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집] 부러운 사람

2025-02-24


■ 어떤 사람 1

몇 해 전에 나는 어느 책자에 우리 논산에서 존경받을 만한 인물을 소개하는 글을 연재했었다. 그 발단은 내가 공주에 있는, 역사 깊은 학교인 영명고등학교를 방문한 데에 있다. 영명고등학교는 1906년 우리암 선교사가 설립하였고, 조병옥 박사와 유관순 열사가 졸업한 학교이다. 이 학교는 민족정신을 힘써 교육하였기에 졸업생이나 재학생들의 독립 정신이 투철했다. 일제의 미움을 사서 이 학교는 1942년에 폐교되었다가 해방 뒤에야 다시 학교를 열었다. 이런 전통이 있는 학교의 현재 모습은 어떤가 확인해 보고 싶었다. 학교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작은 비석 하나가 눈에 띄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4.19의거 기념탑이었다. 공주의 여러 기관장이 뜻을 모아 이 탑을 세웠는데 그 대표자가 공주유림회장이었다. 오랜 전통을 가진 도시답다고 생각하여 부러웠다. 

이전에도 공주는 지역 어른들이 지역사회의 중심추(重心錘) 역할을 하는 도시라고 생각했다. 한 집안이나 사회에 존경받는 어른이 있으면 균형을 잃지 않고 평형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 논산에 이런 풍토를 조성해 보고 싶어 많은 시민이 존경할 만한 인사(人士)들의 공적을 소개하는 글의 연재를 시작하였다. 그 하나로 우리 지역에서 가장 많은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내는 강경의 이성래 사장을 소개하기로 했다. 그에게 전화하여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하였다. 그래서 그가 작업복을 입고 생선을 팔고 있는 업소를 찾아가 인터뷰를 진행하여 원고를 작성할 수 있었다. 

그와 인터뷰 후 작성한 원고의 말미는, ‘그는 작업복 차림이었고 나는 양복에 넥타이를 맸지만, 그런 내가 부끄러웠다. 그이 옆에 서 있는 내가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라고 썼다. 옷차림은 내가 훨씬 화려했지만, 겉모습만 그럴 뿐 행적(行蹟)은 그에게 비할 수 없었다. 


■ 어떤 사람 2

충남의 어느 지방에서 시인들이 모여 여럿이 함께 시집을 낸다고 한다. 올해가 10주년이라서 충남지역에서 활동하는 선배 시인의 시를 초대하고 싶다고 충남문인협회장에게 상의하였다. 회장이 나에게 집필 여부를 물어서 시를 보내겠다고 대답했다. 그 얼마 후에 편집을 맡은 이에게서 원고 청탁을 위한 전화가 걸려 왔다. 용무를 마치고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는 오래 시를 쓰지 않았고, 누구에게 본격적으로 시를 배운 적도 없다고 했다. 

어려서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가장이 되어 그럴 여유가 없었노라 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동생 셋을 공부시켜 어엿한 사람으로 만들었으며, 아들 형제도 결혼하여 잘살고 있어 이제야 미루었던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는 논이 몇 마지기 되지 않았는데, 부부가 열심히 일하여 논을 사 보태어 중농(中農)이 되었다고 한다. 어려운 형편에서도 동생들을 그렇게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아내의 근면과 어질고 너그러운 성품 덕분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자신은 남에게 감출 것 하나 없이 살았으며, 따라서 언제 어디에서든지 꺼릴 것이 없노라고 했다. 

나는 선배 시인으로서 그에게, ‘나는 칠십이 넘었어도 앞으로 좋은 시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시를 쓰고 있다. 천 시인도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까지 성실하게 살아서 당당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참 많은 복을 받은 사람이다.’라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초면인 사람과 몇 분간의 대화를 나누었지만 아주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참이나 그와의 대화에서 느낀 감정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위의 두 사람은 참 부러운 사람이다. 세상에는 참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 세상의 갖가지 얼룩으로 염치 있는 사람이라면 얼굴을 들지 못할 사람도 있다. 반면에 근면하고 성실하게 살아서 조금이라도 남에게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여 늘 당당한 사람도 있다. 

돌이켜보면 나는 누구에게 많은 도움을 주지 못했다. 또 오래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후에 기관의 운영자로 일할 때도 최선을 다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다. 가끔, 이미 지은 허물은 어쩔 수 없으나 앞으로 더 큰 허물이 없어야겠다고 다짐하는 것은 이런 아쉬움 때문이다.



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