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집] 아마추어는 싫다

2025-03-09


‘청실네 배’라는 속담이 있다. 청실이라는 아이네는 배밭이 있었는데, 그 집 배가 유난히 맛이 있었는가 보다. 맛있는 배란 첫째 달아야 한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걱서걱하는, 시원한 맛이 있어야 한다. 사람은 심성이 착해야 한다. 속이 늘 꼬여 있는 사람이 하나 있으면 그 주변 사람 모두가 피곤하다. 그래서 사람은 착해야 하는데, 착하기만 하다고 능사는 아니다. 

사람은 눈치가 있어야 하고, 상냥해야 한다. 이런 사람을 누구나 좋아한다. 마치 속을 꿰뚫어 보는 것처럼 알아서 척척, 일을 거든다. 어떤 일의 파트너로서 최상의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청실네 배 같다고 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하니 함께하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그 사람을 보고 있으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진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가 생성된다. 


■ 공직자는 시민보다 높은 사람?

몇 해 전에 공직자는 민원인이 다소 무리한 행동을 하더라도 같이 화를 내서는 안 되고, 끝까지 참고 응대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나는 이 판결이 공직자의 공무 수행 능력과 열정을 떨어트리는 결정이라고 여겨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자기 직위를 이용하여 시민 위에 군림하려는 공직자는 질색이다. 아직도 그런 사람이 더러 있다.

얼마 전에 우편물을 발송하려고 가까운 우체국에 갔다. 그런데 우편물 취급자의 명패만 있고 사람은 없어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바로 옆에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마 두 사람 모두 우체국 직원이거나 적어도 그중 한 사람은 우체국 직원이었을 것이다. 지나가던 행인이 날씨가 춥다고 우체국 안에 들어와 이야기할 리는 없다. 그런데 그들에게 나는 투명 인간이었다. 

나는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 같아 항의하려다가 말을 섞기 귀찮아서 그냥 나왔다. 그리고 다른 우체국에 갔다. 거기는 내가 잘 아는 직원이 있어서 조금 전에 생긴 앙금을 해소시켜 주리라 믿었다. 그런데 그 자리가 비어 있었다. 내가 멈칫거리자 다행히 다른 직원이 와서 접수를 도와 주었다. 나는 고맙기도 해서 “배 선생은 출장 중인가 봐요.”라고 말을 건넸다. 이렇게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호감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직원은 “저기 팻말을 보시면 휴가잖아요.”라고 응수했다. 그냥 “휴가 갔어요.”라고 하면 될 것을, 한글도 모르느냐는 듯 나무랐다. 살펴보니 좀 떨어진 곳에 휴가 중이라고 게시되어 있었다. 하기야 내가 잘못일지 모른다. 샅샅이 살펴보지 않고 물은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 무서워서 싫어요

돌아오면서 몇 해 전의 일이 떠올랐다.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옷을 올려 보라고 했다. 때가 겨울이어서 두꺼운 옷을 겹겹이 껴입었던 터라 행동이 굼떴다. 그러자 의사는 민첩하지 못하다고 나를 핀잔했다. 순간에 나는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 나는 그의 손님이고, 환자이고, 좀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그에게 소득을 주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나를 불쾌하게 했다. 나는 동작을 멈추고 그에게 말했다. “원장님. 지금 화나셨어요? 나 불쾌해서 진료받지 않고 그냥 가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의 태도가 급변했다. “그냥 진료받고 가세요.”라고 나를 달랬다. 일어설까 하다가 그냥 진료받고 돌아왔다. 돌아오면서 타 시군으로 갈지언정 다시는 이 병원 문턱 너머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병원은 얼마 뒤에 문을 닫았다.


■ 아마추어는 싫다

나는 프로가 좋다. 아마추어는 싫다. 프로 야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아마추어 야구인 고교 야구를 매우 좋아했었다. 내가 젊었을 때 라디오로 중계하는 청룡기 고교 야구는 정말 재미있어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그러다가 정작 프로 야구가 컬러로 방영되면서부터는 야구를 멀리했다. 아마추어 야구는 동네 마당이나 학교 운동장에서나 해야 한다. 관중이 모인 야구장에서 동네 야구를 하지 않는다,

따라서 직장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의식이나 복장이 직장인다워야 한다. 흙 묻은 작업복을 입고 음식을 날라 준다면, 그 사람의 머리가 헝클어져 있다면,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닌다면…. 취미로 만드는 장난감과 시장에 내놓을 상품은 달라야 한다. 상품을 만드는 사람, 손님을 맞이하는 사람은 프로여야 한다.

우리 모두 프로가 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노력이 없는 선수는 경기장에 들어서지 말아야 한다. 그의 자리는 넓게 잔디가 깔린 야구장이 아니라 좁은 동네 마당으로 자리를 옮겨야 한다.


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