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놀뫼신문이 주목했던 4가지] 논산의 정신과 동학, 그리고 마을공동체

놀뫼신문
2019-12-30


[2019 놀뫼신문이 주목했던 4가지] 

논산의 정신과 동학, 그리고 마을공동체 


요즘 TV는 ‘다시보기’가 가능하다. 우리 놀뫼신문도 인터넷판(https://nmn.ff.or.kr)에서 기사 검색이 가능하다. 2019년 놀뫼신문은 4개의 기획시리즈를 내놓았다. 여기, 그 시리즈를 모아서 일목요연하게 선보인다. 

2019 논산은 지역사회에 필요한 여론을 형성하고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비근한 실례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새마을금고의 선거방식을 정상화시키는 데 일조하였다. 사안에 따라서 단발적인 것도 있지만 지속적으로 주목해야 할 내용들도 있다. 그런 사항들은 기획시리즈로 해서 집중을 하였다.



지난 1월 9일자 놀뫼알릴레오에서 성수용 기자는 “미스터션샤인, 그리고 동학농민혁명”이라는 글을 올렸다. 일견 선샤인랜드와 동학이 무슨 관계가 있길래?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그간 우리 신문에서는 선샤인랜드를 홍보대사역 자임하다시피하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소개하여 왔다. 의병(義兵)이 주인공인 미스터 션사인에서, 의병은 과연 어디에서 왔을까? 대부분 동학군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견강부회 같지만 논산에서 미스터션샤인이 촬영되고 촬영장이 영구 건물로 남은 게 우연일까? 

그간 놀뫼신문에서는 동학을 간간 다루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접근할 때인 거 같다. 동학을 선샤인랜드와 떨어져서 다른 측면에서 살펴봐도 그 당위성이 다가온다. 


논산의 정신을 찾아서 


과연 논산의 정신은 무엇일까? 시대에 따라 관점에 따라서 확확 달라진다. 올해 돈암서원이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됨에 따라 유학에서 논산 정신을 찾으려는 노력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오는 2021년 노성에서 충청유교문화원 개관된다면 논산에서 대대적인 유학 붐도 예견된다. 

또하나의 정신은 근대화의 기수였던 강경의 근대문화거리와 기독교 성지이다. 기독교는 현대적인 교육, 의료 봉사 등으로 미개했던 조선을 개화하고 이끌어올린 데 1등 공신이고, 그 전초기지가 강경포구였다. 

천도교의 모체인 동학은 서학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 비친다. 기독교 같은 서학을 배척하는 종교적인 선입관도 드리워져 있다. 그런데 과연 동학을 종교로 볼 것인가? 평등사상을 제창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동학은 서양의 민주주의와도 닮았다. 엄밀히 보면 서로 등질 사이도 아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동학이 논산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평등 사상을 제창한 논산의 인물은 어디 없을까? 우리 모두 함께 찾아나설 일이다. 

어쨌거나 놀뫼신문은 논산 정신의 일단을 동학에서도 찾아보고자 안테나를 세워보았다. 연구자에 의하면 논산은 동학의 성지 못지않다는 소리도 들어서이다. 지난 12월 18일, 논산시 농민회에 일군의 사람들이 모였다. “논산 근현대사로 ‘새세상’을 밝히다”는 기치 아래 <논산 동학농민혁명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다. 

민예총 논산지부, 전농 논산시농민회 등 8단체가 모였지만 숫자로는 많지 않았다. 20명 안팎이 모여 있는데 강사는 예산 사람이 섰다. 박성묵 예산역사연구소장, 자신을 민중사 연구자라고 소개하였다. 한국당이 군수인 예산군에서 5억 정도의 돈을 대주어서 동학농민혁명기념탑을 제작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작업공간이 벌곡면이라는 말부터 시작하였다. 

박소장의 열강은 2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귀가하는 사람이 늘어나자 서둘러 강의를 마감하고 회의를 시작하였다. 내년도부터 논산의 동학(東學) 연구와 홍보 등을 어떻게 해나갈지 논의해갔다. 결론은 1월 초에 다시 모여 동학연구모임을 결성하고 연구 성과가 쌓이면 그것을 토대로 나중에 대외적인 행사도 진행해보자는 쪽으로 모아졌다.  

대외적인 행사? 논산과 동학이 무슨 큰 연결고리가 있다고? 동학혁명사에서 논산은 총집결지로 알려져 있다. 집결지야 교통이 좋으면 정할 수도 있는 것인데, 그렇다고 그게 중대한 의미를 지닌 역사적 사건이랄 수 있을는지....? 


