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필요 없다는 집 『민영젓갈상회』

2023-01-22

[강경 젓갈집·맛집 순례] 민영상회~화정식당~영진상회

남자가 필요 없다는 집 『민영젓갈상회』



강경의 젓갈시장은 길거리에 다라를 이고 와서 좌판을 벌이던 시절부터 출발한다. 그 당시에 너댓 개의 점포가 생겨났다. 함열, 신진, 형제, 영진 상회 등이다. 이러던 젓갈집이 지금은 160개로 불어났다. 골목에서 이름 없이 하는 곳까지 치면 200여 개소로도 추정되는 성황이다. 

이 중 매출 최고인 곳이 어딜까? 한국전력 부근의 영진상회라고 지목한다. 500여 평 규모의 영진상회에서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나오는 민영젓갈집 김정수 사장의 주장이 그러하다. 영진은 여전히 성업 중인데 알고 보니 영진과 민영은 같은 집안이다. 이름이 남자 같은 민영젓갈 김정수 사장은, 영진상회 7남매 중 장녀다. 

현재 영진상회는 남동생(김태경)이 운영하고 있다. 영진상회라고 해서 늘 잘 나갔던 건 아니다. 어려웠던 시절, 함께 고생한 7남매는 각자의 꿈을 갖고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장녀인 정수 씨는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동생과 함께 영진상회를 키웠다. 그러다가 2006년 <민영젓갈상회>라는 간판을 내걸고 광천상회 있던 자리에 독립을 하였다. 2016년에는 옆 건물도 구매하여서 화정식당을 개업하고 보니 마당까지 합하여 400여 평이 넘는다.


‘민영젓갈’ 김장하는 날 ‘화정식당’에서 찢어먹는 젓갈김치(가운데가 김정수 사장) 


예약제로 전환한 화정식당 


여자 혼자 힘으로 젓갈집 하나 건수하기 쉽잖은 터에 감행한 사세확장이었다. 80명 수용 가능한 2층 홀이 구비된 식당은 개업하자마자 문전성시였다. 젓갈집과 식당 겸하다가는 두 마리 토끼 다 놓칠 거 같아서, 결국 식당은 예약제로 전환했다. 현재는 최소 10명 이상이어야 주문을 받는 배짱장사다. 손님도 배짱이다. “꼭 주인이 직접 준비하고 차려주어야만 한다”는 조건부 계약이다. 강경을 찾아온 성지순례객들에게는 젓갈백반이 인기지만, 논산강경 안팎의 손님들은 주문형, 즉 백숙, 옻닭 등 어떤 것이든 자유롭다. 

향토음식, 발효음식이 발군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대전의 모 대학 교수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학생들과 함께 방문할 건데, 비법을 전수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돈 받고 비법 전수해주는 일은 주변의 충고, 본인의 판단이 작동하여서 결국 현실화는 되지 못했다. 학생들이 젓갈집과 식당 둘러보면서 어떤 정보를 얻어갔는지 알 수 없으나, 홍어를 버무리는 날 찾아간 기자에게는 모든 것이 공개되었다. “비법요? 양질의 재료 사서 아끼지 말고 팍팍 쓰면 돼요!” 우문현답이 따로 없다. 


직접 발효한 매실 엑기스 쫙 뿌린 다음, 한번 더 버무리기


지난해 봄부터 비상한 민영표 홍어회무침


민영젓갈은 효자 다섯을 키운다. 국산새우젓, 화정식당, 홍어회 무침, 김장김치, 그리고 사람이다. 홍어회 무침은 원래 민영의 사업아이템이 아니었다. 

논산이나 대전 등지의 산악회에서 개인적으로 부탁해오면, 날 잡아서 대량으로 해주곤 했다. 코로나가 덮치면서 산악회 시계도 멈추었다. 산행시 먹던 민영표 홍어회 무침이 그리운 산악회원들이 개인적으로 연락하여 소량을 원하였다. 코로나로 힘들기는 산악회나 젓갈집이나 마찬가지. 그래서 올 봄부터 본격 시작한 게 홍어회 무침이다. 

평상시에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명절에는 매일 홍어회를 무친다. 한번 판을 벌이면 1시간 정도의 작업 후에 80여 kg의 무침이 완성되고, 산더미 홍어회는 1kg, 2kg통으로 들어간다. 그 시간에 맞추어 사러 오는 사람도 있고,  나머지는 대부분 꾸러미로 하여 배달 나가는 시스템이다.


 “제 값 주고 산 소금, 깨소금, 내가 직접 만든 매실엑기스 팍팍 뿌려요. 매장 한복판에서 하니까 오가는 사람들이 다 보고요, ‘저렇게 팔다가는 밑지겠다’며 현금결재해 주는 분도 좀 돼요.” 


1kg=2.5만원, 2kg=5만원이다. 동네아줌마가 들어와 쬐끔만 담아달라면서 1만원을 꺼낸다. 도로 돌려주는 광경이 의아하여서 물어보니 돌아오는 답. “소량 팔고 돈 받으면 소문이 나서 그렇게 해달라는 사람들이 생겨나거든요.” 


이웃에게서 소개받아서 왔다는 첫 손님과, 카드 대신 현금 내는 단골 손님...

단골손님이 명절선물을 사다주는 진풍경 강경의 ‘민영젓갈’


기자가 머무는 한 시간 내내 젓갈손님은 없고 홍어회손님뿐이다. 소문 듣고 왔다, 수영장에서 소개받고 왔다는 대답만 들었는데, 어느 말쑥한 중년부인의 답은 색다르다. “오늘 아침 방송 못 봤어요? 오늘은 민영에서 홍어회 무치는 날이라고?^” 계산이 끝난 뒤 물건을 차 트렁크에 두더니만 거기서 사과박스를 꺼내들고서 다시 문을 연다.  “아니, 명절선물은 주인이 고객에게 드려야 하는 거 아녜요?” 기자의 의아함에 주인은 답은 담담하다. “대전에서 오시는 단골손님예요.”


