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뫼단상] 인삼과 진생

놀뫼신문
2019-05-22

정경일 건양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과 교수


인삼과 진생?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지난해 10월 금산에서 열린 인삼축제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필자는 아주 희한한 광경을 목격하였다. 전시와 판매장을 가득 메운 여러 단체와 기업체의 부스에서는 너나할 것 없이 우리의 자랑스런 건강식품인 인삼으로 만든 여러 가지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그런데 인삼의 영어 표기가 서로 달랐다. 어느 곳에서는 Insam이라 표기하였고 다른 곳에서는 Ginseng 즉 진생이라고 적어 놓았다. 궁금증이 발동한 필자가 각각의 업체를 다니면서 왜 이렇게 표기가 다른가 하고 물었으나 누구도 속 시원한 대답을 들려주지는 않았다.   


진생은 일본식 발음 


인삼을 진생이라 부르게 된 것은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인삼의 한자인 人蔘의 일본식 발음에서 그 뿌리를 찾게 된다. 그러므로 이 이름은 우리의 슬픈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는 셈이다. 인삼의 효능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 일제강점기였기에 그 당시 일본식 발음으로 해외에 소개되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아무런 변화없이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그러므로 이 이름의 표기도 달라져야 한다. 동해의 이름을 두고 지금 우리는 일본과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그들은 일본해라 하고 우리는 동해라 한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그 누가 그깟 지도에 표기되는 바다 이름 하나를 두고 왜 이리 피곤한 싸움을 하고 있느냐고 물을 수 있을까? 누구도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이름은 사물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며 특히 외국에 우리 문화를 알릴 경우 가장 일차적으로 그들과 만나는 접점이기 때문에 이름의 중요성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인삼과는 경우가 다소 다르지만 일본과의 이름 전쟁에서 우리가 완승을 거둔 사례가 있다. 우리의 대표적인 건강 발효식품인 김치는 영어로 Kimchi로 표기한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 일본이 우리의 김치 시장에 뛰어들면서 그들은 일본식 김치의 제조법을 국제적인 표준규격으로 만들고자 노력하였다. 그리고 이와 아울러 김치의 일본식 발음인 Kimuchi(기무치)를 국제적이고 공식적인 이름으로 공인받고자 시도하였다. 그러나 2001년 7월 이 업무를 관장하는 국제식품규격위원회(CAC)는 우리나라의 김치를 국제적인 식품규격으로 인정하였고 이와 동시에 명칭도 Kimchi로 확정하였다. 이를 통해 우리의 김치가 세계적인 종주국임을 확인하는 쾌거가 이루어진 것이다. 


공식명칭을 Insam으로 바꾸어 나가자


김치의 경우와 인삼의 경우는 역사적 배경으로 보아 분명히 다른 측면이 있다. 국제적으로 볼 때 진생으로 사용된 역사가 너무도 오래고 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삼으로 건강식품을 만드는 대표적인 곳인 한국인삼공사조차 영문표기를 Korea Ginseng Corporation 이라 하고 약자로 KGC인삼공사라고 하고 있을 정도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 고장에서 이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고 진생이 아니라 인삼임을 강조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음은 매우 반갑고 고무적인 일이다. 해마다 개최되는 금산인삼축제의 공식포스터에는 몇 년 전부터 축제의 명칭을 영어로 Geumsan Insam Festival로 표기하고 있다. 인삼의 표기를 주체적인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것은 축제위원회가 만드는 포스터에는 Insam이라 표기하고 있으면서 각 단체나 기업에서 하고 있는 표기에 여전히 Ginseng이라고 하는 표기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인삼의 표기가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쉽지 않다. 국제적으로도 널리 표기가 고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우리가 이를 모른 척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이제부터라도 인삼을 인삼이라 부르는 작은 움직임을 이어가야 할 때이다. 그러다보면 이런 움직임이 모여 큰 강물을 이루고 바다로 나아가게 될 때 인삼이 진생이 아니고 인삼이 되는 날을 앞당겨 국민적 자존심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