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 소통하는 칼럼 : 소통공간] 가짜 광인과 여름 징역살이, 그리고 ‘빛의 혁명’

2025-07-27


“윤석열을 보면 루쉰의 '광인일기'가 떠오른다.”

프레시안의 박세열 기자는 한 줄의 비유로 현 상황을 정곡에 찔렀다. 하지만 그는 곧장 단서를 붙인다. “차이점은 윤석열은 소설 속 인물이 아니라, 현실에 실존하는 망상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망상가는 심지어 ‘가짜 광인’이라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루쉰의 '광인일기' 속 광인은 세상의 부조리를 혼자만이 꿰뚫어 보며 “사람을 먹는 세상”이라고 절규한다. 그는 논리적이고 일관된 망상 속에서 자신의 고립을 감내한다. 하지만 윤석열은 다르다. 그는 일관되지 않다. 오히려 상황에 따라 망상을 입었다 벗는다. 신도들 앞에서는 과감히 광인의 탈을 쓰지만, 법정과 수사 앞에서는 한없이 현실적인 법기술자로 변신한다.

내란죄 수사에서 자신을 방어했던 경호처 간부들을 오히려 고소하고, 구속 기간을 ‘날 단위’로 계산하다가 불리해지자 ‘시간 단위’로 바꾸는 정밀함은 그가 선택적 광인을 연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연기 이상의 위협이다. 소설이라면 비극이겠지만, 이건 우리의 현실이다.


“여름 징역은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이 지점에서 고(故) 신영복 선생의 글 <여름 징역살이>가 떠오른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신 선생이 묘사한 ‘여름 징역’은 단지 온도의 고통이 아니라, 인간관계마저 증발시키는 절망의 계절이다.

한때는 일국의 대통령이었던 자가, 한때는 ‘동료 기자’였던 자가 권력의 달콤함에 본분을 망각한 결과로 이번 여름을 감옥에서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은, 오늘의 극한더위를 무색하게 만든다. 냉방기도, 공감도 사라진 감옥 속의 여름. 그것이 지금 윤석열이 보내는 가장 큰 형벌이다.


“빛은 어둠 속에서 더 밝게 타오른다”


이 무렵, 민병두 전 국회의원이 펴낸 책 <빛의 혁명>은 이러한 암울한 현실에 하나의 반전처럼 다가온다.

저자는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월항쟁에 이어 “빛의 혁명”을 대한민국의 ‘4대 혁명’ 중 하나로 규정한다. 윤석열의 내란 기도를 분쇄하고 민주주의 질서를 회복한 국민의 저항을 “빛의 혁명”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저자는 이 혁명이 단순한 저항이 아닌, 새로운 세대와 문화가 만든 집단적 창조물이라 주장한다. ‘응원봉’, ‘선결재’, ‘키세스’ 같은 MZ세대의 상징이 촛불을 넘어 빛으로 진화했고, 이는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진화라고 본다. 12월 3일, 윤석열을 파면하고 비상계엄을 저지한 사건은 정치학 교과서에 기록될 만한 회복력이었다.


"쿠데타의 망상, 술의 정치, 고독한 명령“


책에는 윤석열이 실제로 “쿠데타는 내 로망이었다”고 고백한 순간이 기록돼 있다. 2020년 3월, 서래마을 ‘어여쁜 한우’에서 대검 간부들과 술을 마시던 윤석열은 “육사에 갔더라면 쿠데타를 했을 것이다. 쿠데타는 김종필처럼 중령이 하는 건데, 검찰에서는 부장에 해당한다. 나는 검찰 부장 시절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했다. 이 순간은 웃어넘길 수 있는 농담이 아니라, 훗날 실제 행동의 씨앗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집권기의 1,000일은 술로 얼룩져 있었다. '신림동 신선'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고시생 시절부터 술을 마셨고, 검사 시절에는 일주일에 폭탄주 100잔을 마셨다고 한다. 정치 입문도 치맥 회동으로 시작됐으며, 퇴근은 칼같이 했지만 출근은 자주 늦어졌다. 술이 깨지 않아 ‘위장 출근차량’이 먼저 움직였고, 윤석열은 나중에 조용히 들어오는 일이 반복됐다.

그는 계엄령을 선포하겠다고 말하면서도 “비서실장도, 수석도 모른다. 아내가 알면 화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한편으론 권력 내부의 신뢰가 무너졌다는 고백이자, 다른 한편으론 '주술 계엄'에 대한 타인의 의심을 우려한 심리적 방어일 수도 있다.


"충암 네트워크와 계엄사령관의 몰락“


내란 시나리오의 중요한 고리는 충암고 인맥이었다. 윤석열(8회), 김용현(7회), 여인형(17회), 이상민(12회)이 그 축이다.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은 수사에서 “체포자 명단은 대통령의 평소 품평에서 나온 것”이라고 진술했다. “비상대권을 발동하면 조치할 인물들이라는 언급이 있었다”는 것이다.

윤석열은 2024년 여름휴가를 계룡대에서 보냈다. 특전사 707부대와 함께 운동하고 식사를 했으며, 이들은 12.3 계엄 당시 국회 투입 임무를 맡았던 부대였다. 대통령과의 운동과 식사가 그들에겐 명예였겠지만, 역사는 그것을 ‘심리적 장전’이라 기록할 것이다.

박안수 참모총장은 윤석열 정부의 특급 승진 코스를 밟았다. 그러나 그는 결국 쿠데타의 공범으로 몰락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은 그의 몰락을 가장 적확하게 설명하는 문장일지 모른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기억’ 그 자체다“


윤석열은 광인의 탈을 쓰고 민주주의를 벼랑 끝까지 밀어붙였다. 하지만 대한민국 시민들은 이를 단호히 저지했고, ‘빛의 혁명’이라 불리는 집단적 각성과 연대를 만들어냈다.

광인을 흉내 낸 자가 쓰러진 자리에 남은 것은, 다시 깨어난 시민들의 의식이다. 이 칼럼을 마무리하며 다시 루쉰의 '광인일기' 첫 문장을 떠올린다.

“역사라는 것은, 잉크가 아니라 피로 써진 것이다.”

윤석열은 자신의 역사적 소임을 외면했고, 국민은 자신의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여름 징역의 고통 속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공동체의 체온을 확인하고 있다.


전영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