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든 고향을 떠나라” 한다…마을이 사라진다

놀뫼신문
2023-12-03

마을주민들, 재판 패소로 인한 철거비용·소송비용까지 부담해야


“법을 잘 배우고 잘 지켜라. 그래야 그것을 제대로 어길 줄 알게 된다”는 말이 인용되는 분쟁이 우리지역에서 일어났다. 

법은 문제 해결의 과정이자 법익을 보호하는 도구다. 최종적인 법익이란 결국 사람이다. 사람이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이 법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살아오면서 자신을 지키는 법을 별도로 배운 적이 없다. 이러한 무지 또는 무경험의 상태에서 이뤄진 경솔한 협상과 법적행위는 오히려 법적으로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사람들은 그 법 때문에 더 큰 상처를 받고 있다.



토지 분쟁으로 한 마을이 사라지게 돼


[‘수돗물 먹게 된다’는 들뜬 마음에…]

연무읍 동산6리 (연무읍 동안로 1113번길 76, 81, 83, 86, 82)에 거주하는 서대식 외 5인은 부여서씨학생상원공파종중 소유 토지 지상에 건물을 짓고 수십 년간 살아 왔다. 

사건의 발단은 2017년 마을에 상수도가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마을에 수도관 공사를 하게 되면서 ‘토지 사용승낙서’가 필요해 토지소유주인 종중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서대식 외 5인은 종중과 토지임대차계약을 맺어 매년 소정의 지료를 지급해 왔는데, 2017년 경 인근에 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종중의 요구로 그 사용료를 공시지가의 10분의 1로 정하는 토지사용계약서를 새로 작성하게 되었다.

당시 종중에서는 ‘이전처럼 지료를 지급하면 된다’고 하여 이를 신뢰하여 그 내용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새로운 토지사용계약서에 날인을 하게 되었다.


[분쟁의 시작]

2018년 종중은 일방적으로 “무단증축건축물 철거요청 및 불법점유 경작지에 대한 손해배상요청 등”이라는 통고서를 보내오면서 갈등이 계속되었다. 이후 합의점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서대식 외 5인은 종전과 같이 기존에 지급하던 임차료만 지급했다.

이에 2021년 12월 종중은 마을주민 5인에 대하여 건물철거 및 토지인도 청구를 하였다. 2017년 새로 작성된 계약서 및 현행법상 마을주민들은 별다른 대책 없이 토지주의 요구에 따라 살던 건물을 철거하고 토지를 인도하여야 하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이에 마을주민들은 법원 조정을 통해 다른 이전대책을 마련할 때까지 5년만 거주할 수 있게 해달라 요구했으나 조정이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후 마을주민들은 토지 지상의 건물을 매수해 달라는 토지매수청구를 반소로 청구하였으나 2017년 새로 작성된 임대차계약서에 기한 임료지급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유효한 임대차계약이 계속 중이라 볼 수 없다고 판단되어 반소청구는 기각되었다.



[분쟁의 결과]

2023년 10월 12일, 대전지방법원 논산지원(판사 이숙미)은 부여서씨학생상원공파종중의 청구는 인정범위 내에서 인용하고, 마을주민들의 반소 청구는 기각하였다.

재판부는 “마을주민들이 종중이 각 부동산의 소유자임을 알면서도 소액의 토지 사용료만 간헐적으로 지급하면서 수십 년간 이 사건 각 부동산 지상에 주택이나 비닐하우스 등을 설치하여 부동산을 점유‧사용하였다”며, “이와같이 오랜 시간 동안 매우 저렴한 차임만을 부정기적으로 지급하연던 점을 고려하면 그 후에 체결된 이 사건 토지사용계약서에서 정한 차임이 감정평가 결과에 의한 차임보다 비교적 고액이라는 사정만으로는 이 사건의 토지사용계약이 불공정한 법률행위라고 볼 수 없고, 달리 마을주민들의 이러한 주장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사건의 토지사용계약은 마을주민들의 궁박, 경솔, 무경험을 이용하여 체결된 현저하게 불공정한 법률행위이므로 무효이고, 마을주민들은 종전 종중과의 묵시적 토지임대차계약에 따른 차임을 모두 지급하였다”고 마을주민들은 주장하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민법 제104조의 불공정한 법률행위란 피해 당사자가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의 상태에 있고 상대방 당사자가 그와 같은 피해 당사자 측의 사정을 알면서 이를 이용하려는 폭리행위의 악의를 가지고 객관적으로 급부와 반대급부 사이에 현저한 불균형이 존재하는 법률행위를 한 경우에 성립한다”고 설명하면서, “마을주민들의 주장에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적인 분쟁은 종결되었다.

마을주민들은 수십 년간 살아오던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나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여기에 재판 패소로 인한 철거비용 및 소송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논산을 새롭게 시민을 행복하게’ 만들어 가는 공동체의 행정은 ‘법’보다 ‘도덕’과 ‘상식’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관계당국 및 지역사회의 따뜻한 관심과 종중의 훈훈한 배려가 필요한 계묘년 한 해의 마지막 무렵이다.


- 전영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