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야기: 화가와 친구들] 7. 작가 강신영

놀뫼신문
2019-12-18


현대미술의 기능은 삶의 원리를 들춰야 하는 까닭에 누구나 할 수 없고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없다. 세계 밖의 시선을 확보하는 것. 사적 입장을 취하는 것. 이것은 자신의 삶 전부를 그것을 위해 내려놓아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한 사람의 일생일대의 작업 중 폐부를 찌르는 작업 하나를 보여줄 수 있다면 그 또한 작가로 불릴 자격이 있다. 

작가 한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강신영 작가는 한국화를 수학했음에도 입체적인 작품을 만드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그는 젊은 시절 서예와 서각을 연구하며 조형적인 감각을 길렀다. 여기에 비상한 관찰력과 묘사력을 갖추어 지필묵이라는 전통적 도구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는 한국화가로 성장한다. 그는 중국 대가의 그림을 공부하고 글씨를 쓰며 호랑이 그림을 그림으로써 상업화가로서도 인정받았다. 그러던 그가 돌연 작품이 바뀌게 되는 계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그의 붓이 원숙해질 즘 만난 황창배는 자신의 현대적 안목을 그와 아낌없이 공유했다. 



한국화의 이단아. 작업에 매진하기 위해 교수직을 버리고 충북 괴산으로 낙향하여 홀로 지내던 황창배와 열정 가득한 신예 강신영의 만남은 워홀과 바스키야의 만남만큼이나 드라마틱했다. 황창배의 작업실에 난방용 기름을 대던 주유소 사장님은 한때 표구와 배접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서울의 표구사에서 대가들의 그림이라면 적지 않게 보아온 그가 자신의 형님도 그림을 그린다며 황창배 선생께 소개한 이가 강신영 작가였다. 트럭에 가득 찬 그림을 괴산 작업실 마당에서 보여드리는 것으로 그들은 사제의 연을 맺고 술잔을 나누었다. 아카데미가 아닌 작업의 현장에서 맺어진 인연으로 그들은 작업에 관하여 많은 이야기를 했다. 

혹자는 그의 스승 황창배 작가의 영향력을 강조하여 말하지만, 그는 스승의 길을 따르지 않음으로 스승의 뜻을 취했다. 고정관념과 쉬운 답을 혐오하던 황창배의 안목을 누구보다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강신영은 자기만의 길을 걸어갔다. 강신영 작가의 작가다운 면모는 세상을 떠난 스승에 대한 그의 변함없는 의리나 세련된 필치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의 작업이 빛나는 이유는 그의 작업이 스승의 작업과 다름에 있다.

나는 그의 대표작으로 ‘소리’를 꼽는다. 추수를 마친 볏단을 잘라 한 땀 한 땀 정성껏 캔버스에 붙여나간다. 이는 철저히 설계된 스케치를 참고하며 이루어진다. 이윽고 캔버스는 거대한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향의 형상, 혹은 호수에 던져진 돌의 파장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을 박제화 시킨다. 바람에 일렁이는 이 땅의 황금벌판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는 이 작업을 위해 자신이 일생을 바쳐 씨름한 지필묵을 내려놓았다.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자신의 의도를 완벽하게 보여 줄 형식뿐이었다. 

우리의 삶과 생각은 끊임없이 태동하며 소리로 전해진다. 작품 ‘소리’의 의미를 그의 행적과 발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는 그의 ‘소리’가 특정한 민중의 저항정신을 반영한 것도 아니며, 관객이 무엇으로 보더라도 좋다고 고백한다. 그는 작업에 의미 붙이기를 거부함으로써 정해진 무엇이 되는 것을 거부한다. 또한 작품이 시간과 중력에 의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겠노라 말한다. 그의 작업이 결코 아름다움을 추구한 디자인이나 공예가 아니며, 아직 종료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강신영은 작품 ‘소리’를 대한민국미술대전 ‘한국화’부에 출품하였으나 심사위원들의 논의 끝에 ‘조각’부로 재분류되어 입선과 특선에 연이어 입상한다. 갤러리 삼성프라자에서의 초대전으로 세상에 내보인 ‘소리’작업을 뒤로하고 강신영은 다시 지필묵을 들었다. 그가 과거의 성취를 좇아 애써 작업을 반복하지 않는 이유는 그의 삶과 생각이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탓이 아닐까.


이호억 중앙대학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