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출근길에 SUV가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천천히 가려면 2차선으로 가면 좋으련만 1차선을 고수하고 있다. 그가 더 빨리 가라고 할 권리는 물론 나에게 없다. 자동차 전용 도로는 30km. 고속도로는 50km의 최저 속도가 있지만, 일반도로는 속도 제한이 없다. 그러니까 서 있지 않으면 법규 위반은 아니다. 이는 심술을 부리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운전이 미숙하거나 지나치게 사고 공포증에 빠진 사람일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 차량은 1차선에서 느리게 가다가 2차선을 거쳐 우회전하였다. 미리 2차선으로 차선을 변경하지 않고 계속 1차선에서 내 앞을 가로막았다. 일반도로에서는 추월 차선을 따로 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앞 차량의 우측으로 추월한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법규에는 없지만 우리가 오래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그런 관습도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더구나 우회전하여야 하므로 진즉 2차선으로 운행했어야 옳았다.
나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나
그렇게 상당 거리를 앞뒤로 붙어 가면서 뒷면 유리창에 붙어 있는 스티커의 작은 글씨도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는 ‘까칠한 아이와 더 까칠한 엄마가 타고 있어요.’라고 씌어 있었다. 손으로 쓴 글씨가 아니라 인쇄된 것으로 보아 그런 문구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상당히 많은가 보다. 이 문구를 보면서 재치가 있는 표현이라기보다는 약간의 불쾌한 생각이 들었다. 그 차량이 나의 앞을 가로막지 않고 잠깐 스쳐 지나갔더라면 느낌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정말 이 ‘까칠한’ SUV는 내게 가벼운 위협,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아도 금방이라도 폭력적으로 변할 것 같은 사람이 옆자리에 있을 때의 기분을 가지게 했다.
나의 아침은 이 ‘까칠한 아이와 더 까칠한 엄마’ 때문에 회색빛이 되고 말았다. 이런 일이 나 혼자만의 일인가, 나의 소심함이 이렇게 생각하는가를 확인해 보았다. 인터넷에는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진 몇 사람의 글이 올라 있었다. 그들도 나도 마음이 옹색하여 이웃의 농담을 받아들이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농담은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정도(程度)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지 말고 ‘귀여운 아이와 예쁜 엄마가 타고 있어요’라고 했더라면 나의 아침은 밝은 노랑이나 핑크빛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일은 이웃을 배려하지 않는 데에서 비롯한 것이다. 배려란 다름 아니라,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염두에 두고 언행을 하는 것이다. 어떤 말을 하려면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생각하여 단어를 선택하고 어조를 가다듬어야 한다. 흔히 정치인들이 어떤 말을 하고 나서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게 되면,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라 본의는 어떻다고 뒷말을 한다. 그런 말들은 깔끔하게 해명이 되지 못하고 터무니없는 변명이어서 구차하고 상스럽게 보인다. 그들의 표현에 문제가 있든 대중의 이해력이 문제이든지 하여튼 제대로 소통이 안 되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니 어떻게 민의(民意)를 반영하는 정치를 하겠는가.
오히려 딱하다는 생각이
가을이 되면 어김없이 많은 문화 행사가 열린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축제에 다녀왔고, 어제는 공원에서 열린 버스킹에 갔었고, 그제는 지역 문화를 개선해 보겠다고 당차게 달려든 사람이 주관하는 낭독회에 앉아 있었으며, 그 전날은 축제 개막식에 내빈으로 자리를 차지하였다. 오늘은 아내와 둘이 축제장 몇 군데에 들러 점심을 먹기도 하고, 기웃기웃 구경거리를 찾아다녔다. 그 나머지 세 곳 중 내빈이 많은 한 곳은 영상으로 내빈을 소개하고 주요 인사(人士) 몇 분의 축사를 들었다. 또 한 군데는 내빈이 매우 적은 관계로 참석자들에게 나가 인사할 것을 권하여 그렇게 했다. 또 한 군데는 내빈이 적었음에도 아무도 소개하지 않고 본 행사를 진행했다. 여기가 가장 잘하는 진행이라 생각한다. 관중은 그런 인사를 받기 위해 온 게 아니라 행사 내용을 보려고 온 것이기 때문이다.
또 어떤 행사에 가면, 초청장에는 분명히 몇 시라 적혔는데 그 시간이 되면 소위 식전 행사를 시작한다. 식전(式前) 행사란 어떤 일의 시작 전에 하는 것인데, 행사 예정 시간에 시작함은 참석자들을 기만하는 행위이다. 또 사회자가 어떤 이를 장황한 언사로 치켜올리는 것도 연거푸 박수를 유도하는 것도 마뜩잖다. 누가 어떤지 다 아는 일을 구태여 이런 행사에서 상투적 찬사를 보내는 일은 듣기에 민망하다.

