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동색이라는 말
그는 봄옷을 꺼냈더니 어느덧 여름이라고 했다. 바깥길을 걸으면서 구름이 끼어 다행이라느니, 바람이 시원하다고 한다. 봄이 저 멀리 오는 듯하더니 한낮에는 벌써 더위 걱정이다. 눈을 들면 어딜 바라봐도 초록이다. 행동이 굼뜬 석류나무나 감나무도 그 줄기가 보이지 않을 만큼 이미 잎이 무성하다. 곧, 시인의 말처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이 이어지리라.
지금의 초록은 어린아이 살결 같다. 손으로 만지면 뽀드득 소리가 날 것 같다. 그렇지만 곧 온갖 벌레들이 알에서 깨어 저리 깨끗한 살결에 상처를 낼 것이다. 그리고 점차 그 빛깔도 변하여 짙은 녹색이 되고 말 것이다.
그것이 아쉬워 하염없이 신록의 호수를 바라보다가 초록동색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풀과 녹색은 같다’라는 이 말은 우리가 널리 쓰고 있다. 남의 말을 할 때에 자주 쓰면서도 나는 무슨 색인가는 살피지 않는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려면 주변 사람들을 보면 안다는 말이 있다. 또 어떤 이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그가 누구를 미워하는가를 보면 안다.’고 말한다.
두 말을 종합하자면 그가 누구를 미워하고, 어떤 자들이 그를 에워싸고 있는가를 보면 그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 어떤 이는 부당하게 이(利)를 취하는 자리에는 가지 않는다.
연전에 내가 아는 사람이 퇴직 후에 어떤 자리를 다시 차지하였다. 그의 재취업을 두고 나는 칭찬도 비난도 하지 않았다. 나는 보수를 받는 자리에는 일자리를 찾는 젊은이가 앉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연금을 받는 그가 다시 그 자리에 앉은 것이 평소 내가 생각하는 그와는 좀 거리가 있었다. 그런데 며칠 후에 그가 나를 찾아왔다. 막상 자리에 앉아 보니 일을 처리하는 데 상당한 무리가 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자리는 자신이 앉을 자리가 아니라서 그만두었다고 했다. 그 말은 나를 매우 기쁘게 했다. ‘역시 당신은 평소에 내가 생각하는 대로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 자리에 구차하게 앉아 있었더라면 나는 당신에게서 멀어졌을 것이요.“라고 그를 칭찬했다.
또 어떤 이는 돈이 붙어 있지 않으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의 연명(延命) 수단인가 보다 생각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돈이 붙지 않아도 본 것은 보았다 하여야 할 것이요, 들은 것은 들었다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돈이 붙지 않으면 절대로 눈과 귀를 닫아 버린다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실제가 그렇지 않아도 이런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뭔가 대단히 잘못을 거듭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가 젊으면 그렇지 않게 살아 평판을 바꿀 수 있는데 이제 곧 해가 질 것이니 낭패다.
오월은 감사하는 달
오월에는 여러 은혜에 감사하는 날들이 있다. 먼저 어버이날이다. 세상에 태어나 자라나고 살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고. 그들에게 폐를 끼치기도 하였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은혜는 부모님이다. 그 수고로움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 사랑과 정성은 비길 데가 없다. 그러나 당신들이 나를 태어나게 하였으니 그 일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여 감사할 줄 모른다.
다음으로 은혜가 큰 분은 선생님이다. 여러 선생님이 나의 마음을 키워 주셔서 오늘날의 내가 있는 것이다. 몸을 낳아주신 부모님도 마음을 키우셨지만, 그 대부분은 선생님의 공로이다. 그 선생님들이 아니었으면 몸만 크고 마음은 작은 사람이 되어 동물과 흡사하게 살아야 했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도록 도움을 주신 분이 선생님이다.
또 오월에 생각하는 것은 어린이들이다. 아이들의 없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어린이는 바로 나의 미래를 책임져 줄 고마운 사람이다. 부모와 선생님이 과거에 나에게 도움을 주신 분들이라면, 어린이는 나의 미래에 도움을 줄 사람이다. 그러므로 어린이가 잘 자라야 나의 미래가 밝다. 그래서 어린이를 위하는 일은 나의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다. 국민 각자가 자신이 맡아 기르는 어린이를 잘 성장하게 하여야 우리 미래가 행복할 수 있다.
이참에 우리 주변의 소중한 분들을 다시 생각하고, 그분들께 감사드리는 그런 아름다운 오월이 되었으면 한다. 오월은 경관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더욱 아름다운 계절이다.

