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집] 모두가 마음먹기 달렸다

놀뫼신문
2024-11-25


작은 나무 이파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김새가 똑같지 않다. 언뜻 보아서는 그게 그것인 것 같은데, 같이 호박잎이고 배춧잎 같은데 실제는 다르다. 크기만 다른 게 아니라 그 생김새 또한 달라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하나님의 창의력은 놀랍다는 생각을 한다. 가령 사람이 수천, 수만 개의 동그라미를 그리면 같은 동그라미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저리 각각 다를 수 있단 말인가. 

천하 만물 그 가운데 가장 놀라운 창조물은 사람이다. 사람은 그 생김새가 다를 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도 천차만별이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인 1960년대 말기에 사인장이라는 게 있었다. 색다르게 멋을 부리고 싶어 하거나 좀 엉뚱한 짓을 즐기는 학생들 사이에서 상당히 유행하였다. 종이에 여러 항목의 질문을 인쇄하여, 대개는 같은 또래의 좋아하는 학생에게 주어 그 답을 받는 것이다. 그 여러 항목 가운데 하나가 <그대의 인생관은?>이 있었다. 나도 몇 장의 사인장을 받아 답을 적었는데, 인생관이라는 말이 낯설었다. 


■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다


인생관이라는 말은 우선 나에게 매우 추상적인 말이었다. 평소에 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보았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중에 철이 좀 들어서 세상을 조금 더 깊이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인생관이란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인생관이란 그렇게 거창한 말이 아니고, 또한 추상적인 말도 아니었다. 나는 이미 내 인생관에 따라 살고 있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거나 평생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다짐만이 인생관이 아니었다. 인생관이란 손가락에서 피를 내어 적거나 책상 앞에 먹물로 써서 붙인 것만이 아니었다. 내가 평소에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다 나의 인생관에 의한 것이었다. 무심코 내가 했던 사소한 행동들 모두가 나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다. 그렇게 선택한 것은 내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그렇게 판단하게 된 것은 더 가치 있는 것을 하고자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것이 바로 가치관이고, 인생관이었다. 


■ 삶의 태도, 생각이 문제다


지난번 어느 강연회에서, “내가 등단 절차를 걸쳐 시인이 된 지 40년이 넘었다. 그동안 나는 어느 때는 글을 열심히 썼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그러나 해마다 새해가 되면 한결같은 소망이 있었다. 그것은 올해에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이었다. 한 번도 올해에는 돈을 벌어 보겠다는 생각이 없었으니 돈을 모으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좋은 시를 쓰겠다고 다짐하였음에도 그 열매가 적어 안타깝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렇게 살면서 대체로 행복했다. 요즘에 나는 ”남을 위해 사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절대로 남을 위해 살지 말아라. 그 상대가 배우자나 자식이라고 해도 그러지 말아라. 남을 위해 사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그렇게 괴로운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철저하게 나를 위해 살아라. 왜냐하면 아내를 위해서 하는 일이 아내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아내를 위하는 일은 바로 나를 위하는 일이다“라고 자주 말한다.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는 바로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문제이다. 아내를 따로 떼어내 그냥 다른 사람인 아내로 생각하느냐, 아니면 나의 일부로 생각하느냐이다. 아내를 나와 다른 존재로 생각하면, 그를 위해서 하는 일이 나를 위하는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힘이 들기도 하고, 괴롭기도 할 것이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하는 일이 단지 급여를 받기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면 즐거운 마음을 갖기 어렵다. 물론 그 돈으로 우리 가족이 생활하고 가정이 평안하다고 생각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다르다. 그러나 가족과 가정을 위하는 일이 나의 임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괴로움이 된다. 또 직장 동료가 하여야 할 일을 돕는 것도 우리 직장의 일, 그러므로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즐거운 마음으로 도울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이다. 그 생각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옹색한 마음을 가지고 불행하게 살 것인가, 아니면 보다 넓은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 것인가. 


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