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인제 전의원(미래통합당 예비후보) “나의 관록과 마지막 열정을 고향땅에다”

놀뫼신문
2020-02-25

[인터뷰] 이인제 전의원(미래통합당 예비후보)

“나의 관록과 마지막 열정을 고향땅에다”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4·15총선 공천 신청자에 대한 공천심사를 한창 진행 중에 있다. 이번에 현 김종민 의윈과 이인제 전 의원이 각각 21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게 되면 역대 세 번째 대결이 이뤄진다. 두 번의 대결에서 1승1패씩을 나눠 가진 두 사람의 진검승부가 펼쳐질 전망이다. 차분하게 선거전을 펼치고 있는 이인제 전 의원을 만나보았다. 



 당적을 여러 번 바꾼 ‘철새 정치인’이라는 혹평과 ‘불사조 피닉제’라는 애칭에 대하여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선택은 대개 둘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하는 일입니다. 고약하게도 그 둘은 서로 정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신중함과 적극성 사이에서 갈등하며, 망설이고, 주저하며 선택하게 됩니다.

“나의 소신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남들이 살아가는 식을 따를 것인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 만큼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안 볼 수 없습니다. 그 와중에 어떤 사람들은 영리하게도 “소신 따로 행동 따로”의 정치적 전략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저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나 다른 사람들의 눈치 때문에 “소신 따로 행동 따로” 하는 정치적 스탠스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의 사사로운 갈등 관리 차원을 떠나, 오로지 사회적 공정과 국가적 이익 차원에서 정치적 결단을 내려왔습니다.


 이번 21대 총선 출마에 대해 ‘노욕(老慾)’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생겨난 모든 것은 소멸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듯,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물러날 때를 알지 못하는 ‘노욕의 정치인’이라는 비아냥을 들어가면서 30여 년 정치의 마지막 행보를 고향에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서른아홉 피끓는 나이에 국회의원이 되어 6선을 하였고, 사십 불혹에 두 주먹 하나만 가지고 골 깊은 지역감정 및 3김(金)과 맞서며 국민들로부터 15대 대선에서 492만 표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모천회귀(母川回歸) 본능을 가진 연어가 자기가 태어난 하천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 산화(散華)하듯, 저 이인제도 내 고향 산천에 마지막 봉사를 위해 돌아왔습니다. 

지난 4년간 끊없는 성찰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중 가장 괴로웠던 것은 고향분들에게 진심어린 사과 한 마디 못 드린 점이었습니다. 이제 말보다 진심있는 행동으로 30여 년의 마지막 정치 일정을 고향에서, 고향을 위해, 고향의 선·후배들과 함께 봉사하려 합니다.


 30여 년 정치생활 중 가장 고마웠던 분은?

제가 정치 생활을 하면서 제일 고마운 사람은 바로 제 집사람입니다. 언제나 제 곁에서 든든한 후원자 노릇을 해주었으며, 어려울 때 힘들 때마다 제 버팀목이 되어 주었습니다.

집사람과 저의 운명적인 첫 만남은 중학교 때입니다. 제가 논산중학교 학생회장때, 학생회장 모임에서 논산여자중학교 학생회장으로 참석한 집사람과 첫 대면하게 된 것입니다. 집사람은 상월이 고향으로 반월초, 은진초등학교를 거쳐 논산여자중학교를 다녔던 때입니다.

중학교를 마치고 저는 서울에 있는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에, 집사람은 대전여고를 거쳐 공주교대를 졸업했습니다. 제가 대학생활 중 학생운동으로 고시 준비를 소홀히 한 덕에 1979년 군을 제대하고 나서야 사법시험을 패스하게 되었습니다. 반면 집사람은 교육자 집안의 전통을 이어 대전의 문지초등학교와 새일초등학교에서 8년간 교직 생활을 했습니다. 1976년 2월 제가 군에 입대하기 3일 전에 집사람과 백년해로를 약속하며 부부의 연을 맺었습니다.

