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미디어시대의 표준 ‘지역신문’과 ‘시정신문’

놀뫼신문
2020-05-13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되고 그 다음에는 의심받지만, 되풀이하면 결국 모든 사람이 믿게 된다.” “100%의 거짓말보다는 99%의 거짓말과 1% 진실의 배합이 더 나은 효과를 보여준다.”

나치의 선전장관이던 파울 요제프 괴벨스의 말들이다. 이 위험천만한 말들은 미디어의 위력을 전제로 한다. 

우리는 크고 작은 프레임 속에 갖혀 있다. 매일 접하는 각종 포털이나 신문, 잡지, TV, 라디오 등의 공적인 방송, 트위터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소셜네트워크 등에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프레임을 만난다. 프레임(Frame)이란 개인의 생각을 주도하는 해석과 판단의 지배적인 사고 틀이자 생각의 출발점인 시각이다. 우리 머릿속의 안경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다.

우리는 방송이나 언론이 늘 공정하고 객관적일 거라고 여긴다. 그러나 실상은 프레임에 의하여 좌지우지된다. 뉴스 결정권자은 뉴스를 취사 선택하는 일, 즉 게이트키핑(gatekeeping)부터 시작한다. 뉴스 초입에서 선택, 강조, 배제, 축소의 공정을 거친 다음 방송사 입맛에 맞는 뉴스만 만들어서 내보낸다.

여론은 실제 환경이 아닌, 뉴스미디어가 구성한 의사결정 환경과 일치하는 경향이다. 어떤 미디어가 어떤 의제를 비중있게 다루면 일반인들은 그것을 중요 이슈로 여기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중요한 의제’로 부각되며 사회에 파장을 일으키게 된다. 

언론에서 주목하지 않는 이슈는 사람들의 생각 자체에서 배제되고 만다. 미디어는 ‘무엇을 생각할지’가 아닌 ‘무엇에 대해 생각해야 할 것인지’를 정해준다. 당연한 사실마저 일방적 사실 전달에 의해 왜곡 굴절될 수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의 일상은 미디어에 둘러싸여 있다. 어디를 가든 광고 간판이 있고 온갖 정보가 쉴새 없이 쏟아져 나온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의 눈과 귀는 무언가를 보고 듣는 가운데 그 정보들을 뇌 속에다 저장해 둔다. 과장해서 표현하면 내 생각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내가 접하는 미디어다. 생각의 매트릭스 속에서 살고 있다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다.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서 우울하고 불안한 뉴스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리 되면 사람들은 집단공황 상태에 빠지기 십상이다. 지레 겁먹고 사회와 정국은 혼돈으로 휩싸인다. 이러한 때에 미디어의 순기능이 힘을 발휘해야 한다. 코로나맵을 이용한 실시간 대처로 확진자의 동선이 공개된다. 그래서 조심할 것을 조심하면서 불안감도 해소해 나간다. 정부의 대처능력에 믿음을 가지며 안도감과 자신감을 추스린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늘 미디어를 통해 소통하며 지내고 있다. 1인미디어 시대가 되면서 개인의 소셜미디어 역시 막강한 소통의 도구가 되었다. 개인의 사회참여나 정치참여도 문턱이 낮아져서 순기능 못잖게 역기능도 사회문제로 등장한다. 특히 가짜뉴스의 범람이 심각하다. 

비전문적인 개인 소셜미디어의 역기능에 대한 감시와 보완으로 메이저 방송은 물론 지역신문의 역할이 더 커져간다고 본다. 바야흐로 4차산업혁명으로 손바닥 안에서 서로 보고 대화할 수 있는 세상이다. 구글 카메라는 몇십 년 전 집앞 호수에 가라앉은 차를 상공에서 찍어내어 수십 년간 해결되지 않았던 실종사건을 해결하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는 시공을 초월한 정보화 시대를 관통해가고 있다. 우리의 삶을 보다 풍요롭고 안정되게 하기 위해서 미디어의 역기능을 통제해줄 권위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발표하는 객관적이고도 정확한 데이터가 교과서처럼 표준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사회구성원간 결속이 다져질 수 있다. 

그 역할을 종이신문으로 공들여서 발행하는 논산의 지역신문과 시정신문에게서 기대한다. 특히 시정신문의 경우, 시의 정책이나 행사 내용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시민들의 시정 이해와 판단에 상당 도움이 될 것이다. 욕심을 부린다면, 시정신문이 시의 대변지로만 머무르지 말기를 바란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정을 살피는 가운데 우리 논산시 살림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제대로 아젠다 세팅을 해주면 좋겠다. 관공서 분위기도 유지해야겠지만,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로 지적 오감을 만족시켜서 ‘예향 논산’의 견인차도 되어주면 참 좋겠다. 


이광숙 논산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