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4주년 3.1절 특집] 한훈기념관 김혜진 학예연구사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조선의 독립을 선언한 기미년 3.1운동의 근간에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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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에서 작금을 낭만의 시대라고 하더이다. 그럴지도. 개화한 이들이 즐긴다는 가배, 불란서 양장, 각국의 박래품들.... 나 역시 다르지 않소. 단지 나의 낭만은 독일제 총구 안에 있을 뿐이오" 구한 말 의병이야기로 큰 인기를 끌었던 2018년 TV드라마 '미스터션샤인'에 나오는 고애신(김태리) 대사의 일부다. "독립된 조국에서 다시 만나자"던 고애신의 작별인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기미년 3.1운동 후, 한세기 100년이 훌쩍 뛰어넘은 2023년 삼일절... 모두들 '메타버스'의 가상공간에 몰입되는 시점에서 본인의 낭만을 선조들의 독립 투쟁 역사 속에서 찾아가는 한훈기념관의 김혜진 학예연구사를 만나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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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운동은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
김혜진 학예연구사는 한국전통문화대학에서 융합고고학을 전공했다. 그러니까 여자 '인디아나 존스'다. 보령박물관에서 3년간 근무하다가, 2022년 1월부터 한훈기념관으로 옮겼다. 보통 이런 경우 전보, 전출 등으로 생각하는데, 김 학예사 경우는 아예 시험을 다시보고 새로이 임용된 것이라고 한다. 공부만큼은 '인디아니 존스 박사'보다 더 잘한 것 같다.
김혜진 학예연구사는 "한훈기념관은 신도안면 계룡대1로 35에 위치해 있으며 지하 1층, 지상 1층 연면적 496㎡(150평)으로 내부는 전시관, 교육체험실, 사무실, 수장고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자리가 한훈 선생의 거주지터 인근"이라고 전해준다. 한훈기념관 아래쪽으로는 국궁장 '신도정'이 있고 좀더 내려가면 무궁화공원인데, 여기에 '광복단결사대탑'이 우렁차게 서 있다.
김 학예사는 "'광복단결사대'는 1920년 8월11일 한훈 선생이 조직한 단체로써, 한훈 선생과 '광복단결사대'는 사이토총독 처단을 기도했으나 거사 전날(1920년 8월 23일) 안타깝게 체포되어 19년간 복역 후 1939년에 출옥했으며, 장기간의 옥고로 중병을 얻었지만, 출옥 이후에도 계룡산 신도안에 은거하며 끝까지 조국의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고 전해준다.
2016년 개봉한 영화 <밀정>에서도 부분적으로 노출된 것처럼, 한훈 선생은 국내에서 목숨을 걸고 암약했던 일제고관의 암살단원이었다. 출옥 이후에는, 신도안 정장리에 은거하며 서석준 선생과 함께 애국후학 양성에 힘썼고, 해방 후에는 신익희, 조소앙 선생 등과 함께 신탁통치를 반대하였다. 그러던 중 6.25전쟁이 발발하고 개전 초기 인민군에게 체포되어 원정역 인근에서 총살을 당하는 비극적 운명을 맞이했다.
한훈 선생이 사셨던 곳은 신도안면 정장리 183이다. 무궁화동산 뒤편 국궁장 너머 산속으로 현재는 우물터와 돌담 흔적만 남아 있다. 그동안 잊혔던 이곳은 계룡지역 독립운동사와 향토사를 연구해온 김철규씨의 노력으로 2013년 발굴되었고, 지난 2013년 6월 5일에 '한훈의사 생거지 표지판'을 설치했다. (논산계룡일보 2013.06.05 기사 ‘한훈 의사 독립운동사적지 안내문 제막식’ 참조)
'신도안향우회장'인 한상빈씨는 한훈 선생의 둘째 손자이다. 장손 한상회 씨와 한상빈 씨는 그동안 소장하고 있던 모든 유품을 한훈기념관에 기증해 기념관 개관을 더욱 뜻깊게 했다.