김장김치 담그는 날, 강경이 떠들썩


말이 그렇지, 단골 확보가 쉬우랴.  ‘사람마음’을 사로잡는 게  보통일인가? 지난 해 12월 3일, “강경에서 김장 크게 하는 진풍경이 있으니 한번 가보라”는 전화를 받았다. 주민자치회같은 데서 하는 김장봉사날인가 싶었더니만, 민주도, 민영젓갈집에서 김장하는 날이었다. 일하는 사람만도 20~30명은 좋이 돼 보였다. 남자 여자 각자 자리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그날 돼지고기는 40근, 쌀은 1말 푸짐한 점심상이 차려졌다. 일당 일꾼들인 줄 알았더니만, 매년 민영젓갈 김장날이면 모이는 지인들이란다. 

그날 맛깔스런 젓갈 김치가 큰 깡통 200여 개로 가득 찼다. 지인들은 필요에 따라 1통에서 3통씩 각자 차에 실었고, 나머지는 예약제로 배달되거나 매장에서 판매된단다. 김장하는 마당에는 <화학조미료를 넣지 않고 효소로 직접 담근 김장김치 예약주문 판매> 현수막이 자랑스레 펄럭인다. 

김치사업도 처음에는 장사 요량으로 시작한 게 아니었다. 집에서 김장 담그는 김에 넉넉하게 하여 같은 동네 홀로 사는 남자, 여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랬더니 맛있다면서 돈 주고 팔으라는 요청이 이어지면서, 결국 김장김치판매사업으로 확대된 경우이다. 


민영젓갈 김장 일꾼들은 일당이 아닌, 자원하는 지인들이다. 자연발생적인 동네잔치 한마당이다. 


새우젓 작업에 남자 필요 없어요


문어발식 확장에서 돌아와, 이제는 젓갈집 본업으로 눈돌려보자. 민영젓갈은 두 개의 빨간 간판이다. <민영젓갈상회> <민영새우젓갈상회> 그 밑에는 “새우젓, 액젓 100% 국내산만 취급합니다” 현수막이 붙어 있다. 


“우리는 남자가 필요 없어요.”


무슨 말인가 싶어서 되물어보니, 국내산새우젓은 소위 작업할 필요 없이 그냥 팔면 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수입산은 몇 가지 작업을 거쳐야 매대로 올라오게 된다는, 선수끼리는 다 아는 내부 기밀이다. 언젠가 서울 모처에서 홍어회 무침 150kg을 주문할 때 고춧가루는 수입으로 해서 작업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었단다. 그 조건에 맞추어 납품을 하기는 했지만 냄새 맡아보니 날래가 나고.... 말이 아니다 싶어서 수입장사는 그걸로 끝. 

천일염 소금도 그러하다. 민영에서 소금을 사면 조금 비싸다. 염가 마트나 업체에서 푸대갈이를 하여 싸게 팔든말든, 민영은 천일염 사다가 소정 이윤 붙여서 파니까 남정네들 부를 일이 없다고 한다. 

현장취재도 내심 업무에 방해가 될까봐 신경 쓰던 기자가 일어서자, 김사장은 갑자기 일어나더니 헐크로 변신한다. ‘공동식사하는 데 갖고가 함께 먹으라’며, 저장고에서 묵직한 김치 한 깡통을 번쩍 들고 나온다. 


“새우젓 국내산 100%” 현수막. 주인장 또한 순수 국내산인 곳.


사람 마음 사는 일, 통큰장사꾼


그 사이 함께 일하는 직원이 “우리 사장님은 통 큰 여자”라고 귀띔한다. 봄이면 아침 일찍 일어나 밭을 둘러보고 냉이를 캐다가 곁들과 나눈다. 퍼주는 게 몸에 익다 보니 인정머리 인맥이 절로 형성되었다. 당장 손해 보는 거 같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더 큰 장사로 이어진다는 비결도, 진즉 터득한 거 같다. 요즘 영진상회는 5:30쯤 문 닫지만 민영은 8:30까지 하다 보니 극성이라면 극성이다. 

“다 이룬 거 같아요!”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또 그 말이 정녕 사실일까?  쉬는 날을 물어보니, 365일 중 문 닫는 날이 없단다. 낼모레가 환갑인데 아직 미혼이다. “30대에 선을 두 번 봤어요. 가만 보니 두 남자 다 내가 평생 먹여 살려야 할 거 같더라구요.” 

남자 먹여 살리는 일은 자신이 없었지만, 이웃들 건사하는 데는 용맹무쌍한 전사 같다. 그 바쁜 와중에서 조카딸의 전화 받는 목소리에는 사랑이 뚝뚝 묻어난다. 평소 이웃과 손님들을 흔쾌히 챙기니까 무슨 일 생기면 한 소대가 집합한다. “미혼모들에게 마음이 가요. 근데 내 주변에는 아직 그런 봉사 지원자가 없네요.” 

대개 여자의 일생은 결혼, 출산과 육아, 애들 시집 장가 보내는 거고 그 과정에서 나름 행복을 추구하는 편이다. “저는요 남들 먹여주는 게 너무 좋아요. 흥분이 느껴져요.” 60대에도 흥분하는 여자, 대체 누가 말리랴!^


- 이진영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