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공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2026-06-25


한 예비역 장교의 의견기사를 읽으며 얼마 전 종영한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드라마가 떠올랐다.

드라마 속 황동만(구교환)은 20년째 영화감독을 준비하지만 데뷔작 하나 없는 인물이다. 자신의 작품으로 평가받지 못한 그는 누구보다 신랄하게 타인의 작품을 비평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냉소적이고 까다로운 사람으로 바라보지만, 드라마는 그 역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 애쓰는 한 사람임을 보여준다.

결국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 어떤 이는 성취로, 어떤 이는 권력으로, 또 어떤 이는 날 선 비판으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려 한다.

이번에 읽은 의견기사 역시 그런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비판은 민주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기능이다. 언론도, 시민도, 누구든 권력을 감시하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비판은 사실 위에 논리가 쌓여야 설득력을 얻는다. 의혹과 소문, 개인의 평가를 사실처럼 나열하는 것은 공론장을 건강하게 만드는 방식이 아니다.

기사에서는 "소문이 자자했다", "회자됐다", "볼멘소리가 나온다", "여론이 팽배하다"는 표현이 반복된다. 그러나 정작 그 소문의 근거가 무엇인지, 사실관계는 어떻게 확인했는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의견은 자유롭지만, 의견 역시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

언론은 객관적인 사실만 나열한다고 해서 객관적이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실을 선택하고 어떤 사실을 제외할 것인지, 어떤 문장을 강조할 것인지 자체가 이미 가치 판단이다.

그래서 언론에는 더욱 엄격한 균형감각이 요구된다. 사실은 진실의 출발점이지, 진실 그 자체는 아니다.


"휴먼빙(Being)과 휴먼두잉(Doing)"


다시 드라마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드라마에서 형 진만(박해준)은 동생 동만에게 인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휴먼빙이지, 휴먼두잉이 아니다."라며 "무엇을 얼마나 했는지, 얼마나 많이 드러냈는지로 사람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존중받아야 한다."는 의미라고 질타한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성취와 행동으로 자신을 증명하려 한다. 그러나 때로는 그 과정에서 타인을 깎아내리는 일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쉬운 방법처럼 보이기도 한다.

비판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무너뜨리는 데 목적이 있는 비판은 오래가지 못한다. 공동체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비판만이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문제를 제기하는 것과 비난하는 것은 다르다

좋은 기자는 답을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다. 좋은 기자는 좋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다.

질문은 내가 아는 것과 아직 알지 못하는 것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기자는 현장을 찾고, 당사자를 만나고, 서로 다른 목소리를 듣고, 끊임없이 사실을 확인한다. 그렇게 모인 사실의 조각으로 진실의 행간을 채워 나간다.

반대로 이미 결론을 정해놓고 사실을 끼워 맞추는 글은 질문이 아니라 주장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의견기사는 얼마든지 자신의 생각을 밝힐 수 있다. 그러나 그 생각이 독자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실에 대한 치열한 검증과 균형 잡힌 시각이 전제되어야 한다.

비판은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이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되묻고 싶다.

당신의 글은 공동체를 위한 비판이었는가, 아니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외침이었는가.



전영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