전봉준에 밀려버린 논산동학


재작년 7월 12일 농민역사학교가 열렸다. “동학농민혁명과 논산”을 주제로 특강이 이어졌는데, 이때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 논의되었다. 전주화약일과 논산결집일 두 가지를 놓고 논의 진행중이며, 전주화약일로 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라는 상황이 보고되었다. 논산 지역은 2차로 봉기한 남접, 북접의 동학농민군이 총 결집하였던 곳이다. 4천명에서 출발한 전봉준의 군대가 논산에서는 10만대군으로 불어났다. 이 기적 같은 일이 논산에서 가능했던 것은, 논산이 그만큼 동학에 대하여 우호적이었고, 동학 천지였음을 방증한다고 박소장은 증언한다. 

논산이 동학의 핵(核)이었음을 웅변해주는 자료는 끝이 없다. 동학은 사농공상을 부정하며 만인이 평등하다는,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 사상의 기치를 들고 나왔다. 당시 기득권층였던 유학자, 양반들에게 정면 도전하는 이 사상을 양반들이 반겼을 리 만무하다. 동학을 궤멸시키다시피한 세력은 외부 세력, 외세 일본군였지만....  그 전 동학의 가장 큰 적은 유학자 집단 사림(士林)이었다. 그런데 논산 노성 유림들은 동학을 그렇게 핍박하지 않았다고 한다. 동학을 환영하지도 않았지만 탐관오리들 작태가 심하니 그러한 세력에 저항하는 동학의 움직임을 못본 체하거나 짐짓 동조하였던 것이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의 원년이다. 아니 그렇게 못 박아놨다. 그러나 그것은 박정희 정권이 전라도 사람들을 무마시키기 위하여 용인한 것이지, 사실은 논산이 한 해 앞선 1983년 봉기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명쾌하게 정립해 놓은 사람이 있다. 논산향토문화연구회 윤흥식 총무이다. 그는 “파평윤씨 노성종중의 독립운동”이라는 연구논문 3장 ‘노성종중의 節義 정신’을 다루면서 “동학과 노성종중”을 다음과 같이 기술해 놓았다. 


노성민란(魯城民亂)과 노성종중 


 1) 정의: 1893년 노성현감의 탐학 행위에 반발하여 논산 지역 농민들이 일으킨 민란

 2) 발단: 노성민란은 전운소(轉運所: 조세 양곡의 뱃길 운반을 맡아보던 지방관아)에서 운송하다 남은 미곡 400석 중 200석을 전 노성현감이 착복하였는데, 1893년에 부임한 신임 현감 황후연(黃厚淵)이 농민들에게 이 200석을 대신 물게 하자, 이에 반발하여 일어난 봉기이다.

 3) 경과: 농민들은 장두(狀頭) 유치복(兪致福)이 중심이 되어 여러 차례 민회 (民會)를 개최하였고, 이의 시정을 위해 정소(呈訴)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마침내 봉기하여 관아를 점령하고 황후연을 쫓아냈다. 민란의 주모자들은 유치복을 비롯한 윤상건(尹相健)·박관화(朴寬和)·이성오(李成 五)·윤상집(尹相執)·윤성칠(尹成七)·윤자형(尹滋馨) 등으로, 노성 지역의 대성(大姓)인 파평윤씨 노성종중에서 상당수 참여하였음

 4) 결과: 민란이 발발하자 충청감사는 민란을 조사한 뒤 주모자들을 처벌하고자 했지만, 주모자들이 모두 피신하여 처벌할 수 없었다. 다만 백화서 (白化西)만 주모자에 동조했다는 죄로 원악도(遠惡島: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살기가 어려운 섬) 유배라는 중형에 처해졌다. 충청감사는 주모자 외에도 노성 지역 향촌사회의 주도 세력인 좌수 양주흥(梁柱 興)을 비롯하여 이방(吏房) 이석민, 대동색(大同色) 김제흥·이민학, 창색(倉色) 김광오, 교유(校儒) 김재용·박응진, 면임(面任) 윤원근·송세 진·김상규·이사성·박준필·김자현·김영배·김준백 등을 처벌하였다. 민란 을 야기한 노성현감 황후연은 의금부에 투옥하여 관직이 박탈당하는 처벌을 받았다.

 5) 의의: 양반들로 구성된 주동자들이 전임 수령의 부정과 징세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 통문을 발하고, 민회를 개최하는 등 정소(소장을 관청에 냄) 운동 단계부터 파평윤씨 노성종중에서 대거 참여한 점이 특이하다.


이상 논산에서 동학을 위상을 간략하게 살펴보고, 논산이 왜 동학에 주목해야 하는지 두어 가지 사례를 공람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과 미래에서 특정 영역을 떼어내고 집중해서 몰입하다 보면 자칫 균형을 잃기 십상이다. 그래서 놀뫼신문은 모든 것의 중심에 사람을 세우고자 한다. 동학도, 인생노트도, 노포도, 금강도 그 중심에는 사람을 최우선으로 세워야 한다는 절대 명제이다. 

논산의 가장 큰 자랑은 500여 마을공동체이다. 2020년에는 “다같이 돌자 동네한바퀴” 같은 마을탐방 프로젝트도 요청된다. 그 마을에서도 핵(核)은 사람이다. 사람꽃이다. 


- 이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