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를 돌아본다3] 1990년대 말기 논산의 문학 활동

2026-08-24


1997년에는 그간 놀뫼문학회에서 주최하던 놀뫼백일장을 논산문협으로 이관하였다. 지부장이던 권선옥이 놀뫼문학회를 주도하였으므로 논산문협과 놀뫼문학회가 명확한 구분이 서지 않았다. 그러나 훗날 권선옥이 문협 지부장을 떠나면서 백일장을 그대로 논산문협에 두고 가서 계속하여 논산문협이 백일장을 주최하게 되었다. 놀뫼백일장은 논산지역의 가장 권위 있는 백일장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그 역사가 깊어 2026년에 37회를 맞이하였다. 지금은 작품을 접수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현장에서 경연할 당시 최대 600여 명이 참가하기도 했다.


박용래·김관식 시비 건립


또 하나의 큰 일은 논산문인협회가 주최한 일은 아니지만 논산에 박용래·김관식 시비가 나란히 건립된 일이다. 시비 건립 기금은 문인들과 가족이 부담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시비 건립 경비 일체를 논산시 예산에 반영한 것이 특이하다 하겠다. 그리고 시비 건립 기념 문집 『땅에도 별이 뜬다』를 권선옥의 편저로 간행하였다. 이렇게 논산시에서 전적으로 성의를 보인 것은 당시 전일순 시장의 배려였다.

1997년 발행 『논산문학』 5집에는 시비 건립을 기념하기 위한 특집을 마련했다. 박용래 편에는 연보, 박용래의 현대시학 작품상 수상작인 「겨울밤」 등 대표작 10편, 당시 목원대 교수였던 홍희표의 평론, 박용래 시인 차녀 박연 씨의 「아버지는 오십 먹은 소년」, 절친이었던 임강빈 시인의 「박용래의 회상」이 실렸다. 김관식 편에는 연보와 대표시로 「무제(無題)」 등 10편, 김관식의 산문 「습작(習作)을 모아 「낙화집(洛花集)」을」, 광주대 교수인 이은봉의 「김관식의 시 세계」, 산문으로는 부인인 방옥례 여사의 「문단 데뷔와 명동 진출」, 신경림 시인이 김관식 시선집 발문으로 쓴 「김관식 그 인간과 문학」을 실었다.

회원 신작은 시만 겨우 9명이 실렸는데 모두가 놀뫼문학회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 아홉 사람의 시가 무려 91편이다. 논산문협에 참여했던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않고, 주류를 이루던 놀뫼문학 회원들이 논산문협을 지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놀뫼문학 회원들이 이끈 논산문협


1998년에 발행한 『논산문학』 6집 역시 <특집 1 시인의 대표작>에서는 박용래·김관식·권선옥의 시 각 5편씩을 실었다. 그리고 이걸재가 쓴 희곡 「황산벌」을 80페이지에 걸쳐 싣고 있다. 그리고 회원 6명의 시가 실려 있다. 이 시기에도 논산문협은 놀뫼문학 회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1999년에 정기총회에서 수필가 김영배를 지부장으로 선출하였다. 조치원에 근무하던 김영배 수필가가 고향인 논산고등학교 교장으로 부임(1996~1997)하여 논산에 거주하였으므로 지부장이었던 권선옥은 부지부장을 맡아 지부장을 보좌하기로 하였다. 

1999년과 2000년에 걸쳐 논산문협은 내실을 다지게 되었다. 처음에 참여하였던 회원들 중 상당수가 활동을 중지하고, 문단 활동을 활발히 하는 양질의 회원으로 대체되는 시기를 맞은 것이다. 

창립 당시 30명이었던 회원 숫자가 22명으로 감소하였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긍정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때까지 정식으로 문단 데뷔 절차를 통과한 회원은 김영배와 권선옥뿐이었던 논산문협에 추천 과정을 거친 문인들이 입회하였다. 논산신문 기자로 재직하던 수필가 김동권이 논산에 잠시 둥지를 틀었다. 또, 『시와 의식』를 통해 문단에 오른 윤문자. 『수필문학』에 추천 완료한 김점수, 김미숙이 『수필문학』에서 초회 추천을 받았다. 논산문협 회원이 중앙 문단과 깊은 관련을 맺어 진출하는 시기가 되었다. 또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국어 교사로 근무하던 서우선과 고덕상도 합류하여 회원들이 정제되었다고 할 수 있다.

회원들의 창작집 발간도 활발하여 윤문자 회원이 시집 『하늘 계곡』을 발간하였고, 김영배 지부장이 수필집 『돌 하나도 짐이 될세라』와 시조집 『지등 하나 걸어 놓고』를, 고덕상 회원이 시집 『구름과의 대화』를 발간하였다.

박용래 시인 서거 20주기를 맞아 문학 강연과 시낭송회를 개최하였다. <시인은 죽어서도 외롭지 않다>라는 연제로 임강빈 시인이 강연하였고, 여러 회원이 박용래의 시를 낭송하였다. 


이래도 되는 걸까, 너에게 묻는다


2000년 발행 8집에서 눈에 띄는 특징은 참여 회원이 14명으로 다소 증가하였다는 점이다. 또 출향 문인 특집에서 시 7명, 수필 2명을 초대하였다. 강경 출신 야석(也石) 박희선(朴喜善) 선생이 타계하여 추모 특집으로 김영배가 쓴 「야석 선생의 인생과 문학」이 실려 있다. 야석 박희선 선생은 1923년 강경에서 출생하여 전주사범 심상과에 입학하여 수학 중 우리말 수호를 목적으로 결성한 <별> 동인회의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퇴학당했다. 일본에 건너가 고마자와대학 불교과에 입학하였으나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중국 주재 일본군으로 복무하였다. 그곳에서 탈출하여조국 광복을 위한 특수 유격대원으로 활동하다가 일본군에 체포되어 군사재판을 받고 상해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되었는데 공복이 되어 석방된 애국지사이다. 박용래 등과 시 동인지 『동백』을 창간하였고, 시집 7권과 모더니즘 시인 30인의 작품에 해설을 붙인 『그리스도 폴의 강』 등을 저술하였다. 송광사에서 수계(受戒)하였으며, 전북대 등 대학에서 시학을 강의하였다. 

야석 박희선 선생은 유감스럽게도 우리 논산에서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 휘황한 서치라이트 아래서 눈부신 모습으로 갈채를 받는 문인들도 있다. 그러나 논산의 문학을 씨 뿌려 키워온 공로자, 논산 출신으로 한국문학사에 뚜렷이 기록된 문인인데도 대중적으로 인기가 없다는 이유로 묵정밭의 무성한 풀섶에 묻혀 있다.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고장의 자랑스런 문인인 시인 김형원, 소설가 엄흥섭, 소설가 박노갑에 대한 조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말에 아부도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왜, 너, 너, 너는 논산의 주인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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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