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집] 착시, 착각, 착오의 대가

놀뫼신문
2024-09-08


사람들은 자신이 ‘정상적 ∼’이라고 생각하는 비정상에 빠져 있다. 자신은 지극히 정상적으로 감각하고, 사고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당시에는 옳은 판단이라고 장담했는데 뒤에 돌이켜 생각하면 ‘내가 왜 그때 그런 생각을 했을까’ 후회하기도 한다. 사물이나 현상을 정확히 보지 못하는 착시 때문이다. 착시는 착각을 낳고, 착각은 착오를 낳는다.


도깨비가 파 놓은 함정


어느 날 친구에게 전화했더니 “나 지금 해외에 나와 있어”라고 했다. 얼마 전에도 외국 여행을 다녀왔던지라 무슨 해외여행을 그리 자주 다니느냐 했더니, 사실은 제주도에 있다고 했다. 우리는 제주도를 가면서 우스갯소리로 해외에 간다고 하기도 한다. 제주도는 우리나라이지만 육지와는 풍물이 많이 다르다. 그래서 가볍게 잠깐 이국적인 정취를 느껴 보려고 제주도로 여행을 간다. 

내가 처음 제주도에 간 때는 해외여행을 경험하기 이전이었는데 흡사 외국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때가 마침 봄이라 밤에 찾아간 천지연폭포의 분위기는 환상적이었다. 마음은 들떠 있고, 엷은 안개가 끼어 그윽한 가로등 불빛 사이로 쏟아지는 물소리가 쟁쟁한데 아카시아 향기가 사정없이 물결쳤다. 시각과 청각, 후각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내 언젠가 그런 밤에 그곳에 다시 가리라. 특히 남한에서 가장 높은 곳인 한라산 정상에 올랐을 때, 백록담의 맑은 물에 손을 담갔을 때 감격적이었다. 

여행하는 동안 날마다 가는 곳마다 진귀하고 새로웠다. 도깨비도로에 갔을 때는 정말 도깨비에게 홀린 것 같았다, 눈으로 보기에 분명 오르막인데도 차가 저절로 굴러 내려갔다. 나의 감각과는 전혀 다른 현상, 이런 것을 신비하다고 표현한다. 그 오랜 뒤에 내가 근무하던 학교에 기념비를 세웠는데, 얼마 뒤에 보니 비석이 기울어져 있었다. 시공할 때에 수평을 맞추었는데 큰일이다 싶었다. 부랴부랴 점검해 보니 정확한 수평이었다. 잔디밭이 기울어 있어서 비석이 기운 것처럼 보인 것이다. 이렇게 도깨비는 어디에나 수없이 많다. 


헷갈리는 현실


우리는 내가 보고 듣고 감각하는 것을 굳게 믿지만, 그 감각은 사실 믿을 수가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이나 귀로 듣는 것이 이렇게 부정확하다. 

연암 박지원이 쓴 《도강록(渡江錄)》은 우리에게 감각을 경계하라고 이른다. 밤에 강을 건널 때는 물결치는 소리가 크게 들려 두려워하였는데, 낮에 강을 건널 때는 물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밤에는 모든 감각이 귀에만 쏠려 물소리가 크게 들렸으나, 낮에는 사나운 물결을 보고 두려워 감각이 온통 눈으로만 쏠려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똑같은 것이라도 언제 어떤 환경이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낀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하나의 현상이나 사건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등하교하는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학교 앞의 자동차 제한 속도를 다른 도로보다 낮게 설정하였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부모 입장에서는 현행보다 더 낮게 속도를 제한하고 위반 차량을 더 엄중하게 제재하여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생업에 쫓기는 사람은 가혹한 처사라고 못마땅해 할 수도 있다.


착오의 대가는 가혹하다


착각은 착오를 일으킨다. 한때 ‘착각은 아름답다’라는 말이 유행했다. 제멋에 사는 게 인생이라는 말도 버젓이 있으니 그렇게 믿는 사람도 더러 있을 법하다. 착각은 정말 아름다운가. 얼토당토않은 말이다. 착각은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독일은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하여 전쟁에서 이길 것으로 예측하고 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그 가족들을 슬픔에 빠트리고, 세계인을 전쟁의 공포에 떨게 했다. 그러나 반성하지 않고 히틀러는 다시 끔찍한 전쟁을 일으켰다. 착각에서 비롯된 착오는 모두를 불행하게 한다. 깊은 성찰과 냉정한 반성이 없이 거듭하는 착오의 대가는 엄청난 불행이다.

과거에 많은 뱃사람들이 바다 위에 떠 있는 범선을 보고 공포에 떨었다. 17세기 초에 희망봉을 항해하던 네덜란드 상선 플라잉 더치맨호가 침몰했는데, 날씨가 좋지 않은데도 선장이 고집을 부린 죄로 이 배가 유령선이 되어 영원히 바다를 떠돈다는 전설 때문이었다. 학자들은 이를 기후의 영향을 받아 배가 하늘에 떠 있는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키는 파타 모르가나 현상으로 해석한다. 

우리는 지금 유령선을 타고 바다를 끝없이 떠돌고 있는가, 아니면 그 유령선을 보고 공포에 떨고 있는가 곰곰이 따져 볼 일이다.


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