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한국유교문화진흥원 정재근 원장
정재근 원장에게 인‧의‧예‧지 '선비의 길'을 묻다(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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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교가 종교인지? 유교가 학문인지?"에 대해 혹자는 유교라고 부르면 종교이고, 유학이라 부르면 학문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한자에서 교(敎)와 학(學)의 글자 어원이 동일하다는 내용을 비춰보면 유교는 종교이고, 유학은 학문이라는 주장은 어폐가 있는 듯하다. 연세대학교 이광호 명예교수에 따르면 "교(敎)와 학(學)은 어원이 같은 글자로서 '선생 입장에서 보면 가르침'이며, '학생 입장에서 보면 배움'이다"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유교는 가르치는 입장에서의 개념'이며, '유학은 배우는 입장에서의 개념'이라는 내용이다. 지난 호에 이어 이번호에서도 정재근 원장과 함께 인의예지 선비의 길을 함께 걸어보고자 한다. 정 원장은 이미 우리 몸속에 체화되어 있는 2500년 동안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깨우쳐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선비의 삶"을 본지 지면을 통해 설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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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교 문화는 무엇인가?
정재근 원장은 "우리는 종교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분명한 것은 '유교진흥원'이 아니라, '유교문화진흥원'이다"라고 이야기한다.
"공자, 맹자 그리고 후학들에 의한 2500년 동안의 가르침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몸속에 체화되어 있다. 우리는 그걸 다시 한번 국민들에게 알려주겠다"는 것이며, "그 가르침은 부정적인 것보다 긍정적인 것이 많고,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선비 정신'이다"라고 설명한다.
정 원장은 "유교문화는 도덕 국가를 건설하자는 것이고, 유교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이다"라고 이야기 한다.
"여기서 '수기치인'이란, 공부하는 목적은 공부해서 혼자만 행복하자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공부했으면 이 공부한 것을 공적 분야에 나가서 세상을 위해 봉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 원장은 "유교에서 이야기하는 가르침에서 가장 이상적인 인격체가 바로 '선비'라며, 선비의 삶이 한마디로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삶이다"라고 정의하며, "공부를 해가지고 그 공부를 자기 이익을 위해서만 쓰는 사람은 소인배라며, 선비는 공부를 했으면 그것을 이 사회를 위해서 이타적으로 공적 가치를 위해서 일을 해야한다"고 설파한다.
"유교는 크게 '인‧의‧예‧지'인데, 이 네가지는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善)하다는 것이 유교의 기르침이다"라고 정 원장은 설명한다.
그러면서 "기독교하고 비교할 필요는 없지만,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인간은 신에게 죄를 진 그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라고 보는 반면, 유교는 본질적으로 인‧의‧예‧지를 본성으로 가지고 있는 즉, 성선으로 '본성은 착하다'는 것으로 부터 출발한다"고 이야기 한다.
■ 논산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의 역할은?
세종대왕, 충무공 이순신, 퇴계 이황, 율곡 이이, 신사임당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건 "그 분들의 초상화가 대한민국 화폐에 사용된 것"이라고 정재근 원장은 이야기한다.
정재근 원장은 "17세기부터 18세기, 19세기에 이르는 350년 동안 조선의 정치 학맥을 좌지우지한 곳이 바로 논산"이라며, "영남학파 퇴계 이황의 '좌 안동', 기호학파 율곡 이이의 '우 논산'이 조선 정치의 양대 계보였다"고 설명한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조선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학문이 '예'를 확립하는 '예학'이었다"며, "이는 양난 이후에 조선 사회의 질서가 다 무너져, 조선의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다시 정립하는 것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한다.
"예(禮)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므로 윗사람을 만날 때는 어떻게 해야 되고,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어떻게 해야 되고, 친구 관계는 어떻게 해야 되고, 제사를 지낼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는 지를 다시 정확하게 다듬어 조선 사회가 어떤 '법(法)'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禮)'에 의해서 탄탄한 국가로 재건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유학은 공리공담(空理空談)하는 학문이 아니고, 현실에 맞는 학문을 하는 '실학'이라는 것이 입증된 것"이라고 정 원장은 주장한다.
"당시 그런 상황 속에서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고 있을 때, 사계 김장생 선생이 주자 때부터 내려왔던 학문을 집대성해 완결판을 만들어 놓은 것"이라며, 정 원장은 "예(禮)에 대해서 선현들의 공통점은 형식보다는 본질이니까, 마음이 상대방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그것을 표현하는 형식에 너무 구애받지 말고, 적당한 정도는 지켜라"라는 선현의 말씀을 전해준다.
