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밭열무축제 참관기] 바람직한 축제의 교과서

놀뫼신문
2022-08-03

      

지난 7월 29일부터 30일까지 이틀 동안 강경읍 채운2리에서 콩밭열무축제가 열렸다. 축제 명칭부터가 신선한 느낌이다. 콩밭열무축제라니. 10년 전쯤, 이 축제가 열린다는 현수막을 처음 보고 별의별 축제가 다 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기발한 생각을 하긴 했는데, 그 저변에는 무슨 꼼수가 있겠거니 하여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호기심이 많아 이곳저곳 찾아다니기를 좋아하지만, 저런 꼼수에 휘말리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져 먹었다. 

그런데 머지않아 그 축제에 참여하게 되었다. 내가 맑고푸른논산21추진위원회(현 논산시논산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의 회장을 맡았는데, 그 단체에서는 <도랑살리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채운2리가 이 사업에 참여한 마을이라서, 회장은 축제에 참여하여 축사를 하여야 한다고 했다. 별 탐탁지 않은 마음으로 행사에 참석하여 축사를 했다. 개회식 후에 김시환 이장을 만났는데, 내가 물어본 말이 고작 시청에서 얼마나 지원받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김시환 이장의 대답이, 

“지원을 받으면 간섭하려고 해서 우리 마음대로 추진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아예 지원을 받지 않아요.”

나의 예상을 크게 빗나가는 말이었다. 어떤 행사를 기획하면 우선 지원받을 궁리부터 하는 것이 통상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참으로 맹랑한 일이었다. 자신들의 자주성을 지키기 위해서 지원을 포기했다니. 깊이 생각하면 당연한 말이지만, 이 일로 하여 나는 콩밭열무축제의 단골이 되었다. 

축제에 참가할 때마다 나는 만족스러웠다. 우선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기획하고 추진하는 행사라는 점이 좋았다. 축제는 주민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름난 연예인들을 불러와 시끌벅적한 공연을 펼치며 주민들이 구경하라는 축제는 본말이 전도되었다고 생각한다. 주민이 구경꾼인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즐기는 것을 외지인들이 구경하는 축제가 참다운 축제라고 할 수 있다. 콩밭열무축제는 그런 관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많은 축제들의 내용이 비슷하다는 점이 여러 축제의 흠결이라고 본다. 무대에 설치된 현수막만 떼면 어떤 축제라고 구별하기 어렵다. 바꾸어 말하면 축제의 특성이 없다. 그러나 콩밭열무축제는 ‘콩밭열무’라는 테마의 실현에 충실하다. 열무를 이용한 각종 프로그램이 저마다의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의 축제도 알찬 내용으로 착실하게 진행되었다. 식전 행사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두레풍물보존회에서 신명 나는 풍물을 연주하였다. 이어진 다듬이 연주는 오래 마을에서 살아온 할머니들이 연주자로 참여하였다. 축제 개막 선언도 지역사회의 저명인사가 아니라 김시환 이장의 몫이었다. 

수필가 김선영 씨의 사회로 진행된 개회식은 간결했다. 내빈 소개에 긴 시간을 할당하지 않았으며, 축사도 서원 논산시의회 의장과 문화원장인 필자뿐이었다. 많은 축제가 많은 기관장들을 불러들이고, 그것이 마치 축제의 위상을 가늠하는 잣대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김 이장은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실속 있는 축제를 위하여 일부러 별도의 초대장을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끊기 어려운 유혹을 물리치는 일이다. 



본격적인 공연에 들어가서는 숟가락 난타교실이 흥을 돋우었다. 숟가락이라는 아주 단순한 도구를 이용해서 이런 음률을 연주해 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윤숙희 시낭송가의 진행으로 이어진 논산시낭송인회의 무대는 매우 격조 높고 진지했다. 대규모 축제에서는 채택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관객과 밀접한 무대에서만이 가능한 일이다. 김봉숙 회장을 비롯하여 최영덕 낭송가 등이 낭송에 참여하였는데, 유명 시인의 작품 위주가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쓴 시를 낭송하여 감동이 컸다. 임용수 씨 등의 시조창과 이상배 씨의 색스폰 연주, 그리고 많은 예술가의 다채로운 연주가 이어졌다. 그런데 이 모두가 논산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분들의 재능 기부였다는 점이 놀라웠다. <주민이 만들고 시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라는 슬로건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었다.

무대 밖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직접 재배한 콩밭열무와 열무김치를 판매하였다. 또 마을에서 생산한 콩을 원료로 한 두부와 도넛도 인기가 좋았고, 여러 가지 체험 행사도 진행되었다. 뒤에 들으니 열무김치는 행사 기간 끝까지 가지 못하고 일찍이 품절되었다고 한다. 

강경읍 채운2리의 콩밭열무축제는 여러 가지 점에서 가장 모범적인 축제라고 생각한다. 판을 크게 벌이는 축제가 아니라 실속 있는 축제, 주민이 주인이 되어서 자발적으로 기획하고 진행하는 축제라는 점 등에서 교과서적인 모범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시대의 흐름에 민감하게 주민에 의해 기획되고 실행하는 콩밭열무축제는 앞으로 크게 발전할 것이라 믿으며, 또 이렇게 건강한 축제가 널리 파급될 것을 기대한다.


-  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