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공간] 시장 구명 탄원서 받는 면사무소, 제정신인가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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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현 논산시장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벌금 150만 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백 시장 측이 주장한 ‘관행’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범행 규모가 상당한 데다 이해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하며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백 시장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는 것은 법률이 보장한 권리다. 그러나 법정에서 다퉈야 할 시장 개인의 형사사건에 이장들과 면사무소가 등장했다면 차원이 다른 문제다.

본지가 확보한 자료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면사무소에 탄원서 양식이 있으니 마을 이장님들께서는 주민들 서명 받아서 9월 10일까지 면사무소에 제출 부탁드립니다.”

단순히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작성한 탄원서가 아니다. 면사무소에 탄원서 양식이 준비돼 있고, 이장들에게 주민 서명을 받아 오도록 요청했으며, 제출 장소와 기한까지 지정했다. 이 정도면 누가 보더라도 조직적인 탄원서 수집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면사무소가 시장 개인의 구명 창구인가


탄원서를 제출하는 행위 자체는 시민의 권리다. 백 시장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탄원서를 작성해 법원에 제출하는 것까지 비판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개인의 자발적인 탄원과 전혀 다르다. 면사무소에 동일한 양식이 비치돼 있고, 마을 이장들이 주민들의 서명을 받아 정해진 날짜까지 다시 면사무소에 제출하도록 했다.

면사무소는 주민등록과 복지, 농정, 재난 대응 등 주민의 생활을 지원하는 공공기관이다. 시장 개인의 형사재판을 돕기 위한 탄원서를 나눠주고 회수하는 장소가 아니다.

도대체 누가 면사무소에 탄원서 양식을 가져다 놓았는가. 누가 이장들에게 주민 서명을 받아 오라고 요청했는가. 누가 9월 10일이라는 제출 기한을 정했는가. 면사무소에 모인 탄원서는 누가 취합해 어디로 전달하는가.

이 과정을 공무원들이 전혀 몰랐다고 할 수 있는가. 민원서류도 아닌 시장 개인의 탄원서가 면사무소에 비치되고 다시 그곳으로 제출되는데도 담당 공무원과 면장이 아무것도 몰랐다는 해명이 가능하겠는가.

공무원이 직접 서명을 받지 않았다고 해서 행정 개입이 아닌 것은 아니다. 행정기관이 장소와 전달망, 회수 창구를 제공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정조직의 사적 이용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장과 주민을 시장의 방패로 세우지 말라


이장은 행정의 각종 공지사항을 주민에게 전달하고 마을의 의견을 행정기관에 전달하는 공적 역할을 맡고 있다. 주민들은 재난지원, 복지사업, 농업 보조금, 각종 행정정보를 이장을 통해 접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관계에서 이장이 탄원서를 들고 주민을 찾아가 서명을 요구한다면 주민들이 아무런 부담 없이 거절할 수 있겠는가. 시장을 지지하지 않는 주민도 마을 관계와 앞으로의 행정적 불편을 우려해 마지못해 서명할 수 있다.

그렇게 받은 서명을 과연 ‘시민들의 자발적인 선처 호소’라고 법원에 내놓을 수 있는가. 주민의 자유로운 의사를 확인하기 어려운 탄원서는 민심이 아니라 동원된 숫자에 불과하다.

이장들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누군가의 지시나 요청에 따라 주민을 찾아다니며 서명을 받아야 한다면 시장 개인의 정치적 생명을 위해 가장 말단의 마을 조직이 동원되는 셈이다.

논산의 이장들이 시장의 선거운동원인가. 면사무소가 시장의 변호인 사무실인가. 주민들이 백 시장의 재판에 제출할 서명 숫자를 채워주는 도구인가.

행정과 주민자치를 이처럼 노골적으로 사유화한다면 이는 탄원을 넘어 시민에 대한 모욕이다.


반성 대신 ‘관제 탄원’으로 법원을 압박하나


재판부는 백 시장이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그런데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자마자 읍·면·동 행정망과 이장 조직을 이용해 대규모 탄원서를 모으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반성과는 더욱 멀어진 행동이다.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 뒤로는 주민 서명을 대량으로 모아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더욱이 그 과정에 면사무소와 이장단이라는 공적 조직이 이용됐다면 ‘시민의 자발적인 탄원’으로 포장할 수도 없다. 사실상 관제 탄원이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백 시장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탄원서 작성과 배포를 사전에 알고 있었는가. 측근이나 공무원에게 탄원서 수집을 요청한 사실이 있는가. 읍·면·동장이나 이장단에 협조를 요구했는가. 면사무소를 탄원서 배부·접수 창구로 사용하도록 누가 결정했는가.

논산시 감사부서도 즉시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 그러나 시장을 보좌하는 내부 감사로 진실을 밝힐 수 있을지 의문이다. 논산시의회와 충남도 감사기관, 선거관리위원회 등 외부기관이 탄원서 작성자와 최초 배포자, 읍·면·동 전달 과정, 공무원 개입 여부, 주민 서명 수집 방식 등을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

공무원 개입이 확인된다면 “좋은 뜻에서 도와준 것”이라는 변명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행정조직을 시장 개인의 형사재판에 동원한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

백 시장이 정말 억울하다면 법정에서 증거와 법리로 입증하면 된다. 주민과 이장들을 앞세우고 면사무소를 탄원서 접수처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논산시는 백성현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면사무소도, 공무원도, 이장도 시장 한 사람의 정치적 생명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 개인의 재판을 위해 행정조직이 움직였다면 그것은 충성이 아니라 권력의 사유화다. 즉각 탄원서 수집을 중단하고, 누가 기획하고 지시했는지 낱낱이 밝혀라. 시민이 지금 요구하는 것은 구명을 위한 서명지가 아니라 진실에 대한 해명과 책임 있는 사과다.



- 전영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