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새로읽기] 코로나는 선(禪) 문답이다

놀뫼신문
2020-12-31


며칠 전, 코로나 확진 자와 우연히 같은 장소에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PCR 검사를 받은 후, 시골 농막에서 자가(自家) 격리에 들어갔다. 그리고 ‘고라니’ 우는 밤을  꼬박 새우며 나도 코로나 바이러스의 숙주로 이웃과 가족에게 폭탄이 될 수도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마스크 한 장으로 용케도 버텨내던 국민들의 결기(決起)도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다. K-방역을 자랑하던 국뽕(국가+히로뽕)들도 잠잠하다. 이젠 하루에 천여 명의 환자가 발생하는 것이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거리는 한산하다 못하여 적막하기까지 하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서민들의 경제적 고통은 전염병보다 더 두렵다. 며칠 후에는 집세도 내야 하고 은행이자와 생활비로 한숨만 늘어난다. 백척간두에 선 심정이고 일각이 여삼추다. 

화해와 믿음, 그리고 친밀감의 표현인 악수는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젠 복싱 선수처럼 주먹(dap)질로 인사한다. 지인들과 식사 한 끼조차 자유롭지 않다. 여행은 언감생심 방콕(방에 콕 박히다)에 애꿎은 TV 채널이 불이 날 지경이다. 갑자기 자전거 판매가 급증하고 골프장은 2주 이상 기다려야 예약이 가능하단다. 여세를 몰아 온라인 쇼핑몰이 호황이고 배달업이 뜬다. 힘들어 쓰러지는 사람들은 택배노동자들이다. 배부른 사람이 있으면 배고픈 사람도 있다. 빛과 그림자가 있는 것이 세상 이치다.

세월 좋은 사람들은 송년회 준비에 여전히 바쁘다. 눈치껏 삼삼오오 모여 방술(房에서 모여 술 마시는 것)도 즐기고 와인잔도 기울인다. 영리한(?) 사람들은 방역지침이 조금이라도 느슨한 지방의 한적한 카페나 펜션으로 떠나기도 한다. 한 푼이 아쉬운 집 주인에게 보탬도 되고 자기들도 즐길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셈이란다. 방역지침쯤이야 ‘법꾸라지’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가면 된다는 고약한 심보다. 하기야 나라야 절단 나든 말든, 국민이야 죽든 말든, 1년 넘게 법난(法難)으로 싸움질하는 사회지도층의 뻔뻔함보다야 휠씬 덜 하지 않느냐는 말에는 소이부답(笑而不答)할 수밖에 없다.


선(善)하고 아름답게


얼마 전 중국에서 보도된 내용이다. 「색연필로 그린 위조지폐(?)를 받고 홀로 사는 노인에게 국수를 8년 동안이나 제공하고 있다. 오늘도 등 굽은 노인은 조잡하게 그린 지폐를 내고 국수 한 뭉치를 가지고 간다. “노인이 정성껏 그린 그림이니 국수 값으로 충분한 금액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수가게 주인의 말이 감동이다. 

자신의 욕심 잠재우고 노인에게 베푼 작은 배려가 큰 울림이 된다. 감동을 줄 수 있는 삶은 행복하다. 감동은 메마른 삶을 풍요롭게 한다.

한국은 갈등이 심한 사회다. 빈부격차, 진보와 보수, 지역 간, 세대간 갈등의 골을 깊고 넓다. 특히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가치갈등에 대한 백가쟁명식(百家爭鳴式) 처방으로 사분오열되어 있다. 대립각이 클수록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판단기준이 있어야 한다. 척도 없는 분쟁은 무한 반복될 수밖에 없고, 위기에 처할수록 그 갈등은 증폭된다. 서슬 퍼런 펜데믹(pandemic; 세계적 유행 감염병)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개인과 공동 선(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인간은 이성(理性)을 사용해 스스로 법칙을 세우고 그 법칙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존재다. 자기가 세운 원칙을 자기가 지키는 것, 이것이 바로 자유다.- 칸트’ 인류역사는 이러한 개인의 자유를 신장하고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여 왔다. 


개인선 대 공동선 


개인선(個人善)이란 자신의 행복이나 자아실현 등 개인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공동선(共同善)이란 구성원 모두에게 행복이나 복지 등 혜택을 주는 것을 말한다.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공평, 협력, 신뢰, 연대, 정의, 가치, 존엄성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물질적 측면에서는 함께 사용하는 공유자원, 공공재 같은 것을 포함한다. 공동선은 공동체의 가치와 전통의 틀 안에서 구성원의 자아실현과 인격완성을 추구한다. 사회적 유대, 사회적 안정, 치안, 공중보건, 사회 통합 등의 공익적 가치를 중시한다.

현대는 개인주의가 팽배한 사회다. 지나친 개인선의 추구는 사회갈등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 한편 공동선을 내세워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전체를 위한 수단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이를 확대 적용하여 개인의 자유를 기본으로 하는 자유시장 경제와 공평, 평등 등을 내세우는 공산주의 계획경제로 대립각을 세워 갈등을 촉발하기도 한다.

개인선의 정점은 다른 사람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고, 개인의 선한 생활이 공동체적인 삶속에서 선하게 기여하며 승화되는 일이다. 공동선은 개인을 전체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거나 공평, 정의 등의 이름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개인선과 공동선의 중간쯤, 양 극단의 어딘가에 조화롭고 아름다운 균형추가 존재한다. 개인주의적 이기심은 우리의 삶을 메마르게 한다. 반면 상대방에 대한 사려 깊은 배려가 큰 감동과 울림을 준다. 선(善)하고 아름다운 삶은, 타자의 고통을 공감하는데서 출발한다. 개인선과 공동선의 균형점의 측은지심((惻隱之心; 仁)과, 하늘 보고 땅을 굽어 보아도 결코 부끄럽지 않은 수오지심(羞惡之心; 義)의 양심(良心) 속에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물고기는 물속에서는 자신이 물고기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산다. 물 밖으로 나온 후에야 물이 없으면 살 수 없음은 깨닫는다. 코로나를 만나고 나서야 하나의 공동체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어떻게 더불어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져준다.


최병현 미래인재역량개발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