김혜진 학예연구사는 "제국주의 식민통치에 맞서 비폭력 만세운동으로 조선의 독립을 선언한 기미년 3.1운동은 우리 역사에서도 세계사에서도 유래를 찾기 힘들다"며, "그 힘을 바탕으로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기미년 4월 11일 반포된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1조는 새로운 나라 대한민국이 '민주공화제'임을 선언하고 있어, 한민족 5천 년 역사에서 최초의 민주공화국이 그렇게 태어났다"고 설명한다.
그런 까닭에 김 학예사는 "100년 전, 기미년 3.1운동이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이라고 주장한다.
■ 을사오적 밟고, 한훈 선생과 함께 '인생샷'
한훈기념관에는 특별한 포토존이 있다.
상해 임시정부 청사 입구에서 김좌진 장군, 한훈 선생, 김상옥 의사와 함께 '인생샷'을 남길 수 있는 포토존이다.
김혜진 학예연구사가 한훈 선생과 김상옥 의사 사이에서 포즈를 취해 주었다. 그런데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김혜진 학예연구사가 밝고 서있는 자리이다. 다른 곳과 다른 재질로 되어 있는 바닥 때문이다.
대한제국 말기, 일제의 침략 과정에서 1905년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할 당시, 늑약에 찬성한 다섯 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을사오적>이라고 부른다. 바로 '박제순 외부대신', '이지용 내부대신', '이근택 군부대신', '이완용 학부대신', '권중현 농상부대신'을 일컫는다.
한훈기념관 포토존에는 <을사오적>의 사진이 바닥에 깔려있다. 독립투사와 사진을 한 컷 찍고자 하면 자연스럽게 을사오적의 얼굴을 밟을수 밖에 없는 것이다.
2023년 3.1절을 맞이해 독립된 조국에서 '대한민구 헌법 제1조'의 뿌리를 찾아보는 한훈기념관으로의 여행을 강추한다. 한훈기념관의 관람시간은 월~금요일 09시부터 18시이며 관람료는 없고 요청시 전시해설이 가능하다.
예약 및 문의는 (042)840-2347~8으로 연락하면 된다.
- 이정민 기자
[제104주년 3.1절 특집] 한훈기념관 김혜진 학예연구사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조선의 독립을 선언한 기미년 3.1운동의 근간에서 시작
"신문에서 작금을 낭만의 시대라고 하더이다. 그럴지도. 개화한 이들이 즐긴다는 가배, 불란서 양장, 각국의 박래품들.... 나 역시 다르지 않소. 단지 나의 낭만은 독일제 총구 안에 있을 뿐이오"
구한 말 의병이야기로 큰 인기를 끌었던 2018년 TV드라마 '미스터션샤인'에 나오는 고애신(김태리) 대사의 일부다. "독립된 조국에서 다시 만나자"던 고애신의 작별인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기미년 3.1운동 후, 한세기 100년이 훌쩍 뛰어넘은 2023년 삼일절...
모두들 '메타버스'의 가상공간에 몰입되는 시점에서 본인의 낭만을 선조들의 독립 투쟁 역사 속에서 찾아가는 한훈기념관의 김혜진 학예연구사를 만나본다.
■ 3.1운동은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
김혜진 학예연구사는 한국전통문화대학에서 융합고고학을 전공했다. 그러니까 여자 '인디아나 존스'다. 보령박물관에서 3년간 근무하다가, 2022년 1월부터 한훈기념관으로 옮겼다. 보통 이런 경우 전보, 전출 등으로 생각하는데, 김 학예사 경우는 아예 시험을 다시보고 새로이 임용된 것이라고 한다. 공부만큼은 '인디아니 존스 박사'보다 더 잘한 것 같다.
김혜진 학예연구사는 "한훈기념관은 신도안면 계룡대1로 35에 위치해 있으며 지하 1층, 지상 1층 연면적 496㎡(150평)으로 내부는 전시관, 교육체험실, 사무실, 수장고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자리가 한훈 선생의 거주지터 인근"이라고 전해준다. 한훈기념관 아래쪽으로는 국궁장 '신도정'이 있고 좀더 내려가면 무궁화공원인데, 여기에 '광복단결사대탑'이 우렁차게 서 있다.
