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칼럼] 연산 오계(烏鷄)는 ‘삼족오계’다

놀뫼신문
2019-11-13


조한규 한국무죄네트워크 대표


계룡산의 주봉은 천황봉(天皇峰)이다. 천황봉에서 삼불봉까지 이어진 능선이 닭의 볏을 쓴 용과 같다고 해서 계룡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그러나 천황봉은 원래 ‘상제봉(上帝峰)’이라고 불렀다. ‘하느님’을 일컫는 ‘옥황상제의 산’이란 뜻이다. 그래서 정상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천단(天壇)이 있다.   

해발 845.1m의 천황봉(상제봉: 쌀개봉과 머리봉 사이)을 중심으로 ①구절봉(434.5m) ②우산봉(573.5m) ③금베봉(395.8m) ④고청봉(319m) ⑤꼬침봉(416.1m ⑥신선봉(649m) ⑦장군봉(512.3m) ⑧삼불봉(777m) ⑨관음봉(765.8m) ⑩문필봉(756m) ⑪연천봉(742.9m) ⑫쌀개봉(830.5m) ⑬머리봉(735.5m) ⑭제차봉(400.1m) ⑮천왕봉(608.6m) ⑯황적봉(660.9m) ⑰동제봉(352.5m) ⑱국사봉(449m) ⑲노적봉(346m) ⑳함지봉(386.7m) ㉑깃대봉(304.9m) ㉒조개봉(340.7m) ㉓시루봉(431.8m) ㉔백운봉(535.4m) ㉕금수봉(530.3m) ㉖도덕봉(535.2m) ㉗옥녀봉(451.9m) ㉘약사봉(294.9m) 등 28개의 봉우리가 둘러싸고 있다.

이들 28개 봉우리는 북극성을 중심으로 한 ‘하늘 적도’의 별자리 ‘28수(宿)’를 상징한다. 즉, 옥황상제(천제)의 별인 북극성을 중심으로 천구에 크게 원을 그리면 ‘하늘 적도’가 된다. 북극성 주변의 천공을 자미원이라고 하는데, 이 자미원에 옥황상제가 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하늘 적도’ 주변에서 관찰되던 28개의 이정표가 되는 별자리를 ‘28수’라고 말한다. 

가령, 동방7수(각항저방심미기:角亢氐房心尾箕), 북방7수(두우여허위실벽:斗牛女虛危室壁), 서방7수(규루위묘필자삼:奎婁胃昴畢觜參), 남방7수(정귀류성장익진:井鬼柳星張翼軫)가 있다. 

마치 옥황상제의 별인 북극성을 28개의 별자리가 둘러싸고 있듯이, 상제봉을 28개의 봉우리가 둘러싸고 있다고 해서 계룡산을 ‘옥황상제의 산’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선인들이 역사적으로 계룡산을 ‘옥황상제의 산’으로 여겼던 흔적들은 적지 않다. 

먼저 계룡산 동학사 경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7호 숙모전(肅慕殿)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숙모전은 숙모전동무서무로 구성돼 있으나 동계사와 삼은각이 경내에 있어 전체를 일컫는 명칭이다. 동계사는 신라 19대 눌지왕의 충신 박제상 선생을 모신 사우(祠宇)로 고려 초(936년) 개국공신 류차달이 세웠다. 삼은각은 고려시대 충신인 삼은(三隱), 즉 정몽주(포은)이색(목은)길재(야은) 선생을 모신 사우로 1394년 길재 선생이 정몽주 선생의 초혼제를 지냈고, 1399년 류방택이 이색 선생의 초혼제를 지냈으며, 1421년 류백순이 길재 선생의 위패를 포함해 삼은각을 세웠다.

본디 숙모전은 조선시대 비운의 국왕 단종과 정순왕후를 모신 곳이며, 동무와 서무는 사육신과 생육신을 비롯해 충신 107인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매월당 김시습 선생은 1456년(세조2) 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해 노량진에서 장례를 지낸 뒤 동학사 삼은각 옆에 단을 만들고 초혼제를 지냈다. 이것이 숙모전의 효시다. 

왜 김시습 선생은 계룡산 아래서 단종과 사육신 등 충신들의 초혼제를 지냈을까. 충신의 사우인 동계사와 삼은각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무엇보다 계룡산을 ‘옥황상제의 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충신들이 옥황상제 곁으로 쉽게 갈 수 있기를 빌었던 셈이다.

다음으로 계룡산 연천봉 아래 신원사 ‘중악단’에서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보물 1293호 중악단은 1394년(태조 3년)에 창건된 신원사의 산신각이다. 1651년(효종2년)에 철거됐다가 1879년(고종16년)에 명성황후가 다시 건립했다. 

왜 명성황후는 이곳에 중악단을 궁궐 양식으로 중건했을까. 산신각이 궁궐 양식으로 건축된 곳은 신원사 중악단이 유일하다. 명성황후는 계룡산을 ‘옥황상제의 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계룡산 산신들이 매우 높은 분들이라고 여겨 궁궐 형식의 산신각을 지었던 것이다. 중악단은 묘향산의 상악단, 지리산의 하악단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산신단이라고 한다.  

그리고 계룡산 국사봉 자락, 함지봉 아래 충남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 천연기념물 ‘오계(烏鷄)’가 있다. 1980년 4월 1일 지정된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265호인 ‘오계’는 눈동자와 눈자위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검고, 깃털도 청자빛이 감도는 흑색이며, 뼈를 포함한 온몸이 까마귀처럼 검다. 그래서 ‘오계’라고 부른다. 그러나 ‘오계’는 단순히 닭의 일종인 ‘오계’라기보다 배달겨레의 상징새인 ‘삼족오(三足烏)’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삼족오’는 태양 속에 사는 전설의 새인 세발까마귀라고 한다. 

그러나 과연 ‘삼족오’는 세발 까마귀일까. 최근 일부 학자들은 까마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필자는 ‘삼족오’는 ‘삼족오계’의 예스런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오계’는 까마귀보다 기품이 있다. 청자빛이 감도는 흑색 깃털에서 귀티가 난다. 까마귀보다 강인하고 용감하다. 신비한 약리작용의 요소까지 지니고 있다. ‘옥황상제의 닭’으로서의 기품과 기질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오계’가 옥황상제의 산인 계룡산 자락에서 살고 있는 천연기념물이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오계’가 ‘삼족오계’이기 때문에 화악리(꽃동산)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오계’는 한민족의 상징적인 새이자 닭이다. 우리 역사의 생명이요, 문화 그 자체다. ‘오계’가 보존돼야 대한민국 역사와 문화가 면면히 계승될 수 있다. ‘오계’의 보존은 우리 민족의 시대적 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