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같이돌자 동네한바퀴] 부적면 부인2리 "왕건출정길 위에 ‘마을공동체’ 깃발 휘날리며"

놀뫼신문
2023-11-06

[다같이돌자 동네한바퀴] 부적면 부인2리 

왕건출정길 위에 ‘마을공동체’ 깃발 휘날리며

- 빠른 물고기가 되려는 부인리(지바뜰) 사람들 -

 


항월리 풋개다리는 역사의 분수령이다. 이순신 백의종군길 이전에 왕건의 출정길이었다. 물에서는 강한 왕건이 뭍에서 강한 견훤과 건곤일척(乾坤一擲)을 앞두고 풋개다리를 건넜다. 폭풍전야, 불길한 꿈을 꾼 그는 무당에게 물어보았다. 인근에 살던 무녀는 왕건의 손을 들어주었다.  승리를 거둔 왕건은 비천한 신분의 그녀에게 일대의 밭을 하사한다. 

왕전(王田)리 일대까지 지주가 된 그녀가 죽자, 사람들은 인심을 잃지 않고 살았던 그녀를 기렸다. 조영부인 이야기는 설화에 그치지 않고 왕전, 왕덕뜰 등의 지명뿐 아니라 당제를 드리는 풍속으로 이어져, 어언 천년이다. 

이 동네에서 이장직 5년째인 서동석 이장이 들려주는 조영부인 설화는 서사 구조도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고 한다. <천년달빛마을>이라고 영어로도 써있는 부인2리 마을회관 주변 벽화가 이채롭다. 결초보은(結草報恩)이라는 한자도 왕과 백성간에 격의 없는 소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 마을의 고사성어다. 부인리는 조영 ‘부인’의 부인이요, 부적면의 첫 자가 되었다. 동네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조영부인의 사당이 단정하다. 

이몽룡 과거길, 삼남길은 옛길이 되면서 부인리는 큰 길에서 한참 들어간 한적한 동네가 되었다. 구릉지가 없는 평야가 밋밋해 보인다. 여느 시골처럼 외적인 변화도 잘 보이지 않는다. 최근 마을회관 옆으로 뻘쭘한 건축 공사가 진행중이다. 이웃마을 영농조합법인의 가공공장이 동네 한복판에 들어서는 모양이다. 

동네 골목길은 가을꽃들과 중간중간 쉼터로 단정하다. 마을회관 뒤로는 큰 하우스가 두 동이다. 왼쪽은 마을공동작업장, 오른쪽은 야자수 풍경인 아열대식물원 커피농장이다. 이 “뜰에봄체험농장”은 전원카페 준비로 한창이다. 

기자는 지난 4일 김홍신문학관에서 진행중인 <논산명품길 문화산책> 사업의 일환으로 백의종군길과 왕건출정길을 걷다가 부적면 부인리를 들르게 되었다. 마침 그날은 논산시 평생학습축제가 열린도서관 앞마당에서 열렸다. 두레풍장 발표를 마친 동네분들과의 이야기는, 달빛 교교한 동네에 돌아와 본격 이루어졌다. 

이 동네는 쉼터가 군데군데다. 이야기는 바나나가 주렁주렁 열린 ‘뜰에봄체험농장’에서 나누었다. 함께 나누는 음료는 이 농장에서 직접 키운 커피라고 알려준다. 서동석 이장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동네경영이랄 수도 있는 마을공동체 이야기 넷은 동서고금, 동서남북 전방위 4방이다. 그 중 하나가 문화활동인데, 동네에 활력을 불어넣는 두레풍장이야기는 별도로 해서 자세히 듣는다. 


[서동석 이장의 마을경영 이야기] 

“변화무쌍한 시대, 재빠른 물고기가 되고자”


‘디자인’이라는 말을 마을이나 도시에 적용할 때 외관 정비만을 의미하는 거 같지는 않아요. 어찌 보면 종합마스터플랜 같은데, ‘천년달빛마을’이라는 디자인과 이름부터 흡인력 있어 보이네요. 


우리 동네는 노성천, 연산천, 논산천에 둘러싸인 평야지대입니다. 52가구에 120여 명이 살고 있고요, 농업 인구는 절반 정도입니다. 다소 이질적인 요소도 있지만, 우리는 무엇보다도 지속가능한 마을공동체를 꿈꾸고 있습니다. 지난 2019년 농촌현장포럼에서 마을의 미래 모습인 ‘비전체계도’를 그렸습니다. 


뜬구름 같은 꿈들을 실제로 쓰고 그려볼 때 비로소 손에 잡혀오기 시작하는 거 같아요. 비전도에는 핵심가치도 담겨 있겠죠?


