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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룡시가 ‘왕대리 백중놀이’를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별도의 보유자와 보유단체·전승교육사를 인정한 것에 대해 "지정 논리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계룡시는 2024년 1월, 1991년부터 충청남도 무형유산 제14호로 지정·보호되어 온 '연산 백중놀이'와 실질적으로 동일한 전승 내용을 '왕대리 백중놀이'라는 이름의 ‘향토문화유적(기사에서는 ’향토문화유산‘으로 통칭) 제10호’로 지정 고시하고, 같은 해 6월 보유자·보유단체·전승교육사를 인정한 것에 대하여 연산 백중놀이 보존회가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작되었다. 연산 백중놀이 보존회에 따르면 계룡시는 '왕대리 백중놀이'를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오류를 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 계룡시 자신의 조례가 정한 지정 요건 위반
- <무형유산의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 (무형유산법)이 금지하는 법정 명칭의 무단 사용
- 국가무형유산 인정서 서식의 오용
- 인정 요건을 원천적으로 충족할 수 없는 사후 훈령에 의한 인정
- 이해충돌 상태의 심의와 위원 정수 초과
- 지정 심의 참여 당사자에게 예산이 귀속되는 구조 등의 문제
특히, 계룡시는 2023년 09월 <계룡시 왕대리 백중놀이 향토문화유적 지정가치조사 연구용역>을 마치고, 같은해 12월 1일 지정 심의를 개최했다. 그런데 지정 심의 과정이 연구용역 결과와는 무관하게 진행됐다. 따라서 본지는 어떠한 논리적 결함과 불명확한 사실 및 어떤 오용·위반이 있었는지 심층 취재·분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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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백중놀이 공연 모습

왕대리백중놀이 공연 모습
■ 논리적 결함과 불명확한 사실들
전문가 의견에 따르면 계룡시가 ‘왕대리 백중놀이’를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별도의 보유자와 보유단체·전승교육사를 인정한 것에 대해 "지정 논리가 서로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계룡시가 발주한 연구용역은 ‘연산 백중놀이’가 왕대리에서 행해지던 합두레먹이를 복원해 만든 공연예술이라고 밝혔다. 왕대리가 연산 백중놀이의 역사적 발생지라는 사실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왕대리 백중놀이는 연산 백중놀이와 다른 문화유산이므로 계룡시 향토문화유산으로 별도 지정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두 놀이는 같은 역사적 뿌리에서 나왔다”고 설명하면서도, 실제 지정에서는 “서로 다른 무형유산”으로 판단한 셈이다.
연구용역과 관련 자료를 검토한 결과, 왕대리 합두레먹이의 역사·학술적 가치와 현존 유물의 보존 필요성은 충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를 연산 백중놀이와 별개의 무형유산으로 지정하고 보유자까지 인정할 만한 근거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왕대리 합두레먹이의 문화적 가치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계룡시 연구용역은 왕대리 전승을 단순한 백중날 공연이 아니라 조선 후기 두레 공동노동과 두레먹이 전통, 김국광 묘소, 광산김씨 문중, 인근 마을과의 관계를 포함한 지역 공동체 문화로 분석했다.
왕대리는 여러 마을의 두레를 이끌던 ‘선생두레’이자 ‘도좌상’ 마을이었다. 백중 무렵이면 인근 마을 주민들이 농기를 들고 왕대리에 모여 김국광 묘소를 참배하고, 국밥과 막걸리를 나누며 큰 잔치를 벌였다.
왕대리에는 지금도 용기와 꿩장목, 방울, 왕대, 농기지주 등이 남아 있다. 특히 방울을 단 농기와 농기 부속품이 한꺼번에 보존된 사례는 드물어 민속자료로서 가치가 크다는 평가다.
따라서 왕대리 합두레먹이의 역사와 관련 유물·공간을 계룡시 향토유산으로 보호하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 검토자료의 판단이다.
"논란은 왕대리 문화의 가치가 아니라,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지정했느냐에 있다."
■ “연산 백중놀이는 왕대리 합두레먹이를 복원한 공연”
계룡시 연구용역은 연산 백중놀이와 왕대리 합두레먹이의 관계를 분명하게 설명했다.
보고서 52쪽에는 “연산백중놀이는 왕대리 합두레먹이를 복원한 공연예술”이라고 적혀 있다.
연산 백중놀이는 왕대리를 중심으로 연산면 일대에서 행해졌던 민속놀이로, 1942년 중단됐다. 이후 왕대리 주민을 포함한 원로들의 고증을 거쳐 1989년 다시 만들어졌다.
