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놀뫼신문이 주목했던 4가지] 3·1절100주년 특별기획시리즈

놀뫼신문
2019-12-30


[2019 놀뫼신문이 주목했던 4가지] 

3·1절100주년 특별기획시리즈


요즘 TV는 ‘다시보기’가 가능하다. 우리 놀뫼신문도 인터넷판(https://nmn.ff.or.kr)에서 기사 검색이 가능하다. 2019년 놀뫼신문은 4개의 기획시리즈를 내놓았다. 여기, 그 시리즈를 모아서 일목요연하게 선보인다. 

2019 논산은 지역사회에 필요한 여론을 형성하고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비근한 실례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새마을금고의 선거방식을 정상화시키는 데 일조하였다. 사안에 따라서 단발적인 것도 있지만 지속적으로 주목해야 할 내용들도 있다. 그런 사항들은 기획시리즈로 해서 집중을 하였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중앙의 매체들은 중국 일본 현지 로케로 대대적인 기획을 하였다. 지방지인 놀뫼신문은 그럴 여건이 거의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3·1절100주년 특별기획시리즈”라는 대단위 프로젝트를 구상했고, 일단 첫 회를 출범부터 시켜놓고 보았다. 

이 부문의 연구자들도 도움을 주었고, 이 분야에 개인적인 관심이 높던 시민기자가 나서서 사비까지 들여가며 종횡무진해주었다. 그래서 총 13회까지 진행할 수가 있었다. 매달 한 편씩 진행한 꼴인데, 그 속에는 실로 다양 다기한 내용들을 담게 되었다. 

특히 2019년은 일본과 한국이 100년 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일본안가기, 일산안사기, 지소미아 등의 기사를 실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결국 그러한 기사도 이 기획에 담아야 했다. 과거 못지않게 현재도 다룬 것인데 미흡함이 뒤따랐다. 용두사미격으로 3·1운동100주년기념 기획시리즈를 잠정 중단한 채 개점 휴업중이었다. 그런데 논산에서도 이 작업을 훌륭하게 해놓은 모임이 있었다. 논산향토문화연구회였다.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으로 열린 2019년 발표회 주제는 “충남·세종의 3·1운동과 논산”이었다. 지난 5월 21일 건양대학교 인문관 강당에서 하루 종일 열린 이 세미나는 충남.세종향토사연구연합회가 주최, 논산향토연구회와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주관, 논산시 후원으로 열렸다. 이 발표 내용을 중심으로 “논산과 3·1절 14집-합본”이 완성되었는데, 주요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 정을경(충남역사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논산지역의 독립운동]  

* 윤흥식(논산향토연구회 총무)  

[파평윤씨 노성종중 독립운동] 

[논산의 지역별 독립운동가 현황] 

* 조중헌(논산향토문화연구회장)

[논산시 독립운동가 금석문] 김태호~김종현(28인)

[논산이 낳은 형제 독립운동가 신현구와 신현창] 


이 덕분에 올해 기획시리즈 대미를 장식할 수 있었다. 본지에 전재를 허락해주신 논산향토문화연구회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특히 윤흥식 선생님의 쾌유를 기원 드린다. 후반부는 이렇게 장식되었지만 초창기에 이 시리즈를 견인해준 성수용 시민기자의 후일담을 들어본다. 



3·1운동을 ‘3·1대혁명’으로


한세기 100년은 긴 역사이다. 그러한 역사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하는 것들이 있다. 우리의 2019년은 100년의 역사를 맞이한 삼일운동을 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미 많은 것이 잊어져 가고 있었다. 나라의 자주독립을 외쳤던 열사들은 이미 우리 곁을 떠나갔고, 열사들의 발자취마저도 우리에게 떠나가고 있었다. 

놀뫼신문사는 그 중에서 삼일운동 이후 지역에서 삼일운동의 불씨를 이어갔던 ‘강경 3·10만세운동’의 주역인 ‘엄창섭 열사님’을 발굴하였고, 엄 열사님의 잊어가는 기록을 다시 회복하여 우리들의 기억 속으로 되가져오는 ‘역사의 기억 소환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엄 열사님의 모든 것을 가져올 수는 없었다. 이미 일제에 의해 열사님의 모든 기록들이 말살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안타까운 것은 삼일운동의 역사를 날조하여 자신과 자신의 가문의 명성으로 꾸미려는 모습이 나타나는 현장을 목도한 것이다. 그래도 놀뫼신문사에서는 ‘강경 3·10만세운동’의 주역인 엄창섭 열사님을 바로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 

‘강경 3·10만세운동’은 그 배경으로 마을주민들과 개신교 교회가 연합하여 힘을 보태주고 있었던 점도 새롭게 발굴된 이야기들이다. 그 중심에는 ‘부여 세도 청포교회’가 있었다. 금강 변을 사이에 두고 논산 강경과 부여 세도는 한 마을이고 한 가족이었다. 놀뫼신문사는 지역적으로 분할되어 있는 ‘강경3·10만세운동’을 하나로 묶어내는 역할을 자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아직도 이러한 강경3·10만세운동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논산 강경과 부여 세도, 그리고 익산 웅포’를 연결하지 못하는 있다는 점이다. 


이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