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석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 개소식] “우리 애는 동네에서 다 키워줘요”

2025-03-15

4년 전 주민자치회가 마을학교에 올인 선언

주민자치회가 직영하는 방카로는 전국 최초


3월 11일 밤 7시, 평소 같으면 한적했을 광석면사무소 대로변이 북적였다. 논산시 광석면주민자치회가 직영하는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 개소식이 열려서다. 이런 특수 행사에는 대개 관련인사 몇과 학생, 학부모 들이 모이지만, 광석은 달랐다. 

시내에서는 시청, 교육청, 도청 등 관(官) 인사는 물론 논산시 청소년청년재단과 기업인협의회 등 민간단체도 참석했다. 광석면 내의 기관 역시 총출동하였다. 개소식에 앞서 면사무소 2층회의실에서는 “광석면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 지역연계 협약식”을 가졌다. 12개의 단체와 3개 학교 해서 총 15곳과 MOU를 체결한 것이다. 

이들이 한날, 한 자리에 모였으니 개소식장은 규모가 커질밖에. 백성현 논산시장도 참석하면서 판이 커진 모양새다. 백시장은 “혼나기만 하던 아이의 진가를 알아본 스님 덕에 그 아이가 나중에 정승이 된 이야기”로 인정과 존중, 칭찬의 교육론을 펼쳤다. 사전공연은 광석마을학교 고학년생들의 오카리나 연주로 시작되었다. “홀로아리랑” 합주에 저학년 친구들은 “모두 다 꽃이야” 합창으로 화답하였다, 자신들이 봄꽃이요 머잖은 미래의 주인공인 걸 잘 의식 못한 채.



이 사실을 일깨워준 것은 최인숙 방과후아카데미 팀장이었다. 면장, 도의원, 시의원, 광석면이장단장 등의 연이은 축사에 고마움을 표하면서 “그래도 오늘 행사의 주인공은 우리 학생들”임을 환기시켜 준 것이다. 미취학~초등 4학년으로 구성된 마을학교는 전교생이 40명이다. 초등 5학년~중3을 입학생으로 받은 광석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 학생수는 34명. 학생만 해도 80명 규모이다. 


시골마을의 꽃 80명의 아이들


“면단위 주민자치회에서 겁도 없이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를 해 보겠다고 도전한 배경에는 오늘 여기 오신 여러분들의 듣든한 빽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김권중 주민자치회장의 인사말 중에 “겁도 없이”가 귀에 꽂힌다. 

그 동안의 경과 보고를 보면 광석면 주민자치회는 거침 없는 질풍노도다. 풀뿌리 주민자치회가 설립된 때는 5년 전인 2020 정초이다. 주민자치회는 “동네에 학원도 없는데, 그 교육 공백을 메워보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해서 2021년 6월, 주민참여예산을 청소년대상 교육프로그램 운영에 대폭 할애하였다. 다음 해 3월에는 마을학교를 정식 개교하였다. 한 해가 지난 2023년 7월에는 교육청과 손을 잡았다. 지역연계 늘봄학교로 갈아탄 것이다.

작년에는 학부모의 양육 부담을 줄이기 위해 논산시와 함께 여성가족부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 공모사업을 신청하였다. 이처럼 부단한 노력의 결과 올 초에는 “전국 주민자치회 중 최초로 여성가족부 공모사업에 선정되었다”는 낭보와 함께 학생모집 플래카드를 내걸게 된 것이다.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이하 방카)는 전국 355개소로서 대부분 지자체가 맡아서 하는데, 광석면은 주민자치회가 운영한다. 관 주도가 아니라 민 주도인 만큼 자율성도 큰 편이다.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는 아직 낯선 개념이다. 최인숙 팀장이 마이크를 잡고 운영, 안전, 프로그램 연간운영일정 등을 소개하였다.


 

보호자간담회 시작 전


방과후아카데미는 ‘저녁이 있는’ 자유학교


이 설명은 개소식 마친 후 속개한 보호자간담회 때 좀더 상세히 이어졌다. 초등반, 중등반 담임이 소개되면서 출석, 공결관리 등에 대한 안내가 나갔다. 공교육 기관과 거의 같은 시스템이다. 일반학교에서 낮 시간을 책임진다면, 방과후아카데미는 저녁시간 전후를 책임 교육한다. 차이가 있다면 방카는 학생들의 자율성과 창의성 신장을 위해 좀더 허용적인 분위기다.  자치활동, 농악, 창의융합프로그램, 진로프로그램 등은 공통이고 초등 시간표에는 배드민턴이나 디지털 체험활동,  중등은 기자단 수업 등이 들어 있다. 

보호자간담회까지 마치면서 광석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 개소식은 막을 내렸다. 아이들이 1층에서 치킨을 먹고 있는 동안 개소식이 열렸던 3층은 여전히 분주했다. 낮에는 15곳과의 협약식, 밤에는 개소식 공식행사로 분주한 하루를 보낸 김권중 회장은 뒷정리에 한창이었다.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는 여성가족부지원사업으로 안정적이기는 하나 최소한의 인력과 프로그램운영비 지원” 정도라고 들려주는 김권중 회장의 말은, 지역사회 동참 필요성의 역설로 들린다. 