공동목표 설정을 위하여 마을회의를 숱하게 거졌지만, 코로나19를 지나는 동안 수정보완은 불가피해지더군요. 게다가 농촌소멸, 기후변화라는 굵직한 변수들을 두고서 마을사업 재정의하는 논의를 거듭하곤 했습니다. 변화의 시대에 빠르게 유영하는 물고기가 되어야 했던 거죠. 지속가능한 마을공동체라는 화두는 변하지 않았고요, 그 결과 지금 우리는 4대 핵심제언으로 정리하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실천에 옮기는 중입니다. 


조영부인 사당 축대쌓기

메리골드텃밭에서 수확을 마치고 공유쉼터에서


✔ 1=사람을 이끄는 동인, 문화


부인리 하면 조영부인 당제부터 떠오르는데, 그 이야기부터 들려주시지요. 


마을살이에 맛과 멋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이 맛과 멋을 우리는 문화(文化)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이끄는 동인(動因) 중 가장 큰 것은 실은 문화입니다. 우리 마을은 공동체문화를 조성하고 생활화하기 위해 투 트랙을 폈습니다. 하나는 전통문화의 계승이고, 다른 하나는 공유공간조성입니다.

2020년에는 전통문화를 계승하기 위해 마을동제인 논산부인당제를 논산시향토문화유적 제46호로 등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1년여 함께 모여서 논의하고 책으로도 엮어낸 우리 마을문화의 소중한 결실이지요. 작년도에는 논산부인당제 사전행사인 지신밟기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달빛풍장>동아리를 결성하였습니다. 올해 들어서는 부인당제 사전행사인 지신밟기행사를 진행하였고, 오늘 2023논산시평생학습축제에서는 두레풍물을 마음껏 펼치고 온 겁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별도로 듣기로 하고요... 그럼 이 마을에서는 왜 이리도 줄기차게 전통문화 복원에 올인하는지요? 


논산부인당제에는 우리가 차용해야 할 공동체정신이 있습니다. 지신밟기에는 연대와 협업의 두레정신이, 부인당설화에는 경(敬)과 의(義)로 대변되는 사람의 길이 있습니다. 이러한 공동체정신이 마을공동체DNA로 승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섭니다.


마을에 쉼터들이 가꾸어져 있어서 오가다 앉아가기 딱 좋아보이네요! 


우리는 그것을 공유공간이라고 부릅니다. 코로나19를 경험하면서 마을주민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하여 진행된 공유공간조성 사업이지요. 주민참여사업에 공모하여 두 곳에 공유공간을 조성하였습니다. 공유공간은 이웃간의 정을 두텁게 하려는 소박한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결과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마을문화 조성으로까지 이어지더군요. 공동체를 성장시키는 창의성은 이웃간의 접촉빈도와 밀접한 비례관계인데, 그런 공간이 많아진 거죠. 우리 마을사업 아이디어는 대부분 주민들의 쉼터 대화 속에서 나왔답니다.


태양광달기 공동작업

2021년 에너지리빙랩 현장실습 장면(예산에 있는 적정기술공유센터에서 태양광과 인버터 연결하여 전기 생산하는 과정)


✔ 2=에너지자립마을을 꿈꾸며, 환경


외적인 환경 사업은 마을마다 한다고들 하는데요, 요즘 탄소중립이니 기후변화 소리는 드높지만, 농촌에서는 여전히 공염불로 들리는 거 같아요....

 

“에너지자립마을”이 우리의 꿈입니다. 2020년 우리는 충남에너지센터와 에너지리빙랩사업을 진행하였습니다. 마을 안 골목길을 밝혀 주민들에게 이동의 편리성을 제공하려 시작한 사업인데요, 기후변화, 탄소중립이라는 커다란 트렌드와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죠. 

리빙랩사업을 통해 2021년에는 마을안길을 밝히는 태양광조명등을 설치하였고요, 2022년에는 소규모태양광을 설치하여 그린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가구를 확대해 나갔습니다. 마을에너지연구소에 의뢰하여 에너지실태조사연구보고서 작성하는 일도 진행하였고요. 이를 바탕으로 에너지자립마을을 준비해가는 중이랍니다. 


탄소중립은요? 


작년과 올해 2년에 걸쳐서 논산YWCA와 탄소중립생활백서프로그램을 진행하였습니다. 탄소중립생활백서는 탄소중립을 내 삶에 적용시켜 일상생활에서 작은 것부터 실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지요.

 산업혁명을 지나면서 인류는 지구에 기생하는 존재가 되었달까요? 이제는 패러다임이 바뀌어 우리는 지구와 절대 공존해야 합니다. 내 삶의 터전을 지키고 다음 세대에게 좋은 환경을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는 개념 있는 주민 하나하나가 되고자 서로 권면하고 있고요. 덕분에 그린전환을 실천하는 마을로 성장하고 있어요!


마을경제동공작업

한지공예로 서랍장 만드는 문화프로그램


✔ 3=일터, 삶터, 쉼터가 있는 지바뜰, 경제


덕업상권(德業相勸) 다 좋은 이야기지만, 나와 이해 관계가 있다고 느끼지 않는 한 사람들은 쉬 움직이려 하지 않는 거 같아요. 뭐 하나라도 생기는 거 같아야 비로소 움직이는 인지상정도 있고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좋건 싫건 돈의 위력을 부정할 수 없겠지요. 마을일에도 수익사업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봅니다. 해서, 우리 마을공동체사업의 백미는 경제사업이라고 보셔도 좋을 거 같네요.

