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경포구 ‘박첨지’, 배타고 호주 시드니로

2026-07-13

옥녀봉예술촌, 시드니대교구 한인천주교회 초청공연

한국어공교육 30주년, 호주어린이에게 흥·신명 선사

해학속 성찰로 이민생활 위로,  <갱경 아리랑> 선보일터


53c2c887e2c25.jpg


논산 사람이 직접 땀 흘려 일궈낸 향토 문화예술이 바다 건너 호주 교민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즐거움을 선사했다. 강경 ‘옥녀봉예술촌’은 지난 6월 호주 ‘시드니 대교구 한인 천주교회’에서 전통 연희 인형극을 펼쳤다. 

이번 공연은 6천여 명의 신자가 있는 성당으로서 호주 한인 사회화합의 장인 시드니 대교구 한인 천주교회 사목회 초청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서 논산만의 고유한 스토리와 흥을 펼친 것이다. 


한국어공교육 30주년, 어린이들과 함께해 


호주 공연 첫날인 6월 13일, 영어권 문화에서 자라나는 한인 후세들을 위해 마련된 ‘시드니 한인 천주교회 한글학교’ 어린이 대상 공연이 펼쳐졌다.  

올해는 시드니 한인성당 설립 50주년인 동시에, 호주 NSW주 교육부가 세계 최초로 한국어를 대학입시(HSC) 과목으로 채택한 지 30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이다. 30년 전 변방의 언어였던 한국어는 이민 1세대 부모들과 교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힘입어 이제 호주 전역 68개 정규 학교에서 1만여 명에 육박하는 학생들이 배우는 ‘기회의 언어’로 급성장했다.

이처럼 호주가 전 세계 한국어 공교육 열기를 견인하고 있는 시점에서, 유치부부터 9학년까지의 한인 미래 세대 자녀들 앞에서 우리 말과 글, 그리고 전통문화를 인형극의 형태로 생생하게 선보였다. “호주 다문화 사회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과 문화적 정체성의 뿌리를 심어준 거 같아서 뿌듯했습니다.” 대본과 연출을 맡은 옥녀봉예술촌 조수연 대표의 후일담이다. 


f17fcbfa31427.png

34e389383553e.jpg

8ff1ce759cef3.png


교민 어깨 들썩인 ‘로컬’의 신명&흥 


이튿날인 14일(일) 성인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공연까지 마쳤다. 이민 생활의 고단함을 안고 살아가는 교민들은 공연 내내 이어지는 우리 고유 장단과 전통 연희에 어깨춤을 추며 호응했다. 조수연 대표는 “논산 주민들이 정성껏 만든 논산만의 스토리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호주 교민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할 수 있어 뜻깊었다”고 전했다. “이번 무대는 거세게 불고 있는 글로벌 K-컬처의 뿌리가 바로 우리의 깊은 ‘신명과 흥’에 있음을 확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는 자평도 내놓았다. 

무대에 오른 <천주쟁이 박첨지>는 2년 전 무대에 올렸던 <갱경 꼭두각시놀음>을 바탕으로, 천주교적 서사와 해학을 담아 새롭게 각색한 작품이다. 극은 조선 3대 시장이었던 강경(갱경)을 배경으로, 한량 박첨지가 강경에서 평등과 사랑을 전파하던 김대건 신부의 가르침을 접한 뒤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조강지처와 화해하는 결말을 담고 있다. 




[조수연 대표와의 차한잔 말한스푼]

“변방에서 불어가는  K-컬처 3대시장 강경, 한류 진원지로”


6eac7fa60ead9.jpg


Q 먼저, 못 본 분들을 위하여 스토리를 좀더 설명해 준다면?

= 한양 땅 천하한량으로 소문난 박첨지가 팔도를 유람하다 조선 3대 시장인 강경에 도착하며 시작된다. 마침 그곳에는 상하이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조선으로 돌아온 김대건 신부가 사목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김대건 신부는 기생에게 ‘마리아’,  백정에게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지어주며 강경 바닥에 평등과 사랑의 거센 천주교 바람을 일으킨다.

호기심이 동한 박첨지는 이 기이한 신부를 만나려 백방으로 쫓아다니지만 끝내 얼굴을 마주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신부의 가르침으로 변화된 갱경 백성들의 모습을 보며, 아내를 등한시하고 뭇 여성들과 놀아나던 자신의 한량 같은 삶을 깊이 반성하게 된다. 결국 조강지처를 다시 품에 받아들이며 극은 훈훈한 화해의 결말을 맺는다.


Q 기존 전통연희극, 성극과의 차별화를 기했다면, 어느 지점에서인가? 

= <천주쟁이 박첨지>는 2년 전 창작되어 호응을 얻었던 <갱경 꼭두각시놀음>을 천주교적 서사와 해학을 담아 각색한 작품이다.  성극을 신명 나는 전통 가락의 향연으로 새롭게 꾸며 보았다. 기존의 성극들이 흔히 보여주던 무겁고 느리며, 엄숙하고 어두운 분위기에서 완전히 탈피했다. 우리 전통의 가락과 소리, 재치 있는 언어유희가 1시간의 공연 내내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유쾌한 작품이다. 


