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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지역 논산‧계룡에는 3개의 향교와 10개의 서원 외에도 궐리사, 종학당 등의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 특히 조선시대 성리학 교육시설의 대표적인 10개의 서원들은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에 이르기까지 향촌 지식인들에 의해 건립되었다. 한국의 서원이 중국의 서원을 벤치마킹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서원은 중국과 현저한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단적인 예로 중국의 서원은 기본적으로 관료양성을 위한 성격이 강하지만 한국의 서원은 선비들이 모여 학문을 절차탁마(切磋琢磨)하는 곳인 동시에 선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일도 겸했다. 이것을 ‘존현양사(尊賢養士)’라 한다. 성리학에 기반한 유교문화 전통의 특출한 증거인 논산의 서원 10곳 중에는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돈암서원도 포함되어 있다. 이에 이번 [표지초대석]에서는 돈암서원 김선의 원장을 만나 세계가 인정한 ‘돈암서원의 보편적 탁월한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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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고택에서 태어나고 자란 광산 김씨 두계공파
해방 후 초대 논산군 군수였던(재임기간 1948.8.30.~1949.7.9.) 김용주 옹이 바로 김선의 원장의 조부이다. 김선의 원장은 지금의 사계고택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김선의 원장은 사계 김장생 선생의 9명 자녀 중 8번째인 두계공파의 후손으로, 계룡시 초대 시의원을 지낸 광산 김씨 두계공파 종손인 김정순 전 의원이 5촌 조카이다.
이런 연유로 그는 일찌감치 종가의 부름을 받아 ‘돈암서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라는 큰 난제를 해결하고, 2020년 7월 만장일치로 돈암서원 원장에 추대되었다.
김선의 원장은 돈암서원 부원장으로 재직했던 기간 동안, 대한민국 문화유산활용단체 회장을 맡아 문화재청에서 수행하는 400여 개의 문화유산활용사업의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돈암서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지난 2019년 12월 ‘대통령표창’을 수상했다.
돈암서원의 가치, 세계가 인정하기까지
김선의 원장은 “돈암서원을 비롯한 한국의 9개 서원이 세계유산 필수 조건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로 평가되면서 2019년 7월 6일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공식 등재되었는데, 당초 돈암서원은 ‘한국의 서원’ 등재에 속하지 못했었다”라고 회상한다.
그러나 김 원장은 이에 굴하지 않고 “돈암서원은 한국 유학의 양대 흐름 가운데 기호유학의 정통을 계승하며, 기존의 서원이 주로 영남유교 중심이므로 동서 화합을 위해서라도 돈암서원이 포함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노력으로 “돈암서원이 반영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김 원장은 “그렇게 2011년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잠정목록에 돈암서원 이름을 올리고 2015년 유네스코에 등재신청서를 제출했는데, 9개 서원의 연계성이 부족하고, 특히 돈암서원이 한 차례 옮겨지었기에 세계유산으로서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어, 이후 9개 서원 관계자는 합의를 통해 등재 신청을 자진 철회하였다”며, “이후 3년 동안 뼈를 깎는 인고의 시간을 보내며 지적 사항을 보완해 2018년 다시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했다”고 그때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그러면서 김 원장은 “2018년 재신청 당시 이코모스(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중국 대표는 한국의 서원은 동아시아의 유교문화 보급과 지역화에 이바지한 중요한 유산이며, 주변 환경과 잘 조화된 한국의 독자적인 서원 건축 형식을 발전시킴으로써 한국에서 성리학을 꽃피우게 했다”며, “한국의 서원이 갖는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했다”고 설명한다.
“돈암서원은 현 위치에서 약 2km 떨어진 외성리 외성산 자락에서 250년을 지내다가 지금의 자리에서 한 세기 반을 지낼 수 있었던 것은, 홍수라는 자연환경의 위협에 맞닥뜨리면서도 건물의 규모와 배치는 예제 원칙을 지키는 한편, 김장생‧김집‧송시열‧송준길 등이 이룬 예학의 정통성을 이어받아 당시 어지러운 현실을 바로잡기 위한 실천적 행동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대한민국 보물 제1569호로 지정된 ‘응도당’이 옛 돈암서원 터에 그대로 남아 있다가 무려 91년이 지난 1971년에야 현재 자리로 옮겨진 것은 자연재해의 위협 속에서도 건축물을 살리려는 돈암서원의 정신과 호서사람들의 진정성의 결과”라고 강조한다.
김선의 원장은 “유네스코 실사 시에도 활용사업을 가장 잘하는 서원으로 칭찬을 받았는데, 삼희성(三喜聲) 즉, 세 가지 기쁜 소리가 들리는 서원으로 거듭나겠다”면서, “첫 번째 기쁜 소리는 갓난아기 우는 소리, 두 번째 기쁜 소리는 젊은이들의 책 읽는 소리, 그리고 세 번째 기쁜 소리는 방안에서 나는 여인들의 다듬이 소리, 즉 일하는 소리인데, 여인들의 다듬이 소리 대신 노인들의 지혜로운 소리가 울려 퍼져서 평생 살아오신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젊은이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그러한 장소로 돈암서원이 활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 전영주 편집장
우리지역 논산‧계룡에는 3개의 향교와 10개의 서원 외에도 궐리사, 종학당 등의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 특히 조선시대 성리학 교육시설의 대표적인 10개의 서원들은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에 이르기까지 향촌 지식인들에 의해 건립되었다.
