


논산 시민들에게 “논산을 움직이는 가장 힘센 인물을 꼽아보시라”고 하면 어떤 답이 나올까? “○○언론사의 ○기자 말고 누가 또 있겠느냐?”는 답이 서슴지 않고 나올 것이다. 이는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험 매슬로가 이야기한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는 망치의 법칙이 연상되기 때문인데, 지금 논산의 형국이 그런 모양새 같다.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논산시 문화예술사업 공모 심의 부적합과 논산예총 권력남용’이라는 청원이 올라가 있다(청원기간 3월 9일~4월 8일). 지면을 통하여 문화예술과 두드리는 데는 성이 그치지 않았는지, 청와대까지 두드리는 형국이다. 

누구나 망치를 쥐면 본능적으로 두드릴 대상부터 찾는다. 문제는 입법, 사법, 행정에 이어 제4부격인 언론이 기존 3부를 감시하고 그들의 잘못을 비판하며 가야 할 길을 제시하지는 못한 채, 망치질의 유혹에만 빠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4·19, 박정희의 유신과 이어지는 군사정권 격동기에 언론이 받은 대우는 탄압과 해직, 갇히기였다. 이런 반복 상황에서도 언론은 저항을 멈추지 않았고, 결코 부러지지 않았다. 민주화와 산업화 그리고 박근혜와 이명박이 구속되는 그 중심에도 언론이 서 있었다. 항상 정의의 편에 서서 진실을 말하고 대중의 목소리를 전하며 담론을 잃지 않았기에, 오늘날 민주주의는 발전했고 산업화는 결실을 거둬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

언론의 가장 큰 역할은 부패를 감시하며, 시대적 담론을 외면하지 않고 중심을 잡는 것이다. 그렇다고 언론의 비판 자격이 천부인권, 즉 자연권은 아니다. 그 자격은 스스로 획득하는 것이지, 누구에게서 주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수많은 언론매체가 생겨나면서 함량 미달의 언론인들을 양산하는 개탄스러운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작금의 언론환경은 통제가 없는 자유를 만끽하는 자유언론의 전성시대이다. 그럼에도 언론으로부터 기대하는 유의미(有意味)도 별로 없고, 때로는 신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개인 영리 염두에 둔 의도적 기사·기자


내가 기자인데, 기자 때문에 부끄러워하고 있다. 기사의 수준을 재해석하고, 재검증하며 수준 이하의 내용으로 견디기 힘든 수모를 참고 있다. 돈 때문에 그렇다면 처우 개선해 달라고 국민청원이라도 해보고 국회 정문에서 1인 시위도 해보겠건만, 그런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애당초 개인의 편파적 성향과 가치관의 문제라고 본다. 

기자는 뭘 해도 무방하며, 뭐라 지껄여도 진실이고, 어떤 행간을 펼쳐도 거기에 미래를 직시하는 가치관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언론이 기사를 작성하는 데 있어, 개개인의 영리에 목적을 두고 진영 논리에 매몰되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되겠는가? 여론이 분열되어 지역사회는 병들고,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며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든다. 지금이야말로 기자정신, 언론의 혼이 절실한 시대이다.

그런데 우리 지역 작금의 언론 행태는 어떠한가? 어린아이 망치질처럼 두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찾아다니며 엉망으로 만들어 놓거나, 그러다가 자기 손을 찧거나 하고 있다.

언론인의 명함은 깨끗해야 한다. 펜의 힘을 빌려 여기저기 청탁과 압력을 넣고 다니는 순간 ‘추한 기레기’의 수렁으로 빨려들어가고 만다.

부패한 언론은 더 이상 펜을 잡지 마라. 냄새 나는 행간(行間)으로 인하여 여러 사람이 마스크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바이러스보다 더 심한 인간바이러스 마스크는 구하기 더 힘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