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공간] ‘무궁화의 날’, 정치인에게 고함

2026-08-08


8월 8일은 ‘무궁화의 날’이다.

이날은 어린이들의 고사리손으로 만들어졌다. 시작은 “왜 무궁화의 날은 없나요?”라는 한 어린이의 인터넷 게시글이었다. 이 질문에 전국의 어린이들과 시민단체가 공감했고, 1만 명이 넘는 어린이들의 서명으로 2007년 8월 8일 ‘무궁화의 날’이 선포됐다. 이후 민간을 중심으로 매년 이날을 기념해 오고 있다.

8월 8일이라는 날짜에도 의미가 있다. 숫자 ‘8’을 옆으로 눕히면 무한대를 뜻하는 ‘∞’ 모양이 된다. ‘끝이 없다’는 뜻의 ‘무궁(無窮)’을 상징한다는 의미에서 이날이 선택됐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무궁화의 날’은 아직 법정기념일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무궁화를 대한민국의 국화, 즉 ‘나라꽃’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이를 명확하게 규정하는 법적 근거 역시 충분히 정비돼 있지 않다.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하다. 애국가에도 등장하고 각종 국가 상징물에도 빠짐없이 등장하는 꽃인데 정작 법적 지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분명하지 않다.


우리 민족과 함께한 꽃


무궁화는 오래전부터 한민족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우리나라를 ‘근역(槿域)’, 즉 ‘무궁화가 피는 땅’으로 표현했고, 옛 기록에는 ‘근화향(槿花鄕)’, 다시 말해 ‘무궁화의 나라’라는 뜻으로 나타낸 표현도 전해진다.

특히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무궁화는 단순한 꽃을 넘어 ‘민족의 꽃’으로 자리 잡았다. 나라를 빼앗긴 시대에 독립운동가들은 무궁화에서 끈질긴 생명력과 희망을 보았다.

무궁화는 강하다.

한여름 폭염과 장맛비 속에서도 꽃을 피운다. 한 송이의 삶은 길지 않지만 오늘의 꽃이 지면 다음 날 또 다른 꽃이 핀다. 그렇게 7월부터 가을까지 끊임없이 피고 진다.

수많은 외침과 전쟁, 식민지배와 가난을 견뎌내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궈낸 우리 민족의 모습과 닮았다.

그래서 ‘무궁화(無窮花)’라는 이름에는 ‘끝없이 피어나는 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질 때 더욱 빛나는 꽃


필자는 무궁화의 가장 큰 매력 가운데 하나가 ‘지는 모습’에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꽃은 활짝 피었을 때 아름답지만 질 때는 꽃잎이 흩어지고 바닥에 어지럽게 쌓인다.

그러나 무궁화는 다르다.

활짝 피었던 꽃잎을 서서히 오므려 하나의 꽃봉오리처럼 말린 채 떨어진다. 꽃잎을 사방으로 흩날리며 자신의 흔적을 요란하게 남기지도 않는다.

피어 있을 때 아름답고, 질 때도 단정하다.

마지막 순간까지 스스로 모습을 거두는 듯한 그 모습에서 기품이 느껴진다.

어쩌면 우리 조상들이 무궁화를 사랑했던 이유도 강인함과 끈기뿐 아니라 떠날 때의 단정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무궁화는 대한민국 최고 훈장인 ‘무궁화대훈장’을 비롯해 국회의원 배지, 국가기관의 문장 등 각종 국가 상징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법률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국민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나라꽃’이었던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남과 북이 서로 다른 꽃을 나라의 상징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나라꽃은 ‘목란’이다. 일반적으로 함박꽃나무 또는 산목련으로 알려진 식물이다.

목련류는 봄이 오면 커다란 흰 꽃을 피워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나무에 달려 있을 때는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꽃이 떨어진 뒤에는 모습이 크게 달라진다. 두꺼운 꽃잎은 금세 갈색으로 변하고 비라도 맞으면 바닥에 들러붙는다.

그래서 어떤 이는 목련을 두고 “필 때와 질 때의 차이가 큰 꽃”이라며 "뒤끝이 좋지 않다"고 말한다.

반면 무궁화는 한 송이가 지면 다음 꽃을 준비한다. 한순간의 화려함보다 오랫동안 이어지는 생명력을 보여준다.

물론 꽃에 우열이 있을 수는 없다. 다만 무궁화가 보여주는 끈기와 절제, 그리고 떠날 때의 모습은 오늘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무궁화에게 정치를 묻다


무궁화는 오늘 꽃이 피었다고 내일의 꽃자리까지 차지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하루를 다하면 조용히 자리를 내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새로운 꽃이 피어난다.

민주주의도 그래야 한다.

한 사람이 영원히 자리를 차지할 수도 없고 한 세력이 영원히 권력을 독점해서도 안 된다. 때가 되면 다음 사람에게 자리를 넘겨주는 것이 민주주의다.

선출직의 자리는 정치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시민에게 일정 기간 빌려 쓰는 자리다. 시장도, 시의원도, 국회의원도 선거를 통해 권한을 위임받았을 뿐 권력을 소유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막상 자리에 오르면 이를 잊는 정치인이 적지 않다.

자신이 없으면 지역이 움직이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고,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적으로 돌린다.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은 멀리하고, 칭찬하는 사람만 곁에 두려 한다. 오랫동안 권력의 자리에 있다 보면 주변의 박수마저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임기가 끝나면 알게 된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고개를 숙인 것이 아니라 ‘자리’에 고개를 숙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정치인에게 필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가 ‘떠날 준비’다.

당선되는 방법만 배울 것이 아니라, 떠나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 권력을 얻는 기술만큼 권력을 내려놓는 품격도 중요하다.

오늘 내가 피었다면 내일은 다른 꽃이 필 수도 있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정치인은 어떻게 당선됐는가보다 어떻게 떠났는가로 더 오래 기억되기도 한다. 잘 피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지는 것은 더 어렵다. 그래서 품격이 필요하다.

8월 8일 ‘무궁화의 날’.

길가에 핀 무궁화를 바라보며 정치인들에게 한마디 건네고 싶다.

“피어 있을 때 아름다운 것은 어렵지 않다. 진짜 품격은 질 때 드러난다.”

우리 정치에서도 무궁화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때에는 당당하게 피고, 때가 되면 깨끗하고 단정하게 자리를 내려놓을 줄 아는 정치인을 더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무궁화의 날’에 나라꽃이 우리 정치에 건네는 가장 따끔한 가르침 아닐까.


전영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