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탁구스타 안재형은 중국의 탁구스타 자오즈민과 국경을 뛰어넘은 애절하고 감동적인 러브스토리로 양국 국민들의 가슴을 적셨다. 6년간의 열애 끝에 1989년 결혼한 안재형과 자오즈민 커플은 민간교류 차원은 물론 1992년 한‧중 수교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그렇게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온 지금, 논산시가족센터에서 또 다른 한‧중 간의 비익조(比翼鳥) 같은 사랑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한국의 대학 생활 가장 행복했습니다
이번 표지초대석의 주인공은 논산시가족센터에 재직 중인 방옥하(팡위샤) 이중언어코치이다. 그녀는 1986년 호랑이띠로 산둥성 위해시(웨이하이시)가 고향이다.
방옥하 코치는 중국 산둥성 위해시에서 초‧중‧고를 졸업하고 건양대 인테리어학과 07학번으로 유학을 오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건양대를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면서 성동산업단지에 있는 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였다. 짬짬이 하게 된 아르바이트가 방옥하의 일생이 바뀌는 계기가 된 것이다. 방옥하는 그곳에서 본인의 운명적 ‘반쪽’을 만난 것이다.
방옥하 이중언어코치는 “동갑내기인 신랑과 저는 처음에는 친구 사이로 지냈죠.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살가운 친구로 지내다가 2014년 봄, ‘이사람과 결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며 당시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계속한다.
“양가 모두 반대가 심했습니다. 특히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의 반대가 심했죠. 그럴수록 저와 신랑은 사랑하는 사람이랑 살 수 있도록 ‘부모님이 허락해 주십사’ 간청했습니다. 그런 결과 그해 여름에 양가 부모의 승락을 받고, 이듬해인 2015년 5월 17일 결혼을 했습니다. 곧 결혼기념일입니다.”라며 환하게 웃는다.
그녀는 “한국에서의 대학 생활과 대학원 생활, 그리고 신랑과의 러브스토리는 제 일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라고 이야기한다.
어머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방옥하씨는 2015년부터 2022년까지 논산여중 인근에서 글로벌중국어학원을 운영했다. 학원에서 중국어를 가르치는 것 외에도 중국 유학 및 여행, 취업, 비지니스 등에 대해 많은 자문을 제공하며 민간교류에 크게 기여했다. 코로나19로 학원 운영을 그만두고 작년부터 논산시가족센터에서 이중언어코치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활발하게 사회 활동도 하면서 남편과 7살, 5살의 두아들과 함께 취암동에서 행복하고 단란한 살림을 꾸릴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어머님의 돌봄’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제가 첫째를 출산했을 때, 시어머님께서 대장암 수술을 하셨는데, 수술 후 실밥도 뽑지 않은 상태에서 저의 산후조리를 돌봐주셨다”며 ‘어머님의 내리사랑’을 전해준다.
“지금도 아이들이 유치원 갔다 오면 어머님이 돌봐주셔서 제가 편안하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고 자랑한다.
그녀는 “그렇게 아이들을 키우면서 건강하고 씩씩하게 유치원에 다니고, 또 유치원에서 ‘잘했어요’라는 칭찬을 받았을 때, 그리고 아이들이 ‘엄마 사랑해요’라고 말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이야기한다.
“<내리 사랑은 있어도 치 사랑은 없다>는 옛말이 있듯이 제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느끼는 것처럼 어머님도 저희를 보면서 느끼시는 사랑이 있을텐데, 그 고마움을 제대로 표현 한번 못했다”며 아쉬워한다.
방옥하 이중언어코치는 “본지 지면을 통해서 꼭 어머님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며, 바로 “어머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힌다.
- 이정민 기자
1980년대 탁구스타 안재형은 중국의 탁구스타 자오즈민과 국경을 뛰어넘은 애절하고 감동적인 러브스토리로 양국 국민들의 가슴을 적셨다. 6년간의 열애 끝에 1989년 결혼한 안재형과 자오즈민 커플은 민간교류 차원은 물론 1992년 한‧중 수교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그렇게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온 지금, 논산시가족센터에서 또 다른 한‧중 간의 비익조(比翼鳥) 같은 사랑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한국의 대학 생활 가장 행복했습니다
이번 표지초대석의 주인공은 논산시가족센터에 재직 중인 방옥하(팡위샤) 이중언어코치이다. 그녀는 1986년 호랑이띠로 산둥성 위해시(웨이하이시)가 고향이다.
방옥하 코치는 중국 산둥성 위해시에서 초‧중‧고를 졸업하고 건양대 인테리어학과 07학번으로 유학을 오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건양대를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면서 성동산업단지에 있는 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였다. 짬짬이 하게 된 아르바이트가 방옥하의 일생이 바뀌는 계기가 된 것이다. 방옥하는 그곳에서 본인의 운명적 ‘반쪽’을 만난 것이다.
방옥하 이중언어코치는 “동갑내기인 신랑과 저는 처음에는 친구 사이로 지냈죠.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살가운 친구로 지내다가 2014년 봄, ‘이사람과 결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며 당시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계속한다.
“양가 모두 반대가 심했습니다. 특히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의 반대가 심했죠. 그럴수록 저와 신랑은 사랑하는 사람이랑 살 수 있도록 ‘부모님이 허락해 주십사’ 간청했습니다. 그런 결과 그해 여름에 양가 부모의 승락을 받고, 이듬해인 2015년 5월 17일 결혼을 했습니다. 곧 결혼기념일입니다.”라며 환하게 웃는다.
그녀는 “한국에서의 대학 생활과 대학원 생활, 그리고 신랑과의 러브스토리는 제 일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라고 이야기한다.
어머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방옥하씨는 2015년부터 2022년까지 논산여중 인근에서 글로벌중국어학원을 운영했다. 학원에서 중국어를 가르치는 것 외에도 중국 유학 및 여행, 취업, 비지니스 등에 대해 많은 자문을 제공하며 민간교류에 크게 기여했다. 코로나19로 학원 운영을 그만두고 작년부터 논산시가족센터에서 이중언어코치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활발하게 사회 활동도 하면서 남편과 7살, 5살의 두아들과 함께 취암동에서 행복하고 단란한 살림을 꾸릴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어머님의 돌봄’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제가 첫째를 출산했을 때, 시어머님께서 대장암 수술을 하셨는데, 수술 후 실밥도 뽑지 않은 상태에서 저의 산후조리를 돌봐주셨다”며 ‘어머님의 내리사랑’을 전해준다.
“지금도 아이들이 유치원 갔다 오면 어머님이 돌봐주셔서 제가 편안하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고 자랑한다.
그녀는 “그렇게 아이들을 키우면서 건강하고 씩씩하게 유치원에 다니고, 또 유치원에서 ‘잘했어요’라는 칭찬을 받았을 때, 그리고 아이들이 ‘엄마 사랑해요’라고 말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이야기한다.
“<내리 사랑은 있어도 치 사랑은 없다>는 옛말이 있듯이 제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느끼는 것처럼 어머님도 저희를 보면서 느끼시는 사랑이 있을텐데, 그 고마움을 제대로 표현 한번 못했다”며 아쉬워한다.
방옥하 이중언어코치는 “본지 지면을 통해서 꼭 어머님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며, 바로 “어머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힌다.
- 이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