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본고장’을 주장하는 각 지역의 사례

놀뫼신문
2024-07-07

[충청남도 지역미디어 육성 지원사업] 스포츠태권도의 발원지를 찾아서(3)

‘태권도 본고장’을 주장하는 각 지역의 사례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태권도가 우리의 국기(國技)라는 것에 의심하지 않는다. 

이러한 국기인 태권도가 어느 한 지역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며, 하나의 무술이 이어져 내려온 것 또한 아니다. 우리의 전통 무술인 태권도는 여러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며 합쳐지고 또 나뉘며 계승되어 왔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과 일본의 무술과 교류하며 발전해 왔다.

그런데 태권도의 발상지를 주장하는 지역들이 있다.

우선 ‘무주’는 태권도원이라는 국립기관을 유치하고 국제대회를 매년 개최한다고 해서, ‘제주도’는 태권도라는 이름을 최초로 만든 이가 그곳에서 근무했다고 해서, ‘진천’은 화랑의 김유신 출생지라 해서, ‘경주’는 화랑도의 탄생지라 해서, ‘충주’는 택견원이 있다고 해서 각기 태권도가 자기 고장에서 발생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논산 연무) 지역까지 태권도의 발상지라고 주장하기에는 논란만 부추기는 면이 없지 않으나, 논산 연무는 고대 ‘수박희’에서 근대 태권도에 이르기까지 군(軍)의 기초훈련부터 민간의 세시풍속까지 이어지며 명맥과 부흥을 함께해 온 발원‧부흥지라는 명백한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1530년 편찬된 「신동국여지승람」을 보아도 태권도의 원조격인 ‘수박희’가 논산 연무를 중심으로 보존‧계승되어 왔다는 역사적인 기록을 유일하게 찾아볼 수 있는 지역이다.

이에 이번호에서는 태권도의 본고장이라고 주장하는 각 지역들의 그 이유와 현황을 알아보고, 또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무주 : 국립태권도원

전북 무주군 설천면 무설로 1482


전북 무주에는 국립태권도원이 있다. 약 70만평의 대규모 시설로 대한민국의 태권도 교육 및 연구를 위한 국가기관으로, 태권도공원과 태권도박물관이 있고, 현재 태권도사관학교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매년 세계태권도대회를 이곳에서 개최하고 있다. 무주는 이렇게 태권도에 관련된 많은 시설을 조성하고 또 관련 사업을 활발하게 하는 이유는 1994년 10월 파리 제103차 IOC총회에서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것을 계기로 ‘태권도성전’ 건립이 추진되었기 때문이다.

무주에 국립태권도원이 들어서게 된 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전라북도와 무주군은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전국 어느 지방자치단체보다 더 발빠르게 움직였다.

그런데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동계올림픽 유치도시의 단일화 과정에서 무주는 강원도 평창에 패배했다. 하지만 전라북도와 무주군, 무주 지역민들은 동계올림픽 유치 실패라는 허탈감을 극복하고, 일회성의 메가 스포츠 이벤트보다는 영구적인 관광자원이 될 가능성이 높은 태권도원으로 눈을 돌렸다.

두 번의 실패를 맛보지 않기 위해 전라북도와 무주군은 그 어느 후보 지역보다도 더 체계적이고 도전적으로 국립태권도원 유치를 준비하였다.

무주군은 전라북도 차원에서 완주, 진안, 익산보다 더 나은 접근성과 관광 인프라 등을 강조하며 단일 후보로 선정했다. 이를 통해 전라북도는 무주군의 국립태권도원 유치를 내부적으로 잡음없이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게 되었고, 특히 행정과 재정 지원을 집중하여 무주군의 태권도원 유치에 힘을 보탰다.

국립태권도원 유치 결정이 임박하면서 태권도원 최종 후보지로 전라북도 무주, 경상북도 경주, 강원도 춘천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다. 1600억 원 이상이 투자되는 국책사업인 국립태권도원을 확보할 경우 세계 200여 개국의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게 되는 등 경제적 이득이 크다는 점에서 이 세 지역은 유치전에 사활을 걸고 뛰어들었다.

무주는 대한민국 최대 청정지역, 아름다운 자연 경관, 내륙 교통의 중심지 등을 내세우며 태권도원이 무주에 있어야 할 당위성을 지속적으로 호소했다.

이후 자치단체간 유치경쟁 과열로 후보지 선정이 중단되었다가 2004년 ‘태권도공원 조성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전라북도 무주군을 최종부지로 선정·발표했다. 그렇다고 해서 무주가 태권도의 발원지라고 말할 수는 없다.


태권도원 T1 경기장




[국립태권도원]

태권도 모국의 자부심으로 세워진 ‘국립태권도원’은 올림픽 단일종목으로는 최초로 경기, 체험, 수련, 교육, 연구, 교류 등 태권도에 관련된 모든 것이 가능한 세계 유일의 태권도 전문공간이다.

또한 전 세계인이 태권도를 통해 한국을 느끼고 한국의 얼에 감동받을 수 있는 우리 시대의 살아있는 세계문화유산이다.

국립태권도원은 서울 월드컵 경기장의 10배, 서울 여의도 면적의 1/2, 18홀 골프장 2개, 뉴욕 센트럴파크의 70%의 면적으로 전 세계 태권도인을 위한 최대 규모의 수련 공간이다.

태권도원은 태권도를 향한 신체 단련과 끊임없는 탐구를 통해 태권도형 인간에 이르는 ‘위대한 체(體)·인(認)·지(至)’의 실천 공간으로 태권도 교육과 수련, 체험과 문화교류를 테마로 45가지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국내·외 태권도인은 물론 기업, 학생, 일반인 등 태권도를 통한 심신수련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태권도원의 평원관은 국가대표 종합훈련장으로 태권도 품새 국가대표 및 주니어 국가대표, 국가대표 상비군, 시범단 등의 훈련을 평원관에서 진행한다.


