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노트] 부적면 덕평2리 임정자 어르신 “읽으니 새롭고, 쓰니 즐겁네!”

놀뫼신문
2020-03-11

[인생노트] 부적면 덕평2리 임정자(林正子, 88세) 어르신

“읽으니 새롭고, 쓰니 즐겁네!”


봄은 이미 와서 지천에 꽃들이 피고 나무마다 파릇파릇 새순이 돋지만, 전국 어디도 나다니는 사람이 적어 쓸쓸하기만 하다. 농촌마을도 예외는 아니어서 논산시 부적면 덕평2리 마을회관도 문이 굳게 닫혔다. 평소 같았으면 글을 읽고 쓰는 할머니들로 시끌벅적한 웃음소리가 가득했을 터인데 말이다. 하루빨리 코로나가 물러가고 한글대학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이 마을 임정자 할머니를 댁으로 찾아뵈었다.


동갑내기 남편과 함께


다복한 할머니의 가족


할머니의 고향은 충남 금산군 진산면이다. 지금은 충남이지만 할머니가 그곳에 살 때에는 전라북도였던 곳이다. 19살 때 지금 살고 있는 논산 부적면으로 시집을 왔다. 동갑내기인 할아버지 김영태(金永泰, 88세)님과는 벌써 70년째이다. 둘 사이에는 5남4녀 9남매를 두었는데, 6년 전 막내아들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냈다. 그 아픔만 빼고는 할머니는 다복한 가정을 이루고 아주 행복한 노년의 삶을 즐기고 계시다. 자리를 함께 했던 셋째 딸 김경란 님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다.

“우리 형제들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싸움은 고사하고 두 분 사이에 큰소리조차 내는 걸 들은 적도 없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없는 집안 형편에 형제들끼리 우애라도 있게 지내라고 두 분이 본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그랬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덕분인지 저희 형제남매들은 모두 우애가 남달라요. 저희들은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지요.”

이 뿐만이 아니다. 남편 김영태 할아버지는 겉으로는 무척 무뚝뚝해 보이지만 속정이 아주 깊은 분이시라고 한다. 임정자 할머니가 은근히 할아버지 자랑을 하시며 말씀하신다.

“하루는 내가 큰 맘 먹고 당신이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더니, 이 양반이 들었으면서도 못 들은 척 아무 대답 없이 밥만 먹더라구. 말한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말이여. 얼마나 밉던지... 그래도 내가 그 마음 다 알아. 내가 한글공부 시작한다고 했을 때 적극 지지해주고, 챙겨준 양반이여. ‘오늘이 공부하는 날이다.’ ‘시간 다 됐다.’ 하면서 일일이 챙겨주더라고.”



늘그막의 낙, 할머니의 한글공부


할머니의 한글공부는 85세에 시작했으니 올해로 3년째에 접어든다. 그 나이에 무슨 공부냐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할머니의 학구열은 남다르다. “연필을 들면 기운이 나고, 종이를 보면 생각이 떠오른다.”는 할머니의 이 한마디로 모든 것은 정리된다. 3년째 할머니를 가르치고 있는 노성숙(72세) 한글대학 강사님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덕평2리의 한글대학 학생은 모두 일곱 분이신데, 그 중 임정자 할머니가 가장 연세가 많으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우등생이고 모범생이시지요. 수업시간에 모든 강의 내용을 꼼꼼하게 기록하시는 것은 물론이고요, 한 순간도 허투로 보내지 않고 집중하시는 것이 정말 대단하세요.”

임정자 할머니는 3년 째 단 하루도 수업을 빼먹지 않은 유일한 개근 학생이며, 문장력도 뛰어나고 무엇보다 즐겁게 수업에 임한다고 노성숙 선생님이 귀뜀해준다. 한글대학은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 등 일반적 한글 수업뿐 아니라 그림그리기, 색종이접기, 점토놀이, 게임 등 다양한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는데 임정자 할머니는 무엇이든 열심히 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범생이라고 모두들 칭찬한다.

뿐만 아니라 임정자 할머니는 황혼일기라는 제목으로 매일매일 일상의 일과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적고 있는데, 벌써 여러 권의 노트로 쌓여 있다. 또 항상 메모지를 가지고 다니면서 좋은 글감이 떠오를 때마다 적어놓은 메모도 상당한 양에 이른다.

이 덕분인지 논산시가 주최한 한글대학 백일장에서 글꿈상, 글봄상, 개근상, 노력상, 배움상 등을 2년 연속 수상했는데, 그날 마을잔치를 크게 벌였다고 한다. 여기에 그녀가 지은 몇 개의 글을 소개한다.


그림숙재

그림숙재를 하는데 우영감이 나가면서 에오컨을 끄고 나갔다. 미움보다 우슴이 나드라. 

(2018년 7월 16일)


86세 세월이 길다면 너무 길다.

재미있게 살아보지 못하고 눈물과 함숨으로 지냈다.

지저분한 과거는 꽁꽁무커서 흘러가는 강물에 던져버리고

아푸지말고 조운 생각만 하면서 살다 가자.

