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자연요리교실에서 배운 절기밥상

놀뫼신문
2019-12-05

[생활협동조합 ‘한살림’의 생명학교 심화과정]

제철자연요리교실에서 배운 절기밥상



유독 입안에서 도르르 굴러다니는 말이 있습니다. 오래 가지고 놀아 반질반질 길들여진 공깃돌같이, 햇빛에 반짝 빛나는 유리구슬같이 동그랗고 맑은 소리가 나는 말들이요. ‘낭랑’이라는 말이 꼭 그렇습니다. 비음 섞인 기분 좋은 울림과, 푸릇하고 싱그러운 어감이 매력적입니다.

사회적 기업 ‘낭랑소반’ 정지연 대표는 요리강사입니다. 얼마전 논산에서 열린 생명학교 심화과정에는 21명의 수강생이 참여했습니다. 생명교실 마지막 강의가 있던 날 정지연 강사는 ‘제철자연요리와 플레이팅 실습’이라는 주제로 요리 실습을 했습니다. 연잎밥과 무말랭이무침, 뿌리채소샐러드, 묵구이, 김장아찌, 덤으로 시래기들깨된장국까지 배웠는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정말 맛있고 훌륭한 한상차림이었습니다. 

평소에 엄두가 안 났던 음식에 도전해보면서 자신감도 생겼구요, 재료는 그대로인데 조리법만 살짝 바꾸어도 맛과 식감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깨달았습니다. 12월에 있는 가족 행사에 이 메뉴 그대로 상차림해보는 게 바람인데... 잘 될랑가 모르겄네요ㅎ~

“연잎밥을 만들 때 너무 많은 재료를 섞지 말라”는 당부가 있었습니다. 특히 은행이나 흑미처럼 향이 진한 재료들을 많이 섞으면 연잎 고유의 향이 사라져 버린다고요. 찹쌀의 쫀득함, 잣의 고소함, 밤과 대추의 달콤한 맛이 제각기 풍미를 돋우면서도, 주인공인 연잎의 향을 해치지 않는 비법은 다른 게 아니었습니다. 좋은 재료를 많이 넣으려는 욕심만 버리면 되는 거였어요. ‘적당히’... 대대손손 전해지는 어머니들의 비법이지만 제겐 아직도 어려운 말입니다. “밥만 먹어도 맛있어요.” 수강생의 말처럼 다른 찬이 필요 없는 요리였습니다.



다른 요리들도 훌륭했지만 ‘묵구이’는 그 중에서도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묵을 도톰하고 큼직하게 썰어서 2~3일 정도 꾸덕하게 말린 다음, 들기름에 지져서 양념을 올리는 요리였는데요. 묵무침, 묵국수, 건조묵을 이용한 요리가 전부였던 저에게 이번 강의는 새롭고 신선했습니다. 

구워낸 묵은, 겉은 쫄깃하고 속은 부드럽고 촉촉합니다. 전혀 다른 두 종류의 식감이 한 입에 어우러지면서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독특하고 신기한 맛을 내더라구요. 채를 친 밤과 대추에 간장과 조청, 참기름을 더해 살짝 끓여서 양념장을 올리면 더 끝내주는 맛이 됩니다. 고급스럽고 품위 있는 상차림에 강추입니다.

사실 묵구이를 못할 뻔했습니다. 도토리묵이 주문이 안 돼서 선생님이 다른 메뉴로 바꾸려고 했는데, 강효민 한살림논산지역활동가가 묵을 쑤고 꼬박 이틀간 말려서 재료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저 같았으면 못했을 겁니다. 그 정성과 수고가 고마울 따름입니다. 생명학교의 수업을 위해 묵묵히 애써주는 모습에 감동할 때가 여러 번입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제가 자주 실패하는 무말랭이무침의 비법은 밑간에 있었구요, 연잎밥과 기맥힌 궁합을 선보였던 김장아찌도 인기 짱이었습니다. 식구들에게 선보였더니 “맛있다”면서 “칭찬 듬뿍 받았다”는 댓글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뿌리채소샐러드의 상큼함도 다들 좋아했습니다. 

레시피에는 없었지만, 점심 먹을 때 곁들이라고 선생님께서 국을 끓여주셨는데 저는 이 맛에 홀딱 반했습니다. 생들깨를 갈아 국물만 꼭 짜서 시래기된장국을 끓여 주었는데, 부드럽고 고소하기가 이를 데 없었어요. 집에 오자마자 생들깨를 팔았습니다. 든든하고 뿌듯한 마음이 드는 게, 겨우내 우리집 최애 요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점심을 먹는데 수강생 중 한 분이 고기집을 채식요리집으로 바꾸고 싶다고 하십니다. 강의를 들을수록 결심이 굳어진다면서요. 오시는 손님들에게 더 건강한 요리를 대접해 드리고 싶은 바람이 생겼다고 합니다. 생명학교의 힘입니다. 배운 만큼 고민하고 그 고민이 일상의 작고 큰 변화와 실천을 낳고 있으니 말입니다. 

가을 하늘도, 요리 수업도, 함께 하는 이들도, 모두 ‘낭랑’이었습니다. 맑고 또랑또랑한, 기분 좋은 날입니다.


- 박은희(논산 식생활교육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