한국의 서원이 중국의 서원을 벤치마킹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서원은 중국과 현저한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단적인 예로 중국의 서원은 기본적으로 관료양성을 위한 성격이 강하지만 한국의 서원은 선비들이 모여 학문을 절차탁마(切磋琢磨)하는 곳인 동시에 선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일도 겸했다. 이것을 ‘존현양사(尊賢養士)’라 한다.
성리학에 기반한 유교문화 전통의 특출한 증거인 논산의 서원 10곳 중에는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돈암서원도 포함되어 있다. 이에 이번 [표지초대석]에서는 돈암서원 김선의 원장을 만나 세계가 인정한 ‘돈암서원의 보편적 탁월한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사계고택에서 태어나고 자란 광산 김씨 두계공파
해방 후 초대 논산군 군수였던(재임기간 1948.8.30.~1949.7.9.) 김용주 옹이 바로 김선의 원장의 조부이다. 김선의 원장은 지금의 사계고택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김선의 원장은 사계 김장생 선생의 9명 자녀 중 8번째인 두계공파의 후손으로, 계룡시 초대 시의원을 지낸 광산 김씨 두계공파 종손인 김정순 전 의원이 5촌 조카이다.
이런 연유로 그는 일찌감치 종가의 부름을 받아 ‘돈암서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라는 큰 난제를 해결하고, 2020년 7월 만장일치로 돈암서원 원장에 추대되었다.
김선의 원장은 돈암서원 부원장으로 재직했던 기간 동안, 대한민국 문화유산활용단체 회장을 맡아 문화재청에서 수행하는 400여 개의 문화유산활용사업의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돈암서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지난 2019년 12월 ‘대통령표창’을 수상했다.
돈암서원의 가치, 세계가 인정하기까지
김선의 원장은 “돈암서원을 비롯한 한국의 9개 서원이 세계유산 필수 조건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로 평가되면서 2019년 7월 6일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공식 등재되었는데, 당초 돈암서원은 ‘한국의 서원’ 등재에 속하지 못했었다”라고 회상한다.
그러나 김 원장은 이에 굴하지 않고 “돈암서원은 한국 유학의 양대 흐름 가운데 기호유학의 정통을 계승하며, 기존의 서원이 주로 영남유교 중심이므로 동서 화합을 위해서라도 돈암서원이 포함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노력으로 “돈암서원이 반영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김 원장은 “그렇게 2011년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잠정목록에 돈암서원 이름을 올리고 2015년 유네스코에 등재신청서를 제출했는데, 9개 서원의 연계성이 부족하고, 특히 돈암서원이 한 차례 옮겨지었기에 세계유산으로서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어, 이후 9개 서원 관계자는 합의를 통해 등재 신청을 자진 철회하였다”며, “이후 3년 동안 뼈를 깎는 인고의 시간을 보내며 지적 사항을 보완해 2018년 다시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했다”고 그때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그러면서 김 원장은 “2018년 재신청 당시 이코모스(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중국 대표는 한국의 서원은 동아시아의 유교문화 보급과 지역화에 이바지한 중요한 유산이며, 주변 환경과 잘 조화된 한국의 독자적인 서원 건축 형식을 발전시킴으로써 한국에서 성리학을 꽃피우게 했다”며, “한국의 서원이 갖는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했다”고 설명한다.
“돈암서원은 현 위치에서 약 2km 떨어진 외성리 외성산 자락에서 250년을 지내다가 지금의 자리에서 한 세기 반을 지낼 수 있었던 것은, 홍수라는 자연환경의 위협에 맞닥뜨리면서도 건물의 규모와 배치는 예제 원칙을 지키는 한편, 김장생‧김집‧송시열‧송준길 등이 이룬 예학의 정통성을 이어받아 당시 어지러운 현실을 바로잡기 위한 실천적 행동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대한민국 보물 제1569호로 지정된 ‘응도당’이 옛 돈암서원 터에 그대로 남아 있다가 무려 91년이 지난 1971년에야 현재 자리로 옮겨진 것은 자연재해의 위협 속에서도 건축물을 살리려는 돈암서원의 정신과 호서사람들의 진정성의 결과”라고 강조한다.
김선의 원장은 “유네스코 실사 시에도 활용사업을 가장 잘하는 서원으로 칭찬을 받았는데, 삼희성(三喜聲) 즉, 세 가지 기쁜 소리가 들리는 서원으로 거듭나겠다”면서, “첫 번째 기쁜 소리는 갓난아기 우는 소리, 두 번째 기쁜 소리는 젊은이들의 책 읽는 소리, 그리고 세 번째 기쁜 소리는 방안에서 나는 여인들의 다듬이 소리, 즉 일하는 소리인데, 여인들의 다듬이 소리 대신 노인들의 지혜로운 소리가 울려 퍼져서 평생 살아오신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젊은이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그러한 장소로 돈암서원이 활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 전영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