한글공부 안이면 이런 생각도 못했다.


대성아

얼마 만에 대성이를 불러보는 이름이냐.

네가 떠난 지가 오년이라는 세월이 지났구나.

저세상에서 잘있느냐.

잘있는지 못있는지 어미가 않보았쓰니 잘모르겠다.

어미는 눈에 너도앞푸지 않은 막내을 먼저 보내고

한숨과 눈물로 보낸다.

오늘은 네가 집에 오는 날이다.

너는 어미를 볼수 있지만 어미는 너를 보지 못한다.

너의 친구들이 매년 와서 열마나 고마운지 너무 고맜드라.

자식을 먼저 보낸 어미가 사라봤자

모진 목숨 죽지 못해산다.

대성아 보고십구나.

어미가


나는 내 방에서 일기를 쓰고 있는데

밤 8시 가슴이 답답하다며 나한테 와서 엄살을 한다.

소와재 먹느냐고 했든이 먹었다 하드라.

거실로 따라가서 안자서 쳐다보니 기막히드라.

왔다갔다 하드니 옷을 입고서 박에 화장실로 가드라.

갔다 오드니 화토노리를 했다.

자기 젖테(곁에) 있쓰라고 하는 눈치다.

내몸도 힘드는데 하나열까지 저만 챙기라고 하는 눈치다.

하루이뜰도 않이고 언제까지 내가 버티라나 걱정이다.

사라보왔자 고생만 뒤지게 할게 압이 캄캄하다.

내 팔자도 드런 팔자다.

(2019년 3월 3일)



한글대학 선생님과 함께



가끔 생각나는 옛날이야기


임정자 할머니는 고생스러웠던 옛날 일이 가끔 생각난다고 한다. 큰아들이 백일쯤 되었을 때이니 벌써 67년 전의 일이다. 임정자 할머니로부터 직접 들어본다.

“남편이 나와 어린 아들을 놔두고 군에 덜컥 입대를 하게 되었는데, 정말 막막했어. ‘나 돌아올 때까지 잘 있으라.’ 하면서 어디서 구해왔는지 쌀을 놔두고 남편이 군에 들어갔지. 한 달이 지났을 때 얼마나 그립던지 그 어린 애를 업고 손에는 밥을 지어서 들고 훈련소까지 면회를 갔었어. 남편은 밥은 안중에도 없고 애기를 끌어안고 내려놓을 줄을 몰랐어. 오히려 나 보고 ‘당신 밥 먹으라.’고 하더군. 돌아올 때는 군용트럭 뒷칸을 얻어 타고 논산역까지 와서 집까지 걸어왔었지. 매주 일요일마다 그렇게 면회를 다녔었어.”

임정자 할머니는 그때의 기억은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하나도 잊지 못하고 있다면서, 할아버지의 군번을 아직도 똑똑하게 외우셨다. “군번 9853346!” 정말 대단한 기억력을 가지고 계신 할머니다. 할머니의 얘기는 계속 이어진다.

“그렇게 남편 없이 고생하고 있을 때,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어느 겨울이었는데, 고모부님이 오셨다가 애기를 끌어안고 방에서 울고 있는 나를 본 모양이야. 무척 안 돼 보였던지 쌀 한 가마를 보내주더라고. 나는 그것을 한 끼니라도 늘려 먹을 심산으로 멀건 죽을 끓여먹었다오. 그렇게 살았어. 그때 기억이 가끔 생생하게 떠올라.”


재미있는 내 인생, 하루하루 즐겁게


임정자 할머니는 다리가 조금 불편하실 뿐 대체로 건강하시다. 몸보다도 마음과 정신이 건강하시다. 매사 긍정적이고 유쾌하시다. 가끔 속상할 일이 있을 때에는 혼자 노래를 부른다고 하신다. ‘못난 청춘’, ‘여자의 일생’은 할머니의 애창곡이다. 인터뷰를 하는 중에도 노래 이야기가 나오자 “못 견디게 괴로워도〰 울지 못하고〰”하면서 흥얼거리신다.

임정자 할머니는 이제 더 이상 바랄 것이 뭐가 있겠냐며 ‘내가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는 것이 자식들 도와주는 게 아니겠느냐.’며 하루하루 즐겁게 사는 것이 내게도 좋고 자식들에게도 좋은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한글공부를 하면서 ‘나이와는 관계없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는데, 이는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된다고도 말씀하신다.

함께 자리를 했던 셋째 딸 김경란 님은 어머니가 동생을 먼저 보내고 무척 힘들어 하셨는데, 글 쓰는 취미를 갖게 되어 매일매일 즐겁게 지내시니 너무 기쁘다고 말한다.

“당신께서 쓴 글을 읽어주며 들어보라고도 하시고, 한글 선생님 자랑도 하시고, 공부시간을 기다리시고, 저희는 너무 좋지요.”



현재는 코로나19 때문에 한글대학이 잠정 중단된 상태다. 언제 한글대학이 다시 문을 열지는 아직 감감하다. 임정자 할머니를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한글대학이 다시 시작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정말 유쾌한 시간이었다.


손지영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