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초대석] ‘산아래’ 이은영 주인장 “시래기밥 한 그릇에 담긴 시간과 정성… 가장 한국적인 밥상을 짓습니다”

2026-07-11






논산 관촉사 인근 관촉로31번길 22-6. 산자락 아래 포근히 자리한 한정식집 ‘산아래’는 번듯한 외식 공간이라기보다 정겨운 처가집 밥상을 떠올리게 하는 식당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화려한 장식보다 먼저 따뜻한 밥 냄새와 사람 사는 온기가 손님을 맞는다. 이 집의 대표 메뉴인 ‘시래기밥정식’은 소탈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오랜 시간과 손맛, 그리고 건강한 재료가 한 상에 고스란히 담긴 ‘대한민국 대표 K-밥상’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이번 호 [표지초대석]에서는 여름철 건강 식단으로도 손색없는 '산아래의 시래기밥정식'을 중심으로, 이 집의 주인장 이은영 씨를 만나 음식과 삶, 그리고 한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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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안 했을 뿐, 못한 건 아니었어요”


이은영 주인장은 1962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났다. 스물두 살에 남편을 만나 이듬해 결혼했고,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다. 지금은 큰딸이 식당 일을 도우며 어머니 곁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이 주인장이 처음부터 식당 일을 해온 것은 아니다. 결혼 초기 남편은 인테리어 일을 했고, 그녀는 커튼을 만들었다. 그러다 IMF 외환위기 이후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논산극장 인근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게 되면서 비로소 ‘음식’이 삶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결혼 전에는 제가 직접 음식을 만들어 본 적이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레스토랑을 하고, 또 ‘산아래’를 하면서 음식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죠. 손님들이 ‘맛있다’고 할 때는 그 말이 신기할 정도였어요. 생각해 보면 제가 음식을 못했던 게 아니라, 안 했던 거였던 셈이죠.”

이 말에는 오랜 세월 자신만의 밥상을 완성해 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담담한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산아래’를 만든 건 남편, 완성한 건 아내의 손맛


‘산아래’라는 상호는 남편이 지었다. 하지만 지금의 '산아래'를 만든 건 이은영 주인장의 손맛과 연구였다. 처음부터 지금의 시래기밥정식을 선보인 것은 아니었다. 초창기에는 장어와 아귀찜이 주메뉴였다. 이후 손님들의 반응과 자신의 음식 철학을 하나씩 더해가며 지금의 상차림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 변화의 중심에 시래기가 있었다. 평소 시래기를 좋아했던 그녀는, 건강에도 좋은 이 재료로 자신만의 음식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했다.

“시래기를 워낙 좋아했어요. 몸에도 좋고, 맛도 좋고요. 그래서 ‘이걸로 뭘 만들어볼까’ 고민하다가 지금의 메뉴가 나왔죠. 시래기정식을 시작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어요.”

그 결과 탄생한 산아래의 시래기밥정식은 이제 식당을 대표하는 시그니처 메뉴가 됐다. 하루 평균 100그릇 이상 나갈 정도로 손님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가장 바쁜 순간, 가장 큰 보람이 되다


수많은 손님을 맞아온 식당 운영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자, 이 주인장은 지난 6월 20일 저녁을 떠올렸다. 당시 공연 관람객 등 120여 명의 손님이 한꺼번에 몰리며 식당은 순식간에 전쟁터가 됐다.

“저녁 7시에 80명 예약이라고 해서 준비를 했는데, 8시쯤 되니 120명이 한꺼번에 들어오셨어요. 정말 난감했죠. 한쪽에서는 모자란 음식을 부지런히 만들고, 다른 한쪽에서는 서울로 급히 올라가셔야 하는 분들부터 먼저 차분히 음식을 내드렸어요. 정신없는 상황이었지만 큰 무리 없이 다들 식사를 마치셨고, 맛있게 먹었다고 말씀해주실 때 정말 뿌듯했어요.”

식당 운영은 늘 예측 가능한 일만 벌어지는 곳이 아니다. 준비한 재료와 시간, 사람의 손이 한순간에 시험대에 오를 때도 있다. 하지만 그 혼란의 시간을 버티게 하는 힘은 결국 ‘맛있게 잘 먹었다’는 손님의 한마디다.


