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제2항을 소환하는 이유는 명료하다. 이는 권력의 출발점이 어디이며, 그 권력이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를 분명히 규정하는 가장 근본적인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그 약속이 다시 현실 속에서 작동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오는 6월 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된다.
선거운동이 끝나고 사전투표가 시작되는 순간, 정치인의 시간은 멈추고 '유권자의 시간'이 열린다. 그 시간은 단순한 선택의 시간이 아니라, 지난 시간을 평가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결정하는 주권 행사의 시간이다. 누군가를 뽑는 일이 아니라, 우리 삶의 조건을 결정하는 시간이다.
반복되는 ‘토사구팽’과 ‘면종복배’의 그림자
“배신과 위선은 짧고, 신의와 실력은 길게 남습니다! 4년 전 저의 선택이 계룡의 아픔이 되지 않도록, 이번에는 언행일치가 확실한... (이후생략)"
지난 3월 28일, 계룡의 한 정치 원로가 시민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의 일부다. 그는 스스로를 ‘이용당하고 버려진 존재’로 규정하며, 이른바 ‘토사구팽’의 현실을 호소했다. 여기에는 지역 정치의 아픈 단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정치에서 배신과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가 끝나면 약속은 희미해지고, 사람은 도구로 소비되며, 책임은 사라진다.
4년 전, 계룡시장 국민의힘 후보 공천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후보가 번복되고, 끝내 벌어진 혼란과 그로 인해 이어진 비극적 사건은 지역 정치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냈다. 그 기억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유권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자는 말했다. “군자는 그 잘못을 자신에게서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찾는다(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
정치가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할 때, 그 정치는 필연적으로 시민을 향해 책임을 전가한다. 그리고 그 순간, 정치는 신뢰를 잃는다.
권력 앞에서 흔들리는 ‘쪼찡 멘트’의 언론
언론에서 자주 쓰이는 은어 중 ‘쪼찡’이라는 말이 있다.
한자 '제등(提燈)'을 일본 발음으로 읽은 것으로, 하인이 어두운 밤 등을 비추듯 아부하는 기사나 권력의 비위를 맞추는 찬양 보도를 의미한다.
지난 시간 이응우 시장에게 엄청난 '쪼찡 멘트'를 쏟아내던 일부 언론의 과도한 찬사와 일방적 보도는 언론의 본래 역할을 다시 묻게 만든다. 비판이 사라진 자리에는 공론이 사라지고, 공론이 사라진 자리에는 시민의 판단 기준 또한 흐려지기에 만감이 교차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결국 언론이 흔들리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시민이다. 정확한 정보 없이 이루어지는 선택은 결국 왜곡된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권자의 시간, 그리고 책임의 무게
이제 다시 유권자의 시간이 시작된다.
선거는 정치인의 이벤트가 아니다. 유권자의 책임이 작동하는 시간이며, 민주주의가 실제로 움직이는 순간이다.
우리는 지난 4년 동안 많은 것을 경험했다. 갈등은 깊어졌고, 사회적 신뢰는 약해졌으며, 혐오와 배제의 언어가 일상처럼 확산되었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서로를 규정하고 나누는 일이 더 쉬워진 시대를 살아왔다.
이러한 시간 속에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누가 더 말을 잘하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진실하게 책임지는가를.
누가 더 화려한 공약을 내세우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묵묵하게 약속을 지킬 수 있는가를.
그리고 무엇보다, 누가 시민의 말을 ‘들어온 사람’인가를.
정치는 말하는 기술이 아니라, 듣는 능력에서 시작된다.
말은 설득할 수 있지만, 듣는 태도는 '신뢰'를 만든다. 말은 순간을 장악하지만, 듣는 자세는 관계를 지속시킨다.
이제 정치의 방향은 바뀌어야 한다.
말하기의 정치에서 '듣기의 정치'로, 권위의 정치에서 '관계의 정치'로, 형식적인 기계적 평등을 외치는 정치에서 '삶과 돌봄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정치는 결국 사람의 문제이고, 삶의 문제다. 그렇기에 정치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어야 한다.
지금, 유권자의 시간이 시작되고 있다
투표는 단순한 권리가 아니다.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의사표시이며, 우리가 어떤 사회를 원하는지에 대한 집단적 선언이다.
한 표는 작아 보이지만, 그 한 표들이 모여 방향을 만든다. 그리고 그 방향은 다시 우리의 삶과 일상이 된다.
유권자의 시간은 짧지만, 그 영향은 길다. 정치는 순간의 선택이 아니라, 시간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표는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다. 지금 우리가 던지는 한 표는 앞으로의 4년을 결정한다. 그리고 그 4년은 다시 우리의 삶으로 돌아온다.
또다시 4년 후 '토사구팽'과 '면종복배'의 그림자를 밟으며 분노와 배제와 혐오의 언어가 난무한 선거를 치러야 되는지 묻고싶다.
지금, 우리가 답해야 할 시간이 오고 있다. '유권자의 시간'이 시작되고 있다.