"이렇게 예학의 종장인 사계 김장생 선생의 '논산이 예학의 본향'이고, 그래서 '한국유교문화진흥원'도 예학의 산실 논산에 위치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반면, '한국국학진흥원'이 있는 안동은 '유교 문화'의 콘텐츠를 가지고 20년 동안 1조 원을 투자받았다. 그 옛날 논밭도 없고 산만 있던 안동이 유교 문화 정책으로 성공을 거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정 원장은 "유교 문화는 안동하고 논산이라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명확한 사실을 버려서는 안되며, 더욱 희생시켜서도 안된다"며, "따라서 딸기, 육군병장, 농업도 소중하고 국방산업도시도 중요하지만, 좀 더 거시적으로 멀리 내다보면서 30년, 50년 경쟁력 있는 문화 콘텐츠를 키워나가야 된다"고 역설한다.
정재근 원장은 "세계적인 자동차 'BMW'는 '바이에른 뮌헨 자동차'의 약자이다. 독일의 금융‧경제의 중심지인 프랑크푸르트에서 자기네 쪽으로 유치를 하려고 해도 바이에른주 뮌헨에서 본사와 공장을 안 옮기며 오히려 우리는 'BMW'라는 자부심을 내세운다"고 이야기하며, "그런 것처럼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은 논산에 뿌리를 박고 있으면서, 많은 사람이 논산을 찾아오게끔 만들고, 또 우리는 논산을 중심으로 유교 문화를 번창시켜 '논산의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정 원장은 "유교 문화를 한 번 다시 되새기면서,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떻게 잘 조화를 이루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사회 문제나 병폐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런 제시를 하려고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이 탄생한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 탑정호 둘레길은 "충(忠)‧효(孝)‧예(禮) 선비의 길"
"유교하면 '인‧의‧예‧지'이지만 일반 국민들에게는 '충‧효‧예'가 더 많이 와닿는다"며, "충‧효‧예가 한 공간에 완벽하게 모여 있는 데가 바로 논산 '탑정호 주변'이다"라고 정 원장은 주장한다.
우선, "충곡리의 '충곡서원'은 계백장군을 모신 서원으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 무(武)인을 모신 서원이고, 가야곡 산노리에 '효암서원'은 효자 강응정을 모신 서원이며, 유네스코 세계 유산 '돈암서원'은 예학의 본향으로 사계 김장생 선생을 모신 서원"이라고 설명한다.
정재근 원장은 "이렇게 충‧효‧예가 완벽하게 모여 있는 유교 문화의 콘텐츠에 탑정호의 수려한 경관을 어울려 이야기가 있는 선비의 길을 만들어 볼 것"을 추천한다.
- 전영주 편집장
[특별인터뷰] 한국유교문화진흥원 정재근 원장
정재근 원장에게 인‧의‧예‧지 '선비의 길'을 묻다(Ⅱ)
"유교가 종교인지? 유교가 학문인지?"에 대해 혹자는 유교라고 부르면 종교이고, 유학이라 부르면 학문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한자에서 교(敎)와 학(學)의 글자 어원이 동일하다는 내용을 비춰보면 유교는 종교이고, 유학은 학문이라는 주장은 어폐가 있는 듯하다.
연세대학교 이광호 명예교수에 따르면 "교(敎)와 학(學)은 어원이 같은 글자로서 '선생 입장에서 보면 가르침'이며, '학생 입장에서 보면 배움'이다"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유교는 가르치는 입장에서의 개념'이며, '유학은 배우는 입장에서의 개념'이라는 내용이다.
지난 호에 이어 이번호에서도 정재근 원장과 함께 인의예지 선비의 길을 함께 걸어보고자 한다. 정 원장은 이미 우리 몸속에 체화되어 있는 2500년 동안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깨우쳐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선비의 삶"을 본지 지면을 통해 설파한다.
■ 유교 문화는 무엇인가?
정재근 원장은 "우리는 종교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분명한 것은 '유교진흥원'이 아니라, '유교문화진흥원'이다"라고 이야기한다.
"공자, 맹자 그리고 후학들에 의한 2500년 동안의 가르침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몸속에 체화되어 있다. 우리는 그걸 다시 한번 국민들에게 알려주겠다"는 것이며, "그 가르침은 부정적인 것보다 긍정적인 것이 많고,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선비 정신'이다"라고 설명한다.
정 원장은 "유교문화는 도덕 국가를 건설하자는 것이고, 유교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이다"라고 이야기 한다.
"여기서 '수기치인'이란, 공부하는 목적은 공부해서 혼자만 행복하자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공부했으면 이 공부한 것을 공적 분야에 나가서 세상을 위해 봉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 원장은 "유교에서 이야기하는 가르침에서 가장 이상적인 인격체가 바로 '선비'라며, 선비의 삶이 한마디로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삶이다"라고 정의하며, "공부를 해가지고 그 공부를 자기 이익을 위해서만 쓰는 사람은 소인배라며, 선비는 공부를 했으면 그것을 이 사회를 위해서 이타적으로 공적 가치를 위해서 일을 해야한다"고 설파한다.
