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농부의 길

놀뫼신문
2019-10-30

김광영(농부, 상월면)


집을 짓고, 밥을 짓는 것처럼 농사는 사람의 본능이다. 본래 농사(農事)의 농은 曲노래 곡, 辰별 진이 더해진 글자라고 한다. 우리말로 풀어 본다면 농사는 별들의 노랫소리를 듣는 일 쯤이다. 농부들은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의 움직임을 보고, 씨를 뿌리고 농작물을 거두었다. 독일의 인지학자 슈타이너는 별자리를 보고 농사를 지으라고 가르쳤다. 그의 농법은 한국에 생명역동농법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외국에서는 데메터라는 인증표준으로 생산된다.

나는 농업인보다는 농민이라는 말이, 농민이라는 말보다는 농부가 좋다. 농업인과 농민, 농부의 차이는 무엇일까?

농업인은 수익을 앞세울 것 같은, 왠지 수 천 수 만평의 농사를 지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지금 농촌은 농업인이 아니면 살기가 어렵다. 먹을거리 외에도 다른 많은 지출이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오르는 농업용 자재비에 비해, 농산물 가격은 해마다 떨어지거나 제자리 걸음인 탓. 농사의 양을 늘려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농민의 느낌은 처절하다. 고된 노동과 수탈, 가난 같은 단어가 떠오른다. 1980년대 1천 만을 넘던 농민들이 2019년는 2백5십만 명으로 대폭 감소했다. 한국 전체 인구의 5%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인구 출생률도 저조하다. 초상은 있어도, 돌잔치는 없다는 말이 더 이상 우스개 소리가 아니다. 농촌의 노령화 추세로 볼 때 전업농은 백오십 만에서 이백만 정도로 추정된다. 가끔 여의도에 농민대회 나가시던 어르신들도 이제는 못 올라가신다. 너무 나이가 든 탓이다. 반면 비교적 젊은 4,50대 농민들은 전보다 늘어난 일 때문에 농업의 구조를 바꾸는 행동에 나서기가 쉽지 않다.

농부의 느낌은 어떨까? 때와 절기를 잘 알아 달력이 아니라, 감성으로 씨 뿌릴 때와 거둘 때를 안다. 계절을 거스르지 않고, 풍년이든 흉년이든 하늘의 댓가에 만족한다. 농부는 땅에 작물 뿐 아니라 도덕을 심는다. 농부가 심은 곡식은 누군가의 삶을 북돋는 기운이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농부는 세상에 남이란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농부에게는 모두가 한 식구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다면, 한 명의 농부를 키우는 데는 우주가 필요하다. 때때로 비가 와 줘야 하고.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워야 한다. 흙 알갱이만큼이나 많은 변수를 이겨내고, 농부는 어떤 상황에서도 기어이 수확한다.

계절을 거슬러 농사짓고 싶지 않다. 비닐과 화학비료, 농약과 제초제를 써가며 농사짓고 싶지 않다. 스위스나 독일처럼은 아니더라도 농부들이 생태에 미치는 좋은 영향을 알아주면 좋겠다. 나라의 살림을 위해 많은 양보를 한 농부들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구의 5%도 안 되는 농민들은 지금도 여전히 식구들의 밥상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것을 밥상을 대할 때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