연산 백중놀이는 1990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받고, 1991년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됐다.
국가유산포털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도 연산 백중놀이가 왕대리를 중심으로 연산면 일대에서 전승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왕대리는 기존 충남도 무형유산의 기원과 전승지역에 이미 포함된 것이다.
그렇다면 계룡시가 왕대리 백중놀이를 별도의 무형유산으로 지정하려면 연산 백중놀이와 무엇이 다른지를 분명하게 밝혀야 되는데, 그것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두 놀이가 별개의 무형유산이라면 최소한 전승계보와 공연 순서, 가락·춤·복식·의례, 전승공동체 등에서 뚜렷한 차이가 확인돼야 한다. 그러나 연구용역에는 두 종목을 구분할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지 않았다.
오히려 두 놀이는 역사적 기원과 주요 연행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 왕대리 합두레먹이가 공통의 뿌리이며, 왕대리의 도좌상기와 기세배, 김국광 묘소 참배, 효자·효부 포상, 불효자 징벌, 머슴놀이 등이 연산 백중놀이의 핵심 내용으로 이어졌다.
보존회가 공연 내용을 비교한 결과에서도 왕대리 백중놀이 여덟 마당 가운데 일곱 마당이 연산 백중놀이와 같거나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엄사예술단이 발행한 책자에 실린 공연 사설도 연산 백중놀이의 “연산골이 복을 받아”를 “왕대리가 복을 받고”로, “우리 동리 만만세”를 “계룡시 만만세”로 바꾼 형태다.
현재 공개된 자료만 보면 왕대리 백중놀이는 연산 백중놀이와 별개의 종목이라기보다 연산 백중놀이의 역사적 원형 또는 지역적 재현에 가깝다는 것이다.
연구용역 스스로도 선생두레와 쌍용기가 왕대리 한 마을이 아니라 임리·향교골 등 연산 권역 여러 마을이 공유한 두레 문화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왕대리의 상징으로 내세워진 요소들이 실은 연산 일대의 공동 유산이라는 뜻이다.
■ ‘역사적 원형’과 ‘현재 공연’ 뒤섞여
연구용역은 세 가지 대상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첫째는 1942년 이전 왕대리에서 실제 행해졌던 합두레먹이다. 둘째는 1989년 복원돼 충남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연산 백중놀이다. 셋째는 엄사예술단 등이 현재 공연하는 왕대리 백중놀이 또는 창작공연 ‘왕대리락’이다.
연구용역은 왕대리 합두레먹이가 1942년 중단됐고, 마을 단위 두레먹이도 1970년대 무렵 사라졌다고 밝혔다. 당시 합두레먹이를 직접 경험한 주민들도 대부분 세상을 떠난 상태다.
농신제와 액풀이, 머슴 포상 등 일부 순서가 실제 왕대리 합두레먹이에 있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연구용역은 이 같은 내용이 연산 백중놀이를 공연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추가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보고서는 현재 공연되는 ‘왕대리락’도 전통 원형이 아닌 ‘창작공연’으로 표현했다.
그렇다면 계룡시가 지정한 왕대리 백중놀이가 과거 합두레먹이의 복원인지, 연산 백중놀이에서 다시 파생된 공연인지, 왕대리락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창작 종목인지부터 분명히 해야하는데 그것이 불명확하다.
■ 전승 끊겼는데 보유자는 누구에게 배웠나
무형유산은 오래된 물건이나 장소와 달리 사람과 공동체를 통해 이어지는 전승이 중요하다.
그러나 왕대리 합두레먹이는 1942년 중단됐고, 마을 풍장도 사라졌다. 연구용역도 “합두레먹이는 이미 소멸됐다”며 옛 내용을 모두 담아 복원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계룡시가 김재범 씨를 보유자로 인정한 근거도 공개돼야 한다.
보유자를 인정하려면 누구에게서 어떤 내용과 기능을 전수받았는지, 어느 기간 동안 전승 활동을 했는지, 과거 놀이와 현재 공연이 얼마나 같은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심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공개된 자료에서는 김 씨가 1990년 연산 백중놀이의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출연 당시 지도를 맡았다는 사실은 확인되지만, 왕대리 합두레먹이의 독립적인 전승계보를 이어받았다는 자료는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았다.
