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겸칼럼] 나이에 따라 세상을 보는 것!

놀뫼신문
2019-11-13

송인겸 사회복지법인 두드림 이사장


사람과의 관계에서 보통 나이를 들먹이는 것은 그 나이에서 바라보는 세상이 다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젊은 시절! 우리 부모세대들을 보면서 저 만큼 나이가 들면 무슨 마음으로 세상을 살까? 궁금했었는데 이제야 내가 그 나이가 되고 보니? 그 연령에 맞는 그런 수준의 세상과 타협을 하며 근근이 사는 것 같다. 그 나이에 걸 맞는 정도의 바라기를 갖고 울고 웃고를 반복하며 살기도 하고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다른 것으로 변질이 되거나 소멸되는 것을 마냥 바라보며 어떤 행동도 취할 수 없는 허탈함도 함께하며 사는 것 같기도 하다. 한 여름의 강한 태양열과 푸름을 자랑하던 녹음도 한 철의 빛과 그늘과의 관계처럼 나이에 맞게 단순해지고 볼품없어 보이는 것도 그 나이라서 그럴 것이다. 우리의 청춘과 중년을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녔지만 결국 세월과 공간에 의해 이제는 더 이상 세월을 거스를 수 없는 삶을 맞게 되었다. 

보수가 정말 어려운가 보다. 어찌 보면 진보가 그 모습으로 정체되어 오래 유지만 되면 그것이 보수가 되듯이 어느 것 하나 진득하니 소신처럼 살면 골수주의자로 남겠지만 지금도 난 진보의 늪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동전 양면의 모습을 하고 그동안 자칭 진보주의자로서의 명맥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내 나이가 한두 살 더 나이를 먹을수록 자칭 진보주의자라는 사실이 점점 희귀종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오랫동안을 사회적 불만을 갖고 살아온 터라 늘 세상이 내가 원하는 데로 변하기를 고대하며 살아왔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이런 세상을 만족하며 살아서 지금의 체제를 지켜내야만 하는 목적도 물론 있었을 것이다. 보통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이 기득권 세력이거나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 기성세대들 일 것이다. 그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부를 축적해왔고 더 많은 소유를 위하여 꾸준하게 노력한 경험도 많을 것이다. 그러한 행동들이 결코 비난받을 일이 아닌데도 사회는 그들을 떠받쳐주지는 못 할망정 온전하게 보지도 않는 경향도 있다. 그래서 보수의 가치를 내세우는 것은 그들의 정당성을 내세우는 것이라서 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 민족의 역동성은 국민의 진보적 사고와 소신에서 나왔다. 해방과 한국동란 이후 그 암울하고 피폐해진 이 좁은 땅에서 지금도 이념분쟁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지만 70년도 채 안 되는 그 짧은 시기에 사회 전 분야에 걸친 일대 변혁이 일어난 것은 전 세계적으로 봐도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이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우리는 그런 변혁의 흐름 속에서 지금껏 살아왔다. 

몇 해 전에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미투 운동이 일본이나 다른 선진국을 제치고 우리나라에 먼저 들어와 여성과 약자에 대한 기성사회의 비인권적인 행위가 이슈화되고 타파되는 것을 보면 우리는 그런 빠른 변화에 늘 적응해 왔음을 알 것이다. 여성의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던 역사적 시기도 세계의 어떤 나라보다 우리의 시기는 아주 짧다. 지금도 여성들이 약자로 고통 받는 나라가 지금도 세계 곳곳에 많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수준에서 이미 벗어나 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우리는 유한한 존재다. 흘러가는 강물처럼 모든 것이 흘러가고 변화한다. 우리의 존재도 점점 희미해지다가 사라질 것이다. 세대별로 바라보는 사회적 관점이 다 틀리듯이 우리 세대가 바라보는 가치관의 기준이 전 세대를 망라할 만큼 보편적일 수는 없다. 

사회적 정의와 진리라는 것이 어느 관찰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미국의 911테러도 아랍권에서는 이슬람 정의라고 생각하는 아랍인들이 많은 반면 미국인들 대부분은 그것은 무모한 테러인 동시에 반드시 응징해야할 적으로 본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을 썼던 독립 운동가들은 또 어떻고? 일본에서 보면 한낱 테러범으로 보는 것처럼 보는 관점이 누구냐에 따라 정의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에 따라 정의가 양분되고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해석이 나오게 된다. 

그래서 나의 요지는 우리세대가 내놓는 사회적 주장이 항상 옳다고 볼 수가 없다. 내 나이와 내 사는 곳과 나의 삶의 위치, 배경 더 나아가서 나의 가치관까지 유념하여 어떤 주장을 펼쳐 봐도 결국 그것은 보편적인 정의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모든 사회적 주장은 포괄적이어야 하고 보편성을 가져야만 모든 사람들에게 동의를 얻을 수 있고 지속적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지금은 구치소에서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박근혜전대통령도 선거를 통하여 대통령이 될 당시에는 특정 계층과 특정 지역에서의 전폭적인 지지에 의해서 당선이 되었지만 결국은 그들의 지지가 보편타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 꼴이다. 국가와 국민을 정말 위한다면 자신의 지역이나, 세대에게는 설령 불합리하더라도 전체적인 관점으로 모든 이들에게 이득이 더 많은 결정을 내렸으면 하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 혹여 본인이 태극기부대처럼 골수보수의 길을 들어선다 해도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우리나라가 진보를 추구해야 만이 우리의 다음세대들이 다른 국가의 젊은이들과의 경쟁에서 그들의 우위에 설 것이라는 것을 나는 굳게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