4년 전 척박한 교육불모지에 마을학교를 일궈나가기 시작한 김구 전 주민자치회장은 느즈막 나타났고, 행사 마무리에 한손 보탰다. 마을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많은 걸 안겨 주기 위해 백방 뛰어다니던 행보의 연장선상이다. 광석면에는 ‘릴레이 기부’가 있다. 누구네 집에서 수박 열 통 내놓으면 다음 바통은 치킨집에서 받아 10세트 쏘는 식의 릴레이다. 이게 커지면 서울 야구장에도 가지만, 동네 작은도서관(작도)에서 매주 즐기던 영화도 아이들 꿈과 지역 문화 수준 올리는 데 한몫 단단히 해왔다.

 

광석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에서는 저녁을 함께 먹고 학업을 계속한다


작도에서 영화 보며 공부하며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 도서관이다” 빌게이츠의 명언 핵심어는 #도서관이다. 하나 더 꼽으라면 ‘마을’이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 교육공동체마다 내거는 캐치프레이즈다. 동네 전체가 교육에 힘을 모아야 한다는 지상명령에 마을마다 노력을 한다고는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특히 학교가 파하고 나서 교육생태계는 어떠한가? 농어촌 학부모 대부분은 생업에 바쁘므로 방과 후 아이들은 학교에 남아 돌봄을 받기도 하고, 학원에 가기도 한다. 이런 일상 속에서 마을공동체의 역할은 미미해 보였다. 

논산시 광석면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학원에 나가려면 시내에 가야 한다. 학원비도 적잖은 부담이다. 이래서 시작된 게 광석마을학교다. 2020년 당시 책정되었던 주민참여예산은 소액이었다. 그 돈을 대부분 마을은 꽃가꾸기나 도로변에 야간태양등 설치 등 외부시설에 썼다. 광석은 표 잘 안 나는 교육에 눈을 돌렸다. 일단은 학교공부 우선였지만, 특별활동 파이도 넓혀갔다. 

주민자치회 전국대회에 나가 겨루기도 하면서 시야를 넓히다 보니 22년도에는 충청남도 민관협치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23년도부터는 교육지원청 늘봄예산이 투입되었고 25년부터는 여성가족부 전국구로 편입하게 된 것이다. 


지역사회 15개 모임기관과 MOU를 체결하고 나서 


아낌없이 주는 딸기 귀농귀촌협의회.....


외부 확장보다 중요한 것은 내실화다. 광석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는 관내 기관단체모임 총 15개소와 MOU가 체결돼 있다. 개소식에서 김명숙 초등담임은 “지금 처음 함께한 5학년 친구들이 지금 중학교 2학년으로 멋지게 성장했습니다.”라고 술회하면서 마을학교 사업성과를 보여주었다. 영상 속에는 팔도 곳곳을 누비는 광석아이들의 활보가 생생하다. 이런 활동이 가능하도록 해준 지역사회 단체 소개 시간은 “광석면어르신 분회(회장·정종길)에서 노인회관 절반을 뚝 잘라서 손주들이 수업하게끔 작은 도서관을 마련해 주셨습니다”로 시작되는데, 길다(괄호 안은 대표 이름)

  • 광석면이장단(최진상)= 간식으로 쌀 지원
  • 광석농협(장준호)= 마을축제 후원
  • 광석빛돌번영회(최인목)= 매년 야구장 체험 준비
  • 광석면새마을남여협의회(김원태·배용순)= 축제 등 청소년 행사 지원
  • 광석면남여자율방범대(전동수·박순규)= 야간차량 운행
  • 광석면남여전담의용소방대(심상용·김미수)=안전·심폐소생술교육 지원
  • 광석면100세건강위원회(최재중)= 문화체험행사 지원
  • 광석면귀농귀촌협의회(김정현) = 딸기간식 후원

이밖에도 광석면농업경영인회, 생활개선회, 당구클럽 등은 협약 없이도 도움을 주기로 했다. 쿠우쿠우 같은 광석출신 출향인의 한턱에서부터 치킨집 등의 릴레이기부 크고작은 정성이 모여모여 온 마을 아이들을 먹이고 재우며 키워주고 있다. 



교육공동체가 이 시대의 이정표로 자리매김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여기 키워드를 #온마을로 잡아본다. 소멸위기에 처한 논산땅 광석초등학교는, 그러나 올해도 신입생 걱정이 없다. 작년도 교육부에서 실시한 ‘농어촌 참 좋은 학교 공모전’에서 초등학교 8개교가 선정되었다. 그 중 논산에서 2개교가 선정되었는데, 광석초와 벌곡 도산초가 영예의 주인공이다.

광석초의 4가지 특색활동 중의 하나가 [함께해U]이다. “광석초+주민자치회+지역협의체와 소통 및 공감의 기회를 만들어 온마을이 함께하는 교육 생태계를 조성했다. 민․관․학이 협력하여 학생들을 지원한다. 상명대학교-SW 및 AI교육 운영, 건양대-과학탐구 실험을 운영하고 있다.”(상세 내용 = https://nmn.ff.or.kr/18/?idx=126342346&bmode=view). 중학교는 어떠한가? 시골학교인 광석중학교에는 오케스트라가 있어서 충남 중고등학생 음악경연대회 현악 합주 부문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어찌 보면 정규교육과 방과후교육은 분리불가한 일체형이다. 낮이 부족한 것을 밤이 채워주는 유기체이다. 온 지역사회가 아이키움에만큼은 한마음이 되어 총력전을 벌이는 광석사례는, 사회적 갈등과 양극화현상이 심화되는 이 시대 갈림길에 불쑥 솟아난 이정표다. “홀로아리랑” 고도들이 모여모여  “모두다 꽃이야”  “네가 꽃이야”를 합창하는 봄, 2025 새봄이다. 



- 이진영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