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장)
초록동색이라는 말
그는 봄옷을 꺼냈더니 어느덧 여름이라고 했다. 바깥길을 걸으면서 구름이 끼어 다행이라느니, 바람이 시원하다고 한다. 봄이 저 멀리 오는 듯하더니 한낮에는 벌써 더위 걱정이다. 눈을 들면 어딜 바라봐도 초록이다. 행동이 굼뜬 석류나무나 감나무도 그 줄기가 보이지 않을 만큼 이미 잎이 무성하다. 곧, 시인의 말처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이 이어지리라.
지금의 초록은 어린아이 살결 같다. 손으로 만지면 뽀드득 소리가 날 것 같다. 그렇지만 곧 온갖 벌레들이 알에서 깨어 저리 깨끗한 살결에 상처를 낼 것이다. 그리고 점차 그 빛깔도 변하여 짙은 녹색이 되고 말 것이다.
그것이 아쉬워 하염없이 신록의 호수를 바라보다가 초록동색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풀과 녹색은 같다’라는 이 말은 우리가 널리 쓰고 있다. 남의 말을 할 때에 자주 쓰면서도 나는 무슨 색인가는 살피지 않는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려면 주변 사람들을 보면 안다는 말이 있다. 또 어떤 이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그가 누구를 미워하는가를 보면 안다.’고 말한다.
두 말을 종합하자면 그가 누구를 미워하고, 어떤 자들이 그를 에워싸고 있는가를 보면 그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 어떤 이는 부당하게 이(利)를 취하는 자리에는 가지 않는다.
연전에 내가 아는 사람이 퇴직 후에 어떤 자리를 다시 차지하였다. 그의 재취업을 두고 나는 칭찬도 비난도 하지 않았다. 나는 보수를 받는 자리에는 일자리를 찾는 젊은이가 앉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연금을 받는 그가 다시 그 자리에 앉은 것이 평소 내가 생각하는 그와는 좀 거리가 있었다. 그런데 며칠 후에 그가 나를 찾아왔다. 막상 자리에 앉아 보니 일을 처리하는 데 상당한 무리가 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자리는 자신이 앉을 자리가 아니라서 그만두었다고 했다. 그 말은 나를 매우 기쁘게 했다. ‘역시 당신은 평소에 내가 생각하는 대로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 자리에 구차하게 앉아 있었더라면 나는 당신에게서 멀어졌을 것이요.“라고 그를 칭찬했다.
또 어떤 이는 돈이 붙어 있지 않으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의 연명(延命) 수단인가 보다 생각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돈이 붙지 않아도 본 것은 보았다 하여야 할 것이요, 들은 것은 들었다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돈이 붙지 않으면 절대로 눈과 귀를 닫아 버린다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실제가 그렇지 않아도 이런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뭔가 대단히 잘못을 거듭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가 젊으면 그렇지 않게 살아 평판을 바꿀 수 있는데 이제 곧 해가 질 것이니 낭패다.
오월은 감사하는 달
오월에는 여러 은혜에 감사하는 날들이 있다. 먼저 어버이날이다. 세상에 태어나 자라나고 살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고. 그들에게 폐를 끼치기도 하였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은혜는 부모님이다. 그 수고로움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 사랑과 정성은 비길 데가 없다. 그러나 당신들이 나를 태어나게 하였으니 그 일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여 감사할 줄 모른다.
다음으로 은혜가 큰 분은 선생님이다. 여러 선생님이 나의 마음을 키워 주셔서 오늘날의 내가 있는 것이다. 몸을 낳아주신 부모님도 마음을 키우셨지만, 그 대부분은 선생님의 공로이다. 그 선생님들이 아니었으면 몸만 크고 마음은 작은 사람이 되어 동물과 흡사하게 살아야 했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도록 도움을 주신 분이 선생님이다.
또 오월에 생각하는 것은 어린이들이다. 아이들의 없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어린이는 바로 나의 미래를 책임져 줄 고마운 사람이다. 부모와 선생님이 과거에 나에게 도움을 주신 분들이라면, 어린이는 나의 미래에 도움을 줄 사람이다. 그러므로 어린이가 잘 자라야 나의 미래가 밝다. 그래서 어린이를 위하는 일은 나의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다. 국민 각자가 자신이 맡아 기르는 어린이를 잘 성장하게 하여야 우리 미래가 행복할 수 있다.
이참에 우리 주변의 소중한 분들을 다시 생각하고, 그분들께 감사드리는 그런 아름다운 오월이 되었으면 한다. 오월은 경관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더욱 아름다운 계절이다.
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