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중심의 농업경영인, 임권영 광석농협 조합장

2022-08-31

[기획탐방 : 광석농업협동조합]

"농협 존립의 목적은 농민에 있다"

현장 중심의 농업경영인, 임권영 조합장 


2021년 논산시 관내 농협 종합경영평가에서 광석농업협동조합이 1위를 달성했다. 이는 광석농협 창립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평가점수이다. 1위를 차지한 광석농협은 99.9점으로 2위를 차지한 ㅇㅇ농협보다 11.1점을 더 받았다. 1위 99.9점, 2위 88.8점, 10위 79.6점이라는 평가점수를 감안하면 광석농협이 월등하게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어찌어찌하다 운이 좋아서 1위를 했다는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이렇게 2021년 관내 종합경영평가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 중심에는 임권영 조합장의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논산 10개소의 농협 중 최초 농업경영인 출신이다. 그렇기에 그는 농업인의 입장과 처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 현장 중심의 농업경영으로 조합의 발전을 이루어 낸 것이다. 

본지는 광석농협 임권영 조합장을 만나 조합의 발전 이야기에서부터 그가 살아온 삶의 이야기까지 들어본다.



광석농협의 눈부신 성장


임권영 조합장이 취임한 후 광석농협은 눈부신 성장을 이룩했다. 이는 광석농협의 자산규모와 당기순이익을 비교해 보면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우선, 2016년 자산규모는 887억 원이었으나, 2020년 1,213억 원으로 조합장 취임 4년 만에 광석농협의 자산규모가 38% 성장하면서 344억 원 증가했다.

또한, 2016년 653백만원의 당기순이익에서 2020년 380백만원이 증가한 1,033백만원의 당기순이익을 나타내며, 58% 성장하는 쾌거를 일구어냈다.

조합원을 위한 지도사업 집행내역은 2016년 3억 7천6백만 원, 2020년 6억 3천1백만 원으로 68% 성장하였고, 공동선별작목회 매출액은 2016년 30억 9천만 원에서 2020년 151억 원으로 488% 성장했다.

광석농협은 지난 2021년, 전국 산지유통센터를 운영하는 414개 농협 중에서 평가하는 <유통센터 종합평가 연도대상>에서 밀양의 무안농협의 대상에 이어 금상을 수상했다.

또한 임권영 조합장은 2021년 12월 충청남도 농어촌발전을 위한 공로를 인정받아 <충청남도 농어촌발전대상>을 수상했으며, 2022년 5월에는 마케팅 부문별 BEST-CEO상을 수상했다.

이렇듯 광석농협의 눈부신 성장 뒤에는 임권영 조합장의 올곧은 뚝심 경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는 평생 농협카드 하나만 쓰고 있다. 주위에서 그렇게 주식이나 가상화폐 등의 투자를 권유해도 눈길 한번 돌리지 않았다. 오로지 농협과 농촌 그리고 농민만을 생각하는 그의 삶 자체가 광석농협인 것이다. 



2021년 종합경영평가 1위의 조합


농협에서는 의외로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 농산물의 공동생산 및 유통과 판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금융기관으로서의 농협, 농업에 필요한 교육과 정보 제공 그리고 농약과 비료 등을 판매하는 경제사업소 운영, 그밖에 주유소와 물류센터(창고) 운영 등은 물론 조합원들의 편익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 등을 시행하고 있다. 이런 많은 업무를 위해 26명의 직원이 현재 각 사업체에서 열심히 땀 흘리며 일하고 있다고 임권영 조합장은 말한다.

“우리 농협 직원들 모두는 어떻게 하든지 이익을 많이 내서 조합원들에게 그 이익이 돌아가게 하려고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작년 말 기준 10억 3천3백여만 원의 당기순이익을 내서 조합원들에게 그 혜택과 이익이 돌아가도록 했지요. 이는 그 전년도에 비해 14.2% 늘어난 것이고, 저의 5년 재임기간으로 보면 40%가 증가한 것입니다. 모두 직원들이 열심히 뛰어준 덕분입니다.”

또한 그는 오일장에 조합원들이 오시도록 순회차량 12인승과 15인승 두대를 마련해 편의를 제공하였는데, 아무래도 나이 든 어르신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으며 무척 호응이 좋다고 말한다. 또한 여성 조합원들을 위한 여성대학을 운영하여 그들의 관심사인 건강, 교양, 취미, 운동 등 다양한 주제의 강연을 준비하여 실시하였으며, 농촌 청년들을 위한 영농교육, 봉사활동, 선진화 견학 등을 준비하여 곧 실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밖에도 꾸준히 조합원들을 위한 사업들이 시행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장례비(3백만 원)를 지원해주는 단체상해보험 가입, 전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농업인 안전재해보험 가입, 드론을 이용한 병충해 방제사업 등이 그 대표적인 것이라고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조합원들이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는 현장 중심의 사업들로서 이는 그가 탁상공론의 행정가 출신이 아닌 농업경영인으로서 현장의 실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또 그 목소리를 항상 경청하였기 때문이다. 이를 단적으로 잘 나타내 주는 것이 행정센터에 걸려 있는 현판인데 거기에는 “농협 존립의 목적은 농민에 있다”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곧 그의 경영철학이기도 하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3년째 도비 1억 원을 확보하여 소농 인력지원과 농기계 지원사업을 펼쳤으며, 2021년도 논산시 관내 10개소의 농협들을 대상으로 한 종합경영평가에서 99.9점이라는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로 당당 1위를 차지함으로써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광석면의 농업발전과 농업인들의 경제적 삶의 향상을 위햐 오늘도 묵묵히 현장을 누비고 있다. 



