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노트] 벌곡면 양산리 윤오복 어르신 "벌곡의 한과명장- ‘전통맛고을’의 더덕한과"

놀뫼신문
2020-05-21

[인생노트] 벌곡면 양산리 윤오복(尹五福, 68세)님

벌곡의 한과명장- ‘전통맛고을’의 더덕한과


벌곡면 양산리(陽山里)는 그 이름처럼 양지바르다. 그리고 마치 옛 서부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곧은길을 따라 길게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그 길게 이어진 집집의 담벼락에는 예쁜 벽화들, 그리고 주민들의 그림과 시 등이  솜씨자랑하듯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이 아름다운 무지개마을에 사는 윤오복 님을 큰 동서인 이삼례(李三禮, 87세) 할머니 댁에서 함께 만났다.



산골 벌곡으로 시집오다


“제 고향은 공주 계룡이에요. 여기보다는 들이지요. 여기는 고개를 쳐들어야만 하늘이 빼꼼히 보이는 곳이잖아요. 꼬불꼬불 산길을 돌고돌아 시집을 왔어요. 농사지을 땅도 귀하고, 나갈 데도 없고, 일거리도 없고, 차도 안 다니고, 처음 이곳으로 시집왔을 때는 그런 곳이었어요. 그러니 여름에는 감자로, 겨울에는 고구마로 끼니를 해결할 때가 많았죠.”

그래도 시집식구들이 너무 잘 대해주어 빨리 적응하고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남편은 8남매 중 일곱 번째이고 그 중 삼형제가 양산리 한 동네에 살고 있었다. 제일 큰 시숙(金光培, 89세)이 당시 이장이었다고 한다.


“큰 시숙은 마을 이장을 맡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을 위해 많은 활동을 하고 있었어요. 본받을 만한 집안이었습니다. 저는 시집에 누가 될까봐 입조심은 물론 매사 몸가짐을 조심하며 살았습니다. 큰 형님 댁이 어린 저를 많이 이해해주시고 뒤를 꽤 챙겨주셨지요. 지금까지도 그래요.”


큰 시숙을 집안에서는 모두 대장님이라 부른다고 한다. 항상 옳은 말씀만 하는 분이라 콩을 팥이라 해도 모두 믿고 따른단다. 형제가 많은 집안이라 그 큰집의 장조카와 윤오복 님은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고 한다. 윤오복 님이 형님이라 부르는 큰 동서 이삼례 할머니는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지금은 다 나가 살고 있지만, 그때는 정말 대식구였습니다. 어떻게 하루가 지나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바쁘고 힘들게 하루하루를 보냈어요. 시동생, 시누이들 새벽밥 지어주어야죠, 도시락 싸줘야죠, 어마어마하게 나오는 빨래해야죠, 낮에는 틈틈이 밭일 해야죠. 그때 전기밥솥이 있었나, 세탁기가 있었나, 일일이 군불 때서 밥하고 손으로 빨래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삼례 할머니는 열아홉에 시집와서 1년 만에 남편은 군에 입대했다. 그리고 4년 후 남편이 제대하고 돌아올 때까지 열다섯 명의 시집식구들 살림을 도맡아 했었다고 한다. 그때가 제일 힘든 시기였다고 할머니는 한숨을 내쉰다.



식구 많으니 힘들어도 재미있다


명절 때나 어른들 생신 때 가족들이 다 모이면 오십 명 정도 된다. 그래서 조카사위나 아이들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단다. 모인 식구들이 많다 보니 식사 때가 되면 다슬기 국을 한 솥 끓여서 각자 대접에 밥을 담아 줄 서서 국을 배급 받는다. 그리고 마당에 고기를 구워서 나눠먹는다. 가든파티가 따로 없다. 이래저래 즐겁기만 하다.