경제사업을 제대로 하려면 실력도 갖추어야죠. 공동체의 합의능력, 실행능력 그리고 소비자의 트렌드를 읽어내는 학습능력까지, 그런 역량들이 모아져야 성장합니다. 우리는 작년도에, 논산시농업기술센터 공모사업인 <농촌어르신복지실천시범사업>에 선정되었습니다. 마을회관 뒤편에 250평 시설하우스를 신축하여 공동작업 공간부터 확보했지요. 첫해에는 고추재배를, 올해에는 꽃잔디, 잔디패랭이 등 화훼재배에 도전했습니다.

돈 버는 일이 어디 쉽나요? 난이도가 높은 경제사업이기에 중간중간 어려움에 직면하곤 했습니다. 그 어려움을 하나하나 극복하는 과정에서 보다 세련된 공동체정신이 발현되더군요. 


지역화폐는 품앗이 정신에서 비롯된 거 같은데, 요즘 지역화폐는 지자체보조금, 할인만 부각되는 거 같아요. 


우리 선조들의 두레와 품앗이는 하나라고 봅니다. 현대는 IT기술이 발달하면서 웹 3.0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SNS로 소통하면서 취향에 따라 커뮤니티를 형성하다 보면, 이 안에서 화폐경제도 자연스레 형성됩니다. 이를 ‘커뮤니티 이코노미’라 하더군요. 우리 마을도 다양한 도전을 통해 마을 커뮤니티 이코노미를 조성하려 노력 중입니다. 

마을경제사업은 하루이틀 해서 될 일이 아니라 장기적인 전략과제잖아요? 이제 걸음마 단계인 우리 마을 경제사업이 다음 단계에 진입하여 일터·삶터·쉼터가 있는 마을공동체로 성장하고 정착되면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마을주민이 직접 쓴 글씨를 서각하여 마을회관 현판으로 달았다.


✔ 4=모든 것은 주민의 손끝에서, 사람


지금까지 세 가지를 이야기했네요. 키워드로 본다면 문화·환경·경제인데요, 시골에서 이 일을 누가 다 하나요? 지도자의 의지도 중요하겠지만.... 그 많은 소는 대체 누가 키우나요?^


‘인사가 만사’라고 하듯 문화·환경·경제는 결국 사람에게서 나오는 거 아니겠어요? 마을공동체 문화를 만들고, 탄소중립을 실천하고, 커뮤니티 이코노미를 조성하는 것은 결국 우리 주민 손끝에서 시작됩니다. 우리 동네의 창조적 혁신을 위하여서 여러 프로그램을 유치, 가동하였습니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마을주민들이 재미를 느끼기도 하고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기도 하더군요. 시간이 흐르면 재미와 취미가 숙성되어 마을공동체의 취향으로 부상되겠지요. 저는, 이 취향이 바로 새롭게 합의된 마을공동체정신이 될 거라고 봅니다. 


시골에는 젊은 친구들이 아예 발을 들여놓으려 하지 않는 데도 말인가요?


MZ세대를 취향세대라고 합니다. 취향에 맞기만 하면 자신의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세대! 그들은 개인이든 집단이든 간에 상대방이 덕후, 전문가가 아니면 승복은커녕 돌아보려고도 하지 않죠. 우리 마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우리 마을의 취향이 제대로 모습을 갖추고 매력으로 드러나면, 젊은 세대에게도 어필하는 매력을 품은 마을이 된다면 MZ세대와 관계맺기도 어렵지 않게 되겠지요. 

그런 행운과 만나기 위해서라도 우리 마을사업의 중심에는 특정인 몇이 아니라 주민이 다함께 있습니다. 마을주민들이 자신의 삶을 즐기고, 나아가 젊은 세대와 소통하고 공감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어가고 있다고 보셔도 좋을 거 같네요~^


지금까지 이야기해주신 4대 핵심제언 의미심장하게 들었습니다. 부인리 이야기를 듣다보니 천년의 전통이 천년의 미래로 이어질 수 있겠다 싶군요. 


마을사업을 하다 보면 자주 접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어르신은 편안하고, 젊은이는 땀 흘려 일하며, 아이들이 뛰노는 지속가능한 마을공동체> 그 시작은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는 것이고, 이를 진일보하여 경제적 기회로 만들어가는 작업일 겁니다. 

이런 기초를 다진 다음에 입소문도 나고 하여서 젊은 세대와 관계를 형성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금상첨화, 이렇게까지 도약한다면 우리 농촌마을이 직면하고 있는 고령화·지방소멸은 우리에게 큰 기회로 다가올 거라고 믿습니다.  


- 이진영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