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호암까지 봄 몰고 온 사람들, 호암2리 노인회

놀뫼신문
2023-02-17

[별난동네] 호암리산악회 한라산 등정기 

제주에서 호암까지 봄 몰고 온 사람들, 호암2리 노인회

- 호암2리노인회장과 20명 한라산 도전, 절반의 승리-  


마을마다 노인회는 있어도, 마을단위 산악회가 있는 곳은 드물다. 거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논산에는 있다. 논산시 노성면 호암산 아래 호암2리다. 

호암2리는 좀 극성스럽다. 정월대보름날 쥐불놀이는 대부분 농촌에서 사라져가는 풍속도다. 코로나로 인하여 그나마 이어지던 명맥마저 끊어질 조짐이다. 10여 년 전 되살린 대규모 마을 쥐불놀이를 코로나 와중에도 강행한 동네가 호암2리다. 올해 2월 4일에도 호암산을 가르는 요란한 꽹가리 소리와 함께 속행되었다. 

논산사람들은 노성산을 잘 안다. 이에 비해 호암산은 잘 모르는 편이다.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이 들어선 병사저수지(가곡저수지) 사이에 두고 노성산과 마주보는 산이 호암산이다. 구암리~종학당~한국유교문화진흥원~호암리 능선이다(장마루는 호암리와 이웃).

호암산 아래 호암2리에서 산행길이 다듬어졌다. 이 길을 따라 정상, 부정상까지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작년부터 꽤 늘었다. 호암2리 노인회원들이다. 1년 후로 계획된 한라산 등정을 위하여 체력을 다지는 행렬들이었다. 

이 행렬이 지난 2월 14일, 낮 12시 한라산 정상에도 나타났다. 20명이 출발하였고, 10명이 정점을 찍었다. 절반의 승리지만 참으로 값진 쾌거였다. 노성면에서 온 노인회원들의 남도 한라봉 등정이었고, 거기에는 86세인 송세의 노인회장도 당당 이름을 올렸다.  젊은이도 벅차기만 한 이 길이 어찌 힘들지 않았으랴? 그렇지만 송 회장은 말했다. “1년 준비해왔고 고지가 바로 저긴데 포기할 수 없었다. 내 평생 언제 다시 올 수 있겠느냐는 마음으로 힘을 냈다”고 술회한다.

선두에 섰던 산악대장은 73세의 노인 황광균 씨였다. 외인구단과도 같은 이들이 그간 어떻게 해서 값진 승리를 일구어냈는지, 이번 산행에서 부부 등반한 김진우 이장(56세)과  이후식 지도자(57세)가 자세히 들려준다. 



113데이에서 출발한 동네산악회 ‘호암리산악회’


10년 전 호암2리 청년회원 7~8명이 자그만 산악회를 만들었다. 1월 13일에 출범해서 113Day라 이름 지었다. 호응이 좋아 10여 명이 더 늘어났다. 그때의 청년회원들이 10년 지나면서 노인회로 편입되었고, 이참 저참에 청년회와 노인회를 망라하는 산악회로 재편할 필요성이 생겼다. 그리하여 작년 4월경 호암2리산악회로 헤쳐모이면서 “우리도 내년에 한라산에 가보자”는 안건이 통과되었다. 공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준비할 게 많았다. 수시로 모여 호암산행으로 체력을 다지고, 돈은 매달 적립하였다. 

동네산악회는 동네관광과 다르다. 호암2리는 작년 여름 관광버스를 한 대 불러 청와대를 다녀왔다. 그러나 산악회는 동네돈을 쓰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개인 부담이다. 1인당  50만원은 공식경비이고, 등산복과 아이젠 등 겨울 등정에 들어간 돈은 회비를 웃도는 액수다. 

원족 떠나는 학동들처럼 할아버니 할머니들은 설렜고, 가열찼다. 1년의 예행연습이 충분하다 느낀 회원들은, “가자, 기왕이면 눈 있을 때 한라산으로!” 그래서 2월 13일 동네를 떠났다. 전원 다 가면 24명인데 사정상 20명이 청주공항에서 7시 비행기를 탔다. 제주공항 도착 후에는 렌트카 3대를 빌려 한림공원과 산방산에서 봄의 전령사 유채꽃들을 만끽했다. 