[국립태권도박물관]

지상 3층, 지하 1층, 연면적 7,314㎡ 규모의 세계 최초 국립태권도박물관은 태권도의 발전 역사와 각종 수련 및 경기용품, 올림픽 관련 자료 등 한국의 대표 문화 브랜드로서 태권도의 정수를 전시하는 공간이다. 고대와 근‧현대에 걸친 각종 태권도 관련 유물 5천여 점을 보유하고 있다.



국립태권도박물관


오행폭포

전망대


제주 : 모슬포 29보병사단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2820-1번지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정부에서는 1951년 3월 일본군이 남긴 모슬포 대촌병사를 이용해 육군 제1훈련소를 창설(소장 백인엽 준장)했다. 10만 명 수용규모의 신병 훈련소였던 모슬포 제1훈련소의 또 다른 명칭은 강병대(强兵臺)이다.

한라산 서남부 일대가 제1훈련소의 훈련장이 됐으며 여기서 훈련한 병력으로 전선을 유지했다. 휴전 이후에도 제1훈련소는 존속되다가 교통 등의 불편으로 1956년 논산으로 옮겨졌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대정읍에 들어선 모슬포 육군 제1훈련소는 신병을 대규모로 양성해 서울 재탈환 등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5년 동안 약 50만 장병들이 이곳에서 훈련을 받았다. 육군 제1훈련소 지휘소는 국군창설과 한국전쟁 상황을 알 수 있는 군사유적으로, 건군 60주년인 2008년 국군의 날을 맞아 제409호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1946년 11월 16일 조선경비대 9연대가 창설된 이래, 1948년 육군 제2연대가 주둔하기도 했다. 1949년 12월 28일 해병대가 옮겨왔으며, 1950년 8월 5일 인천상륙작전의 주역인 해병 3기가 입소한 유서 깊은 곳이다.

전장에 투입할 장병들을 양성하기 위한 육군 제5훈련소와 제3교육대가 창설되어 같은 해 9월 1일 군번 030 장병들이 입대하였고, 대구 제1훈련소와 부산 제3훈련소가 1951년 1월 이동, 통합하여 3월 21일 육군 제1훈련소로 정식 창설한 곳이기도 하다. 배출된 장병의 총수는 약 50만 명으로 1일 입소장병은 2천명 내외였으며, 한 때는 8만 명이 입소하기도 했다. 이후 1954년 8월 논산으로 이동함으로써 1956년 1월 폐쇄되었다. 1951년 2월 1일부터 4월 23일까지는 공군사관학교가 모슬포로 옮겨와 대정초등학교에서 사관생도를 양성하였다. 또한 1953년 9월에는 육군 마지막 사단인 제29사단 일명 익크사단(신익희의 미국식 발음인 익크에서 따온 것으로 신익희를 기리기 위함)이 이곳 모슬포에 창설되면서 태권도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하며 훗날 전군에 태권도를 보급하는 계기를 마련한 곳이기도 하다. 

1953년 모슬포 육군 제1훈련소에서 창설된 제29사단은 ‘태권사단·주먹사단·익크부대’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었다. 태권사단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로는 당시 사단장이었던 최홍희(1918~2002) 장군이 태권도에 보여준 각별한 사랑 때문이었다.

그 시절 당수도 또는 공수도 등으로 불리던 무술에 태권도라는 이름을 붙인 주인공은 최홍희 장군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부대원들의 경례구호도 ‘태권’으로 외치게 하고, 처음으로 장병 대상으로 태권훈련을 실시하는 등 태권도의 기반을 닦았다.

1954년 말경 태권도라는 명칭을 창안한 그는 당시 일부 군대를 중심으로 태권도라는 명칭이 쓰이도록 기반 조성에 나섰으며, 1958년 대한태권도협회를, 1966년 국제태권도연맹을 창립한 후 총재로 취임했다.

1972년 3월 캐나다로 망명한 그는 박정희의 유신체제 반대운동을 펼치며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했고, 1980년 10월 평양체육관에서 태권도 시범을 보였다. 2002년 6월 그가 여러 차례 방문했던 평양에서 사망한 후 혁명열사릉에 안장되었다.

태권도의 발상지임을 웅변하는 주먹탑은 높이 5.5m, 둘레 14m로, 삼각기둥 모양의 각면에‘건강한 체력·철저한 훈련·만만한 투지’라는 구호가 새겨져 있다.

맨 위에는 한반도 모양의 도안 속에 오른손 주먹을 그려 넣은 돌을 세웠었다. 1985년 11월 주먹탑이 사라졌다가 2000년 11월 대정읍 개발협회에서 대정 지역이 태권도 발상지라는 역사성을 살리기 위해 탑을 복원하기로 하고 탑 매몰 추정지인 상모리 2849-5번지 일대를 발굴하여 29사단 주먹탑을 찾아냈다. 발굴 당시 탑은 세 동강이 났고, 글씨도 심하게 훼손됐다.

2006년 7월 발간된 제주태권도 50년사에는 모슬포 29사단이 제주 태권도와는 관련이 없다는 다음의 글이 실렸다.

“1953년 9월 모슬포에 창설된 육군 제29사단(사단장 최홍희) 일명 익크사단에서 장병들의 기초체력 단련과 호국무술로서 태권도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제29사단에서 행한 것은 군대조직 내에서 훈련과정으로 행해진 것으로, 민간인들에게는 영향력이 없어 제주 태권도와는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 전영주 편집장

이 기획기사는 2024년 충청남도 지역미디어 육성 지원을 받아서 취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