김 학예사는 "'광복단결사대'는 1920년 8월11일 한훈 선생이 조직한 단체로써, 한훈 선생과 '광복단결사대'는 사이토총독 처단을 기도했으나 거사 전날(1920년 8월 23일) 안타깝게 체포되어 19년간 복역 후 1939년에 출옥했으며, 장기간의 옥고로 중병을 얻었지만, 출옥 이후에도 계룡산 신도안에 은거하며 끝까지 조국의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고 전해준다.
2016년 개봉한 영화 <밀정>에서도 부분적으로 노출된 것처럼, 한훈 선생은 국내에서 목숨을 걸고 암약했던 일제고관의 암살단원이었다. 출옥 이후에는, 신도안 정장리에 은거하며 서석준 선생과 함께 애국후학 양성에 힘썼고, 해방 후에는 신익희, 조소앙 선생 등과 함께 신탁통치를 반대하였다. 그러던 중 6.25전쟁이 발발하고 개전 초기 인민군에게 체포되어 원정역 인근에서 총살을 당하는 비극적 운명을 맞이했다.
한훈 선생이 사셨던 곳은 신도안면 정장리 183이다. 무궁화동산 뒤편 국궁장 너머 산속으로 현재는 우물터와 돌담 흔적만 남아 있다. 그동안 잊혔던 이곳은 계룡지역 독립운동사와 향토사를 연구해온 김철규씨의 노력으로 2013년 발굴되었고, 지난 2013년 6월 5일에 '한훈의사 생거지 표지판'을 설치했다. (논산계룡일보 2013.06.05 기사 ‘한훈 의사 독립운동사적지 안내문 제막식’ 참조)
'신도안향우회장'인 한상빈씨는 한훈 선생의 둘째 손자이다. 장손 한상회 씨와 한상빈 씨는 그동안 소장하고 있던 모든 유품을 한훈기념관에 기증해 기념관 개관을 더욱 뜻깊게 했다.
김혜진 학예연구사는 "제국주의 식민통치에 맞서 비폭력 만세운동으로 조선의 독립을 선언한 기미년 3.1운동은 우리 역사에서도 세계사에서도 유래를 찾기 힘들다"며, "그 힘을 바탕으로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기미년 4월 11일 반포된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1조는 새로운 나라 대한민국이 '민주공화제'임을 선언하고 있어, 한민족 5천 년 역사에서 최초의 민주공화국이 그렇게 태어났다"고 설명한다.
그런 까닭에 김 학예사는 "100년 전, 기미년 3.1운동이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이라고 주장한다.
■ 을사오적 밟고, 한훈 선생과 함께 '인생샷'
한훈기념관에는 특별한 포토존이 있다.
상해 임시정부 청사 입구에서 김좌진 장군, 한훈 선생, 김상옥 의사와 함께 '인생샷'을 남길 수 있는 포토존이다.
김혜진 학예연구사가 한훈 선생과 김상옥 의사 사이에서 포즈를 취해 주었다. 그런데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김혜진 학예연구사가 밝고 서있는 자리이다. 다른 곳과 다른 재질로 되어 있는 바닥 때문이다.
대한제국 말기, 일제의 침략 과정에서 1905년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할 당시, 늑약에 찬성한 다섯 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을사오적>이라고 부른다. 바로 '박제순 외부대신', '이지용 내부대신', '이근택 군부대신', '이완용 학부대신', '권중현 농상부대신'을 일컫는다.
한훈기념관 포토존에는 <을사오적>의 사진이 바닥에 깔려있다. 독립투사와 사진을 한 컷 찍고자 하면 자연스럽게 을사오적의 얼굴을 밟을수 밖에 없는 것이다.
2023년 3.1절을 맞이해 독립된 조국에서 '대한민구 헌법 제1조'의 뿌리를 찾아보는 한훈기념관으로의 여행을 강추한다. 한훈기념관의 관람시간은 월~금요일 09시부터 18시이며 관람료는 없고 요청시 전시해설이 가능하다.
예약 및 문의는 (042)840-2347~8으로 연락하면 된다.
- 이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