대학재학시절 학생운동을 할 때부터 사법시험 공부 등 모든 인생 전반에서 집사람의 도움이 저에게는 가장 큰 힘이 되었습니다.


 지금 국가적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코로나-19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인간이 새로운 질병, 특히 신종 전염병에 대하여 큰 두려움을 갖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어떻게 대응할지 알지 못하고, 구체적인 백신이나 약도 없으며, 상황이 어떻게 될 것이란 예측도 못하는 불안감이 두려움을 더욱 키우게 됩니다.

2003년 사스, 2014년 에볼라가 그랬듯이 지금은 코로나-19가 바로 공포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공포와 차단이 전염병을 막는 최선의 방책이 아닌 것 또한 분명한 사실입니다.

바이러스를 잡는 건 의학의 임무지만 공포와 불안을 진정시킬 책임은 정치에 있습니다. 중국 정부의 초기 대응 실패가 어쩔 수 없었던 일이 아니라, 사안을 축소·은폐하는 데 익숙한 고질적인 폐쇄성에서 비롯했음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의 코로나-19와의 싸움은 어느 한 지역,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제 협력과 공조로 전염병에 체계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앞으로 세계적 유행 전염병은 더 자주, 더 독하게 찾아올 텐데 국제사회 협력이 약해지는 건 몹시 우려스럽습니다. 가장 효과적인 전염병 대처는 차단이나 폐쇄가 아니라, 정확한 정보 공유와 국가 사이 협력이라고 국제보건규약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 이번에 당선이 되면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준비하고 계신지?

총선을 50일 앞두고 각 정당은 물론 예비후보들이 쏟아내는 묻지마 공약을 보면, 황당한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포퓰리즘에 여야가 따로 없다지만 예비후보들이 내건 공약 이행에만도 몇백조 이상 소요될 판입니다. 현재 국회가 깔아뭉개고 있는 ‘선거공약 사전검증제’를 당장 도입해 폭주하는 포퓰리즘에 제동을 걸어야 합니다.

저는 ‘저 자신의 첫 단추’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됐을 때 그때의 심정으로 돌아가서 ‘약자(弱者)’와 함께 ‘사회의 정의와 공정’을 위해 일하겠다는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기생충>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이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빈부 격차가 전 세계의 공통 관심사이자 모든 나라의 사회적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고향의 청년이 떠나가면서 아이들 웃음소리가 사라지고 노인들의 힘겨운 한숨 소리만 들려오는데, 도로 넓히고 다리 건설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저는 어르신들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고향 동네를 일구고 싶습니다. 청년들이 마음 놓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100세 시대의 어르신들이 마음 편히 노년을 즐길 수 있는 고향 동네를 만들고 싶습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판사, 노동부장관, 경기도지사, 6선의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를 다스려 보겠다고 대통령에 도전도 해 보았습니다. 특별하고 구체적인 공약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저 자신의 첫 단추’로 돌아가서 그동안 쌓아온 저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고향 선·후배들과 함께 행복하면서도 소박한 “사람 사는 내 고향”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은?

2000년 6월 제16대부터 19대까지 네 번의 국회의원 배지를 달아준 논·계·금 시민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어찌 할 줄 모르겠습니다.

지난 4년간 깊은 성찰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특히 지난 지방선거에서 마땅한 후보가 없어 당의 완곡한 출마 요청을 거절 못하고, 원치 않는 선거 결과로 인한 여러분들에게 큰 실망을 드린 점 크게 뉘우치고 있습니다. 또한 이번 총선에서도 저보다 더 역량 있은 후보를 추천하기 위해 백방 노력해 보았지만, 여러분들이 완강하게 거절한 관계로 제가 다시 후보군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제가 정치를 시작한 지도 벌써 30여 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정치는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같이 더불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누구와 어떻게 하느냐가 더욱 중요한 대목입니다. 저에게 다시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 소속은 다르지만 황명선 시장과 호흡을 맞추어 지역 발전에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그리고 고향의 훌륭한 인재들이 성장 할 수 있도록 정치 원로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담] 전영주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