전영주 편집장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제2항을 소환하는 이유는 명료하다. 이는 권력의 출발점이 어디이며, 그 권력이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를 분명히 규정하는 가장 근본적인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그 약속이 다시 현실 속에서 작동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오는 6월 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된다.
선거운동이 끝나고 사전투표가 시작되는 순간, 정치인의 시간은 멈추고 '유권자의 시간'이 열린다. 그 시간은 단순한 선택의 시간이 아니라, 지난 시간을 평가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결정하는 주권 행사의 시간이다. 누군가를 뽑는 일이 아니라, 우리 삶의 조건을 결정하는 시간이다.
반복되는 ‘토사구팽’과 ‘면종복배’의 그림자
“배신과 위선은 짧고, 신의와 실력은 길게 남습니다! 4년 전 저의 선택이 계룡의 아픔이 되지 않도록, 이번에는 언행일치가 확실한... (이후생략)"
지난 3월 28일, 계룡의 한 정치 원로가 시민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의 일부다. 그는 스스로를 ‘이용당하고 버려진 존재’로 규정하며, 이른바 ‘토사구팽’의 현실을 호소했다. 여기에는 지역 정치의 아픈 단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정치에서 배신과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가 끝나면 약속은 희미해지고, 사람은 도구로 소비되며, 책임은 사라진다.
4년 전, 계룡시장 국민의힘 후보 공천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후보가 번복되고, 끝내 벌어진 혼란과 그로 인해 이어진 비극적 사건은 지역 정치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냈다. 그 기억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유권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자는 말했다. “군자는 그 잘못을 자신에게서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찾는다(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
정치가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할 때, 그 정치는 필연적으로 시민을 향해 책임을 전가한다. 그리고 그 순간, 정치는 신뢰를 잃는다.
권력 앞에서 흔들리는 ‘쪼찡 멘트’의 언론
언론에서 자주 쓰이는 은어 중 ‘쪼찡’이라는 말이 있다.
한자 '제등(提燈)'을 일본 발음으로 읽은 것으로, 하인이 어두운 밤 등을 비추듯 아부하는 기사나 권력의 비위를 맞추는 찬양 보도를 의미한다.
지난 시간 이응우 시장에게 엄청난 '쪼찡 멘트'를 쏟아내던 일부 언론의 과도한 찬사와 일방적 보도는 언론의 본래 역할을 다시 묻게 만든다. 비판이 사라진 자리에는 공론이 사라지고, 공론이 사라진 자리에는 시민의 판단 기준 또한 흐려지기에 만감이 교차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결국 언론이 흔들리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시민이다. 정확한 정보 없이 이루어지는 선택은 결국 왜곡된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권자의 시간, 그리고 책임의 무게
이제 다시 유권자의 시간이 시작된다.
선거는 정치인의 이벤트가 아니다. 유권자의 책임이 작동하는 시간이며, 민주주의가 실제로 움직이는 순간이다.
우리는 지난 4년 동안 많은 것을 경험했다. 갈등은 깊어졌고, 사회적 신뢰는 약해졌으며, 혐오와 배제의 언어가 일상처럼 확산되었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서로를 규정하고 나누는 일이 더 쉬워진 시대를 살아왔다.
이러한 시간 속에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누가 더 말을 잘하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진실하게 책임지는가를.
누가 더 화려한 공약을 내세우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묵묵하게 약속을 지킬 수 있는가를.
그리고 무엇보다, 누가 시민의 말을 ‘들어온 사람’인가를.
정치는 말하는 기술이 아니라, 듣는 능력에서 시작된다.
말은 설득할 수 있지만, 듣는 태도는 '신뢰'를 만든다. 말은 순간을 장악하지만, 듣는 자세는 관계를 지속시킨다.
이제 정치의 방향은 바뀌어야 한다.
말하기의 정치에서 '듣기의 정치'로, 권위의 정치에서 '관계의 정치'로, 형식적인 기계적 평등을 외치는 정치에서 '삶과 돌봄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정치는 결국 사람의 문제이고, 삶의 문제다. 그렇기에 정치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어야 한다.
지금, 유권자의 시간이 시작되고 있다
투표는 단순한 권리가 아니다.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의사표시이며, 우리가 어떤 사회를 원하는지에 대한 집단적 선언이다.
한 표는 작아 보이지만, 그 한 표들이 모여 방향을 만든다. 그리고 그 방향은 다시 우리의 삶과 일상이 된다.
유권자의 시간은 짧지만, 그 영향은 길다. 정치는 순간의 선택이 아니라, 시간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표는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다. 지금 우리가 던지는 한 표는 앞으로의 4년을 결정한다. 그리고 그 4년은 다시 우리의 삶으로 돌아온다.
또다시 4년 후 '토사구팽'과 '면종복배'의 그림자를 밟으며 분노와 배제와 혐오의 언어가 난무한 선거를 치러야 되는지 묻고싶다.
지금, 우리가 답해야 할 시간이 오고 있다. '유권자의 시간'이 시작되고 있다.
전영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