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를 돌아본다2] 논산에 문학의 서광이 비칠 때

2026-08-09


신생 단체로 출발한 논산문인협회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회원들의 상당수가 문학 활동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이어서 더욱 그랬다. 문인협회 회원이 됨으로써 문인이 되었다는 생각들이 단체에의 참여의식을 더욱 강하게 부추겼을 것이다. 


희망의 나라로


단체의 창립 초기의 활동 상황은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처음이므로 열심히 활동하는 경우가 있고, 처음이라서 그 걸음이 더딜 수도 있다. 논산문인협회는 그 전자의 예에 속한다. 회원들은 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무엇인가가 이루어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

당시 문화공보부에서는 우리나라의 문화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을 <이달의 문화 인물>로 선정하여 그의 업적을 기리는 행사를 하였다. 1993년 12월의 문화 인물로 논산 출신으로 우리 영화를 처음 감독한 윤백남이 선정되었다. 문화적 열등감에 빠져 있던 논산으로서는 대단한 사건이었다. 그래서 <윤백남 선생 12월의 문화 인물 선정 기념 예술제>가 열렸다. 논산문협은 이 행사의 일환으로 시화전과 교양강좌를 주관하였다. 

그리고 12월에 『논산문학』 창간호를 발간하였다. ‘

1994년에 『논산문학』 제2호를 발간한다. 특집 1은 <향토 출신 작가 발자취>로 건양대 국문과 교수였던 구수경이 ‘대중문학의 선구자-윤백남’, 대전일보 문화부 기자였던 김재근의 ‘궁핍한 시대 소설가의 길- 박노갑’과 ‘우울한 리얼리스트의 꿈과 좌절- 엄흥섭’을 싣고 있다. 

작품을 싣고 있는 회원의 수는 시 9명, 수필 3명으로 참여 인원이 대폭 줄었다. 문학적 열정이 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문인협회 결성에 참여는 하였으나 계속 글을 쓰는 것은 어려워서였나 보다. 


희망은 우리 편이 아니었다


1995년에 강경여중 교장이었던 김영배가 조치원중학교로 전근하여 계속 지부장을 맡기가 어려워졌다. 이에 총회를 열어 부지부장이었던 권선옥을 지부장으로 선출하였다. 

이해 12월에 발간된 『논산문학』 3집에의 참여 인원은 2집보다도 더 줄었다. 지방 소도시에서 문학 단체가 존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같은 뜻을 가진 사람도 적지만, 사람이 모아져도 그에 대한 열정이 부족하여 뜻을 모아 강력한 힘으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다. 30여 명의 회원 가운데 1년에 한 번 발행하는 회지(會誌)에 작품을 제출한 사람은 고작 열 명뿐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논산문협뿐 아니라 대개의 시군에서 겪었던 일이다. 다만, 충남의 경우는 천안과 조치원은 일찍이 많은 문인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1970년대에는 지금과 달리 시도지회, 시군 지부와 같은 문협 조직이 아니라 각 지방의 문협이 존재했다. 대전 중심의 충남문협, 천안 중심의 천안문협, 조치원의 조치원문협이 각각 존재했다. 그러므로 천안문협이나 조치원문협에는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해온 노련(老鍊)한 문인들이 나름의 지역 문단을 이끌고 있었다. 그러나 문협 탄생이 일천(日淺)한 지역은 식구도 적고 살림도 넉넉지 못했다.


흔들리며 피는 꽃


1996년은 논산문협이 창립된 지 3년이 지났지만,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회원들 대다수가 놀뫼문학회의 회원들이어서 두 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놀뫼문학회는 소수의 집단이어서 결속력이 강하였다. 그러므로 회원들의 활동이 놀뫼문학을 우선시하였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고덕상 시인이 이때 논산문협에 가입한 것으로 보인다. 고덕상 시인 특집으로 그의 시집 『늦가을 귀뚜라미』에 수록된 시 8편과 권선옥의 서평이 실려 있다. 고덕상 시인은 1994년부터 3년간 『질러온 길』, 『황산나루』, 『서울뜨기 시골뜨기』를 냈는데, 이 해에는 이어서 『늦가을 귀뚜라미』까지 두 권의 시집을 낸 것이다. 김영배 시인도 시조집 『아, 나의 산하여』를 발간하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고무적인 일은 권선옥 회원의 충청남도문화상 수상이었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바와 같이 논산은 제반 문화 수준이 낮아서 충남문화상 수상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대전이 분리되고 나서도 대개의 수상자는 천안, 공주, 조치원 등지에 거주하는 사람들이었다. 1996년까지 40회에 걸쳐 240명가량의 수상자가 있었는데, 처음으로 수상자가 나온 것이다. 그만큼 논산이 낙후되었고, 이런 사실조차 누구의 안중에도 없었다는 사실이 당시의 상황을 극명하게 증명하는 것이다. 

이제 논산은 서서히 깊은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예총이 결성되어 국악·문학·미술·사진협회가 활동하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대중적으로 가장 광범위하게 전파되고, 영향이 파급되는 매체는 단연 문학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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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