"유교는 크게 '인‧의‧예‧지'인데, 이 네가지는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善)하다는 것이 유교의 기르침이다"라고 정 원장은 설명한다.
그러면서 "기독교하고 비교할 필요는 없지만,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인간은 신에게 죄를 진 그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라고 보는 반면, 유교는 본질적으로 인‧의‧예‧지를 본성으로 가지고 있는 즉, 성선으로 '본성은 착하다'는 것으로 부터 출발한다"고 이야기 한다.
■ 논산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의 역할은?
세종대왕, 충무공 이순신, 퇴계 이황, 율곡 이이, 신사임당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건 "그 분들의 초상화가 대한민국 화폐에 사용된 것"이라고 정재근 원장은 이야기한다.
정재근 원장은 "17세기부터 18세기, 19세기에 이르는 350년 동안 조선의 정치 학맥을 좌지우지한 곳이 바로 논산"이라며, "영남학파 퇴계 이황의 '좌 안동', 기호학파 율곡 이이의 '우 논산'이 조선 정치의 양대 계보였다"고 설명한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조선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학문이 '예'를 확립하는 '예학'이었다"며, "이는 양난 이후에 조선 사회의 질서가 다 무너져, 조선의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다시 정립하는 것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한다.
"예(禮)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므로 윗사람을 만날 때는 어떻게 해야 되고,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어떻게 해야 되고, 친구 관계는 어떻게 해야 되고, 제사를 지낼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는 지를 다시 정확하게 다듬어 조선 사회가 어떤 '법(法)'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禮)'에 의해서 탄탄한 국가로 재건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유학은 공리공담(空理空談)하는 학문이 아니고, 현실에 맞는 학문을 하는 '실학'이라는 것이 입증된 것"이라고 정 원장은 주장한다.
"당시 그런 상황 속에서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고 있을 때, 사계 김장생 선생이 주자 때부터 내려왔던 학문을 집대성해 완결판을 만들어 놓은 것"이라며, 정 원장은 "예(禮)에 대해서 선현들의 공통점은 형식보다는 본질이니까, 마음이 상대방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그것을 표현하는 형식에 너무 구애받지 말고, 적당한 정도는 지켜라"라는 선현의 말씀을 전해준다.
"이렇게 예학의 종장인 사계 김장생 선생의 '논산이 예학의 본향'이고, 그래서 '한국유교문화진흥원'도 예학의 산실 논산에 위치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반면, '한국국학진흥원'이 있는 안동은 '유교 문화'의 콘텐츠를 가지고 20년 동안 1조 원을 투자받았다. 그 옛날 논밭도 없고 산만 있던 안동이 유교 문화 정책으로 성공을 거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정 원장은 "유교 문화는 안동하고 논산이라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명확한 사실을 버려서는 안되며, 더욱 희생시켜서도 안된다"며, "따라서 딸기, 육군병장, 농업도 소중하고 국방산업도시도 중요하지만, 좀 더 거시적으로 멀리 내다보면서 30년, 50년 경쟁력 있는 문화 콘텐츠를 키워나가야 된다"고 역설한다.
정재근 원장은 "세계적인 자동차 'BMW'는 '바이에른 뮌헨 자동차'의 약자이다. 독일의 금융‧경제의 중심지인 프랑크푸르트에서 자기네 쪽으로 유치를 하려고 해도 바이에른주 뮌헨에서 본사와 공장을 안 옮기며 오히려 우리는 'BMW'라는 자부심을 내세운다"고 이야기하며, "그런 것처럼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은 논산에 뿌리를 박고 있으면서, 많은 사람이 논산을 찾아오게끔 만들고, 또 우리는 논산을 중심으로 유교 문화를 번창시켜 '논산의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정 원장은 "유교 문화를 한 번 다시 되새기면서,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떻게 잘 조화를 이루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사회 문제나 병폐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런 제시를 하려고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이 탄생한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 탑정호 둘레길은 "충(忠)‧효(孝)‧예(禮) 선비의 길"
"유교하면 '인‧의‧예‧지'이지만 일반 국민들에게는 '충‧효‧예'가 더 많이 와닿는다"며, "충‧효‧예가 한 공간에 완벽하게 모여 있는 데가 바로 논산 '탑정호 주변'이다"라고 정 원장은 주장한다.
우선, "충곡리의 '충곡서원'은 계백장군을 모신 서원으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 무(武)인을 모신 서원이고, 가야곡 산노리에 '효암서원'은 효자 강응정을 모신 서원이며, 유네스코 세계 유산 '돈암서원'은 예학의 본향으로 사계 김장생 선생을 모신 서원"이라고 설명한다.
정재근 원장은 "이렇게 충‧효‧예가 완벽하게 모여 있는 유교 문화의 콘텐츠에 탑정호의 수려한 경관을 어울려 이야기가 있는 선비의 길을 만들어 볼 것"을 추천한다.
- 전영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