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장)
어느 날 출근길에 SUV가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천천히 가려면 2차선으로 가면 좋으련만 1차선을 고수하고 있다. 그가 더 빨리 가라고 할 권리는 물론 나에게 없다. 자동차 전용 도로는 30km. 고속도로는 50km의 최저 속도가 있지만, 일반도로는 속도 제한이 없다. 그러니까 서 있지 않으면 법규 위반은 아니다. 이는 심술을 부리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운전이 미숙하거나 지나치게 사고 공포증에 빠진 사람일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 차량은 1차선에서 느리게 가다가 2차선을 거쳐 우회전하였다. 미리 2차선으로 차선을 변경하지 않고 계속 1차선에서 내 앞을 가로막았다. 일반도로에서는 추월 차선을 따로 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앞 차량의 우측으로 추월한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법규에는 없지만 우리가 오래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그런 관습도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더구나 우회전하여야 하므로 진즉 2차선으로 운행했어야 옳았다.
나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나
그렇게 상당 거리를 앞뒤로 붙어 가면서 뒷면 유리창에 붙어 있는 스티커의 작은 글씨도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는 ‘까칠한 아이와 더 까칠한 엄마가 타고 있어요.’라고 씌어 있었다. 손으로 쓴 글씨가 아니라 인쇄된 것으로 보아 그런 문구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상당히 많은가 보다. 이 문구를 보면서 재치가 있는 표현이라기보다는 약간의 불쾌한 생각이 들었다. 그 차량이 나의 앞을 가로막지 않고 잠깐 스쳐 지나갔더라면 느낌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정말 이 ‘까칠한’ SUV는 내게 가벼운 위협,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아도 금방이라도 폭력적으로 변할 것 같은 사람이 옆자리에 있을 때의 기분을 가지게 했다.
나의 아침은 이 ‘까칠한 아이와 더 까칠한 엄마’ 때문에 회색빛이 되고 말았다. 이런 일이 나 혼자만의 일인가, 나의 소심함이 이렇게 생각하는가를 확인해 보았다. 인터넷에는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진 몇 사람의 글이 올라 있었다. 그들도 나도 마음이 옹색하여 이웃의 농담을 받아들이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농담은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정도(程度)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지 말고 ‘귀여운 아이와 예쁜 엄마가 타고 있어요’라고 했더라면 나의 아침은 밝은 노랑이나 핑크빛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일은 이웃을 배려하지 않는 데에서 비롯한 것이다. 배려란 다름 아니라,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염두에 두고 언행을 하는 것이다. 어떤 말을 하려면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생각하여 단어를 선택하고 어조를 가다듬어야 한다. 흔히 정치인들이 어떤 말을 하고 나서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게 되면,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라 본의는 어떻다고 뒷말을 한다. 그런 말들은 깔끔하게 해명이 되지 못하고 터무니없는 변명이어서 구차하고 상스럽게 보인다. 그들의 표현에 문제가 있든 대중의 이해력이 문제이든지 하여튼 제대로 소통이 안 되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니 어떻게 민의(民意)를 반영하는 정치를 하겠는가.
오히려 딱하다는 생각이
가을이 되면 어김없이 많은 문화 행사가 열린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축제에 다녀왔고, 어제는 공원에서 열린 버스킹에 갔었고, 그제는 지역 문화를 개선해 보겠다고 당차게 달려든 사람이 주관하는 낭독회에 앉아 있었으며, 그 전날은 축제 개막식에 내빈으로 자리를 차지하였다. 오늘은 아내와 둘이 축제장 몇 군데에 들러 점심을 먹기도 하고, 기웃기웃 구경거리를 찾아다녔다. 그 나머지 세 곳 중 내빈이 많은 한 곳은 영상으로 내빈을 소개하고 주요 인사(人士) 몇 분의 축사를 들었다. 또 한 군데는 내빈이 매우 적은 관계로 참석자들에게 나가 인사할 것을 권하여 그렇게 했다. 또 한 군데는 내빈이 적었음에도 아무도 소개하지 않고 본 행사를 진행했다. 여기가 가장 잘하는 진행이라 생각한다. 관중은 그런 인사를 받기 위해 온 게 아니라 행사 내용을 보려고 온 것이기 때문이다.
또 어떤 행사에 가면, 초청장에는 분명히 몇 시라 적혔는데 그 시간이 되면 소위 식전 행사를 시작한다. 식전(式前) 행사란 어떤 일의 시작 전에 하는 것인데, 행사 예정 시간에 시작함은 참석자들을 기만하는 행위이다. 또 사회자가 어떤 이를 장황한 언사로 치켜올리는 것도 연거푸 박수를 유도하는 것도 마뜩잖다. 누가 어떤지 다 아는 일을 구태여 이런 행사에서 상투적 찬사를 보내는 일은 듣기에 민망하다.
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