뿐만 아니다. 어른들은 어른들 대로, 밑 세대의 젊은 조카들은 그들대로 매달 계를 들어 목돈을 만들어 단체 가족여행을 떠난단다. 관광버스를 2대 대절하여 나눠 타고 큰 펜션을 빌려 제주도도 다녀왔고, 안면도도 다녀왔단다. 모두 세 번을 다녀왔는데, 이제는 어른들이 나이가 들어 그렇게 다니지는 못한다.

과거에는 동네 사람들과도 재미있게 시간을 보냈다. 모두 어른들 모시고 사니 어디 놀러도 못 나가고 조심하며 살아야 해서 밤에 마을 다리 밑에 모였다. 누구는 소주 대두병을 준비하고 누구는 부침개를 부쳐왔다. 이렇게 마을 며느리들이 다 모여 늦은 밤까지 재미있게 놀았다고 한다. 함께 노래를 부를 때 사이사이 추렴을 넣었다 해서 이 모임 이름이 ‘사이사이 부대’였다.

한 번은 마을의 한 며느리가 대문소리에 혹여 시부모님한테 들킬까봐 소리 나지 않도록 담 넘으려다가 그만 허술한 담이 와르르 무너져서 다 들통 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전통음식 한과를 배우다


윤오복 님의 남편은 공무원이다. 그래서 남편은 대전으로 출퇴근을 했다. 그러니 농사를 짓는 다른 집들과는 달랐다. 하루 종일 농촌에서 긴 낮 시간을 보내야 하는 윤오복 님은 대전 시내로 이사를 가기 원했으나, 남편은 고향을 떠나기 원치 않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무엇을 배우는 것이었다.

그래서 윤오복 님은 대전 YWCA의 한 프로그램인 홈패션 강좌에 나가 배우기 시작했다. 그것을 1년 쯤 배우다, 이번에는 서구 여성회관에서 하는 전통음식 한과 만들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벌곡에서 대전으로 나가는 직행버스가 네 번 있었는데, 그것을 이용하였다.

그 전통음식을 배우기 시작한 3년째인 2012년도에 그녀는 대전엑스포에서 열린 세계조리사 특색음식경연대회 ‘한과개인전시’ 부문에서 최우수상인 농림수산부 장관상을 수상하였다. 그때 ‘더덕한과’와 ‘동아정과’, 그리고 ‘홍시식혜’를 만들었다.

윤오복 님은 그것을 계기로 ‘전통맛고을’이라는 전통한과 제조업체를 만들어 현재까지 건강한 더덕한과를 만들고 있으며 또한 폐백음식 등을 주문받는다. 요즘은 사람들이 전통한과를 별로 선호하지 않아서 명절 때 선물용으로 주문을 받아 그때그때 생산한다.



마을 위해 봉사하며 살다


윤오복 님은 4년 전 마을에 생긴 한글대학에 참여하여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하고 있다. 처음에는 인원수를 채우기 위해 나갔는데, 한글선생님이 너무 친절하게 열심히 잘 가르치시고 애쓰시는 모습이 좋아 지금은 선생님 보조하고 어르신들과 함께 하니 너무 즐겁다고 한다.

“호정수 선생님이 저랑 나이도 비슷하고 참 좋으신 분이세요. 신문에 선생님 이름 석자 꼭 써주세요. 호정수 선생님입니다.”

현재 이 한글대학에 큰동서인 이삼례 할머니가 나가고 있는데, 문맹이었던 형님이 이제는 글도 읽고 잘 쓰실 수 있어서 너무 기쁘단다. 큰형님은 특히 글씨를 아주 예쁘게 쓴다.


“큰형님이 한글을 배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부엌에서 음식을 할 때 매실청을 찾는데, 글씨를 보고 찾아내는 거에요. 그러면서 너무 신기해하시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니 제가 더 기뻤어요.”


그녀는 마을회관 총무도 맡아서, 궂은일 마다하지 않는 마을일꾼이다. 특히 팔십 세 이상 어르신들의 생신상을 3개월에 한 번씩 꼭 차려드린다. 양지바르고 예쁜 마을 양산리, 그곳에는 마음이 예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