이장, 방범대장 등 팔방 고향지킴이


그의 고향은 당연히 논산시 광석면이다. 그는 1962년에 이곳에서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이곳 모든 집이 그렇듯이 그의 집안 역시 넉넉하지는 않아도 부족하지 않은 농사꾼의 집안이었다. 그의 큰아버지가 정치에 뛰어들 때까지는 그랬다.

1972년 유신헌법이 제정 공표되기 전까지는 지금과 같은 지방의회가 있었는데, 그의 큰아버지가 당시 초대 도의원에 당선되어 의정활동을 했었다고 한다. 아마 그러기 위해 그의 큰아버지가 많은 가산을 탕진했던 모양이다. 이에 집안 형편이 많이 기울었고, 그는 군을 제대하자마자 고향을 떠나 자립하기 위해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돼지농장에 취업하여 일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고향의 부모님이 건강이 악화되어 부모 수발을 해야만 해서 그는 1년 6개월 만에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다. 위로 형들과 누나들은 모두 객지 생활을 하여 부모 수발은 막내 동생인 그의 몫이 된 것이다. 그렇게 그가 고향으로 돌아와 고향을 지키며 산 지 이제 40년이다.

그는 28살 때인 89년도에 동네 이사리 이장을 맡아 일하며 고향을 위해 발로 뛰어다녔다. 아마 논산의 역사 이래 가장 젊은 이장이었을 것이다. 그는 동네의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했으며 모든 애경사를 찾아다녔다. 농촌에는 예나 지금이나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노인들이 많다. 그래서 그는 모든 집을 돌아다니며 자식 노릇까지 했다고 한다. 이러니 그의 일은 끝날 줄 모르고 늘어나기만 했다. 도중에 4년을 빼고 그는 15-16년을 이장으로서 마을 일을 돌봤다고 하니 그의 젊은 시절은 고향을 위해 봉사한 시간이었다.

또 7년 동안 방범대장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그는 생활고를 겪고 있는 어려운 어린 학생들에게 학비를 대납해주고 쌀을 대주었다고 한다. 이 모든 일을 그는 아무도 모르게 수년간 해왔다. 또한 의료진을 초청하여 마을을 돌며 순회 무료진료를 했는데, 몸이 불편해서 병원 가기가 힘들었던 어르신들이 무척 반기며 고마워했다고 한다.

이런 활동을 꾸준히 해오면서 고향 ‘광석’은 그에게 근본이며 뿌리이고, 따뜻한 어머님의 품이 되었다. 처음 고향에 왔을 때 동네 어르신들은 3년을 못 넘기고 떠나갈 것이라 했지만 그는 한 번도 고향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곳에서 고향을 위해 일하며 광석의 굽은 소나무로 고향을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조합원들의 사랑과 지지로 조합장


그는 1999년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권유로 농협의 이사직을 맡아 농협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조합원들의 민원해결을 중심으로 그는 줄곧 일을 했다. 그는 그 지역에서 농업을 직접 경영했기에 현장의 어려움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민원인의 어려움과 아픔을 곧 그가 피부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는 2015년 제1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에서 19표차로 낙선 후 2017년 8월 보궐선거에 나가 광석농협 조합장으로 당선되었다. 처음에는 선거에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주위 사람들의 적극적인 권유와 조합원들의 지지로 조합장 경선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그때를 아래와 같이 회상한다.

“부족한 제가 조합장으로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조합원들이 저를 좋게 봐주시고 사랑해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조합원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이겠지요. 계속 채찍질과 응원을 부탁드리고 또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이듬해 연이어 재선에 성공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난 5년 간 조합장의 격무를 해오면서 그는 두 번의 구안와사를 앓았다. 모두 알다시피 이 병은 격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육체적 피로가 겹쳐 면역력이 급격히 저하될 때 오는 병이다. 그가 조합장으로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얼마나 많이 뛰어다녔는지를 반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조합장으로서 하는 일이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물론 바쁘죠. 어떤 때는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정신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광석농협조합장으로서의 이 일은 저의 즐거움이고 또 우리 조합원들을 만나는 일은 저의 기쁨입니다. 아마 제가 너무 즐겁게 일을 하니까 병이 시샘을 했던 모양입니다.”

현재 광석면의 조합원은 모두 1750여 명이 되는데, 그는 이들의 대부분을 세세하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슨 농사를 짓고 무슨 어려움이 있는지 정도는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이중의 60% 정도가 56년생 이전, 그러니까 65세 이상의 노인들이라 더욱 많은 관심과 손길이 간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만 50세 이하 조합원은 200명이 안 되는 실정이다.

“이제 고령화 시대에 들어섰다고 하지 않습니까? 농촌 지역은 이미 그렇지요. 광석면도 예외는 아닙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귀농한다고는 하지만 아직 대부분은 노인들이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을 위해 더 많이 뛰어다녀야지요.”

이렇듯 그의 지역과 조합을 위한 고민과 노력은 끊이질 않고 계속되고 있다.

“농협 존립의 목적은 농민에 있다.”는 그의 한결같은 주장은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과 일맥상통한다. 농업은 천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근본이니, 당연히 농협은 그 일을 하는 농민을 위해 존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이 말은 가장 실용적이면서도 현명한 말일 것이다. 식량은 이제 국가를 살리고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가장 큰 자원이고 힘이다. 곧 식량이 자원이고 식량이 무기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 식량을 생산하는 농민들이 그에 맞는 대우받는 세상이 오는 것이 그의 바람이기도 하다.


이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