2b78d8fd3a951.jpg

9658bf09ceefa.jpg

2024년 9월 강경장터 공연


Q  ‘옥녀봉예술촌’은 주민참여형 콘텐츠 창작 단체다. 이번 호주에 갈 때에는 누구누가 갔는지? 그리고  평상시 주민으로서 참여하는 멤버들도 소개해 달라. 

=그야말로 평범한, 지역 주민들이다. 강연(80대,전직 교장), 이선호(80대, 전직 국악 강사),  백종희(70대말, 주부), 유병숙(60대중반, 문화해설사). 그냥 평범한 단원들이고 모두가 5년 전 함께 시작한 멤버들이다.


Q  옥녀봉예술촌 활동 중에서 굵직한 건 무어무엇인가? 

= 옥녀봉예술촌은 창립 후 지난 5년 동안 지역 정체성이라는 화두 하나에 천착해왔다. 판소리와 연주행사를 핵심으로 한 중고제 문화를 다뤘고, 200년 전 강경 서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전통연희극 <갱경 꼭두각시놀음>을 무대에 올리며 강경의 근대문화와 서민사를 창작으로 옮겼다. 특히 레전드급 성우들을 초청한 낭독 기획 <별들의 낭독>은 서울, 부산, 대전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공연이었다고 자부한다. 

이런 흐름이 어떤 식으로든 계속 이어졌으면 하지만, 1원의 외부 지원도 없이 오롯 개인 역량만으로 끌고 온 지난 시간엔 피로감도 분명 있다. 그럼에도 계속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강경이라는 땅이 품고 있는 이야기는 지금 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에는 아예 사라질 것들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국내 주요 성당을 순회하며 <천주쟁이 박첨지>를 공연하고 있다. 박첨지 인형극에 천주교 신앙을 접목한 이 작품이 이번에는 국내를 넘어 해외 교민 대상 초청 공연으로까지 확장됐다. 


Q  변화는 변방에서 불어온다고도 한다. 그런 시각에서 이번 공연의 의미를 부여한다면?

= 시드니 한인 성당의 초청을 받아 다녀왔는데, 참여한 주민들에게는 단순한 취미 활동을 넘어선 커다란 성취이자 의미가 됐다고 본다. 논산의 숨결과 신명으로 시드니를 가득 채운 이번 무대는 한·호 문화 교류, 그리고 재외동포 교육 역사에 따뜻하고 의미 있는 이정표로 남을 것이다. 요즘 K-컬처는 전방위로 생산되고 확대되고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로컬문화보다 중앙문화가 우위를 점하는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논산발 전통 가락과 신명이 시드니 한인 사회에 던져준 것은, 또 다른 차원의 K-컬처 신호탄이라고 생각한다.


19e31af2ba096.jpg

3회 옥녀봉문화제 “소리하는 옥녀봉(중고제, 2023년 12월)”

1b8cadde0bd12.jpg

2024년 8월 강경야행 갱경꼭두각시놀음 공연

b997f1d8af7a2.jpg

옥녀봉예술촌 야외극장에 펼쳐진 “별들의 낭독(2025년 6월)”


Q  귀국하자마자 곧바로 준비에 들어간 건 무엇인가?

= 지금 준비하는 것은 8월 말 강경야행에서 선보일 변사 인형극 <갱경 아리랑>이다. 200년 전 서민들의 이야기를 다룬 <갱경 꼭두각시놀음>이 지난 5년간 쌓아온 원형이었다면, <갱경 아리랑>은 그 결을 이어 올해 새로 지은 신작이다. 100년 전 강경장터를 배경으로, 눈먼 할머니를 모시고 소금 좌판을 지키던 처녀 고운이와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소꿉친구 강토의 이야기를 담았다. 

시대극이자 로맨스지만 그 뼈대는 결국 강경 사람들의 연대(連帶)다. 인형극 무대에 변사가 직접 등장해 관객과 말을 섞고 인형과도 티격태격하며, 아코디언 반주로 옛 노래 메들리가 이어지는 구성은 요즘 흔치않은 공연 형식일 것이다. 특히 이번엔 변사 역할로 우리나라 만담의 대가 장소팔 선생의 아들 장광팔(장광혁) 씨와, 옛 악극단에서 활동하던 원로 아코디언 연주자를 초청했다. 사라져가는 형식을 그 명맥을 실제로 이어온 이들의 손으로 다시 살려내는 셈이니, 인상적인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Q  옥녀봉에서는 어떤 문화를 어떻게 생산, 확산해갈 예정인지 꿈도 펼쳐 보여주면 좋겠다. 

옥녀봉예술촌이 앞으로 하고 싶은 것도 이 연장선에 있다. 100년 전 강경포구가 실제로 조선 3대시장 중 하나였을 만큼 사람과 이야기가 오가던 땅이라는 역사, 그리고 그 이야기를 실어 나르던 변사극이나 다원적 형식의 낭독. 이 두 가지를 계속 엮어가는 것이 옥녀봉예술촌이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콘텐츠가 강경 근대거리나 연무 썬샤인랜드에서 매주말 저녁 정기공연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우리 논산은 좋은 공간은 있지만, 그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는 사실상 찾아내기 어렵다. 그 꿈을 실제로 이루려면 결국 공간을 채울 상설 인력과 최소한의 제작 예산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민관 머리를 맞대고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대담] 이진영 편집위원

[사진제공] 옥녀봉예술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