가자, 한라산 백록담 설원으로 


3시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현지 등반준비를 시작하였다. 저녁 식사 후 조기취침, 다음 날 새벽 3시에 전원 기상을 했다. 조반, 다시 점검 확인 후 5시 성판악 휴게소 도착, 등록 시작! 이후 일정을 김진우 이장이 시간대별로 정리해 보인다. 


  • 06:00~ 한라산 정상 향해 출발
  • 08:15~ 솥밭대피소 20명 도착(6명 하산)
  • 10:30~ 진달래대피소 12명 도착
  • 10:50~ 두 명 더 하산하였지만 노인회장 독려로 재발진(선두=산악대장 황광균, 중간=지도자 이후식, 후미=김진우 이장)
  • 12:10~ 정상 도착


20명 산악회원을 남녀 비율로 보면 11:9로 출발했고, 정상에서는  7:3으로 도착했다. 구부 능선쯤 왔을 때 총무(여, 56세)가 “나 죽으면 죽었지 더는 못가요.”  하산선언이다. 이 때 한 목소리가 나선다. “기운 내봐요. 내가 72인데, 86세인 회장님도 견디시는데, 막바지 조금만 더 기운 내봅시다!” 개인 체력도 체력이지만, 정신력 외에도 힘을 발휘해주는 원동력이 있다. 서로가 서로를 끌어주는 협동심! 

정상 등정이 가능하게끔 도와준 것 중 하나가 날씨였다. 제주도에서 화창한 날씨는 사흘에 한 번도 안 될 정도란다. “저는 이번이 세 번째 도전인데 첫 성공입니다. 첫 번째는 악천후로 포기했고요, 두 번째는 가족동반였는데 집식구가 체력을 이겨내지 못해서였어요.” 그 집식구가 이번에는 동네분들의 격려로 9부능선을 넘은 것이다. 



한 식구로 엮어주는 산행, 언행


정상에 오르자 “오메, 나 다 씻은 듯이 나았네요!” 선언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평소 “나 죽겄어”를 입에 달고 다니던 동네사람 목소리다. 점심을 마치고 하산하니 저녁 5시쯤이다. 성판악에서 백록담 정상까지 9.6km, 왕복 20km를 하루 종일 걸어온 것이다. 도중에 포기한 10명의 회원들이 학수고대하다가 이산가족 상봉 못잖게 반색이다. “우리는 밑에서 무사히 잘 다녀오게 해주십사고 기도했어.” 가족 못잖은 정이 울컥이다. 

다음날은 성산 일출봉쪽으로 해서 드라이브한 다음 동문시장 나들이를 했다. 상월로 돌아와 신장개업한 칼국수집에서 저녁을 하는데 어디선가 “서운하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경로사상이 생활화돼 있는 분위기에서 ‘집행부에서 대접이 소홀했나?’ 했더니만.... “이제 한라산까지도 등정해봤으니 다음에 또 가야지!”  그 선동은 찬동으로 이어졌다.  

이제는 일상(日常)이다. 113데이가 123데이가 되고 365데이가 된다. 장마루가스 대표인 김진우 이장은 배달을 나가고, 선경창호건설(주) 대표이사 이후식 지도자는 논산은 물론 대구출장 등 전국구다. 저녁에는 호암산 아래로 귀가하여 마을사람과, 가족들과 오순도순이다. 호암산 아래에는 100여 명이 옹기종기다. 여느 농·산촌처럼 노인회원이 절반을 육박하지만, 젊은이 못지않은 노익장들이다. 선행후언, 말보다는 몸으로 소통이 더 잘 이루어지는 곳이다. 호랑이가 다녔고 호랑이바위가 있다는 호암(虎巖)에는 노익장 호랑이들의 기개가 포효한다. 


- 이진영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