시래기밥 한 그릇 뒤에 숨어 있는 계절의 노동


산아래의 시래기밥정식은 한 끼 식사이지만, 그 한 그릇이 식탁에 오르기까지는 계절 단위의 노동이 필요하다. 특히 가을은 이 주인장에게 가장 바쁜 계절이다. 1년 동안 사용할 시래기를 직접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을이 되면 시래기를 여러 차례 삶고 다듬어서 소금 단지에 절여 둬야 해요. 1년 쓸 양을 그때 다 만들어야 하니까 가장 큰 작업이죠. 정말 힘든 일이에요. 제가 손수 절이고 저장해 두는 거예요.”

한식의 맛은 대개 조리의 순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무엇을 언제 수확하고, 어떻게 말리고, 어떻게 저장해 둘 것인가가 결국 음식의 깊이를 좌우한다. 산아래의 시래기밥 역시 그렇다. 이 집의 밥상에는 그날의 손맛만이 아니라, 계절을 넘겨 쌓아온 시간이 함께 오른다.


남편은 든든한 조력자, 주방은 주인장의 무대


식당 운영에서 남편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시래기를 손질할 때 함께하고, 설거지를 하고, 장어를 굽는 일도 맡는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식당의 뒤를 단단히 받쳐주는 버팀목이다.

“남편은 시래기 작업도 같이하고, 설거지도 하고, 장어도 굽고 그래요. 남자가 할 일이 꽤 많죠. 묵묵히 뒤를 돌봐주니까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그러나 음식만큼은 대부분 이 주인장의 몫이다. 시래기밥은 물론이고 단호박설기, 표고버섯탕수, 수육, 잡채, 된장찌개까지 산아래 상차림을 이루는 대부분의 메뉴는 직접 개발하고 다듬어낸 결과물이다. 그녀에게 산아래의 주방은 단순한 조리 공간이 아니라, 삶의 경험과 손맛이 쌓여 완성된 자신의 무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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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래기밥정식은 시간을 응축한 한식의 정수입니다”


이은영 주인장은 시래기밥정식을 두고 “시간을 응축한 한식의 정수”라고 표현한다. 얼핏 보면 소박하고 단순한 음식 같지만, 그 안에는 한국 음식의 미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래기밥정식은 화려한 기교를 앞세우는 음식이 아니다. 재료는 오히려 단출한 편이다. 그만큼 맛을 숨길 장치도, 요란하게 포장할 요소도 없다. 좋은 재료와 충분한 시간, 꾸준한 손길이 없으면 결코 완성될 수 없는 음식이다. 그래서 더 정직하다.

“저희 집 음식은 화려한 음식이 아닙니다. 하지만 한식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재료와 충분한 시간, 그리고 꾸준한 정성이 없으면 완성될 수 없거든요. 그래서 가장 정직한 한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또 시래기밥정식이 특별한 날에만 먹는 음식이 아니라는 점도 중요하게 짚었다.

“시래기밥정식은 몸이 허할 때, 가족과 함께 밥 먹고 싶을 때, 혼자 조용히 식사하고 싶을 때 자연스럽게 찾게 되는 음식이에요. 특별한 날의 음식이라기보다 생활 속 음식이죠.”


세계화보다 먼저, 밥상의 본질을 지키는 일


K-푸드가 세계적인 관심을 받으면서 한식의 세계화, 미식의 대중화, 한식의 재발견 같은 말들이 익숙해졌다. 저마다 출발점은 다르지만 결국 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것은 한식이 지닌 ‘한국적 가치’다. 절제와 인고, 기다림과 발효, 계절과 손맛으로 이어지는 삶의 방식이 음식 안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산아래의 시래기밥정식은 그런 점에서 눈길을 끈다. 특별한 장식도, 과한 설명도 없이 한 상 가득 한국 밥상의 본질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시래기를 삶고, 말리고, 저장하고, 다시 밥상으로 내기까지의 모든 과정에는 절제와 시간, 그리고 사람의 정성이 스며 있다. 단순해 보여서 더 어렵고, 소박해 보여서 더 깊다.

세계화와 대중화, 그리고 재발견이라는 거창한 말보다 먼저, 산아래는 한식이 왜 오래 사랑받는지 가장 기본적인 방식으로 증명하고 있다. 결국 한식의 미래는 가장 화려한 음식이 아니라, 가장 한국적인 일상의 밥상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관촉사 인근 작은 식당 ‘산아래’. 가까이 있었기에 오히려 미처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던 그곳의 시래기밥정식은 어쩌면 절제와 시간의 응축이라는 한식의 본질을 가장 잘 담아낸 한 상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밥상 한가운데에는 오늘도 묵묵히 불 앞에 서 있는 이은영 주인장의 손맛과 삶의 시간이 놓여 있다.



- 전영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