적어도 ▲1942년 이전 연행과 현재 공연의 비교표 ▲1989년 연산 백중놀이와 현재 왕대리 백중놀이의 비교표 ▲보유자의 전승계보 ▲기능·예능 심사 결과 ▲왕대리 주민 참여 현황 ▲전문가 현장조사와 실연평가 자료가 공개돼야 한다.
이러한 자료 없이 보유자와 보유단체·전승교육사·이수자까지 인정했다면 지정의 실질적인 타당성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연구용역에는 ‘가능성이 있다’, ‘추정된다’, ‘보인다’는 표현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왕대리 합두레먹이가 17세기 이후 만들어졌을 가능성, 김국광 묘소의 제사가 합두레먹이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 광산김씨 문중의 토지경영이 대규모 합두레먹이의 기반이 됐다는 내용 등은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연구자의 해석이다.
왕대리에 과거 쌍용기가 존재했는지, 현재 남아 있는 농기의 ‘을미년’이 1955년을 뜻하는지, 농신제와 액풀이가 원래 왕대리 전승에 포함됐는지도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이러한 추정은 왕대리의 역사와 향토적 가치를 해석하는 자료로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별도의 무형유산을 만들고 특정인을 보유자로 인정하는 직접적인 증거로 사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 중복 지정 모두가 불법인 것은 아니지만…
같은 역사와 관련된 문화유산을 여러 방식으로 보호하는 것 자체가 모두 불법은 아니다.
예를 들어 충남도는 ‘연산 백중놀이’라는 공연과 전승공동체를 무형유산으로 보호하고, 계룡시는 왕대리에 남아 있는 용기·꿩장목·방울·왕대 등을 향토유형유산으로 지정할 수 있다.
합두레먹이가 열렸던 깃대배기와 농기지주, 김국광 묘소 주변의 연행공간을 향토기념유산이나 역사문화공간으로 보호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처럼 보호 대상이 다르면 중복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는 지정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연산 백중놀이와 실질적으로 같은 공연을 또 하나의 무형유산으로 지정하고, 별도의 보유자와 전승단체를 운영하는 경우다.
계룡시 조례는 향토문화유산을 국가나 충남도가 지정하지 않은 문화유산으로 규정하고 있다. 왕대리 백중놀이가 연산 백중놀이와 같은 대상이라면 조례가 정한 지정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별개의 대상이라면 전승계보와 공연 내용, 보유단체, 보호 범위가 어떻게 다른지를 계룡시가 입증해야 한다.
이번 지정이 곧바로 무효라고 단정하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상위법이 모든 중복 지정을 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고, 왕대리 합두레먹이의 역사·학술적 가치와 관련 유물의 보존 필요성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처럼 연산 백중놀이와 왕대리 백중놀이를 각각 별개의 무형유산으로 두고, 별도의 보유자와 전승체계를 운영하는 방식은 법적·행정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검토자료의 결론이다.
특히 계룡시가 보유자 등을 인정한 조례상 근거가 있는지, 국가와 충남도 무형유산에서 사용하는 ‘보유자·전승교육사·이수자’라는 명칭을 기초자치단체가 사용할 수 있는지는 별도의 법적 검토가 필요하다.
지정 전체의 당연무효를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지정 대상을 변경하거나 재심의할 필요성은 높다는 것이다.
■ 유물·장소 중심으로 다시 지정해야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으로는 무형 종목의 중복 지정 대신 왕대리에 남아 있는 유물과 장소를 중심으로 보호 대상을 다시 정하는 방안이 제시된다.
왕대리 합두레먹이의 역사적 가치와 함께 용기·꿩장목·방울·왕대·농기지주·사진·구술기록·연행공간 등을 ‘왕대리 합두레먹이 관련 유산 일괄’로 지정하는 방식이다.
연산 백중놀이는 기존 충남도 무형유산으로 전승하되, 왕대리 주민이 참여하는 공동 전승이나 교류 방안을 마련할 수도 있다.
실제 다른 지역에서는 시·군 향토문화유산이 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되면 기존 향토문화유산 지정을 해제해 이중 관리와 이중 지원을 막은 사례가 있다.
담양군의 ‘부채장’은 2007년 군 향토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지만, 2010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48호로 지정되면서 군 지정을 해제했다.
이는 같은 종목을 두 단계에서 동시에 운영하기보다 상위 지정으로 통합해 보유자와 전승체계, 예산 지원을 정리한 사례다.
계룡시가 왕대리 백중놀이의 별도 지정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면 그 근거를 시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충남도와 논산시에 사전 의견을 물었는지, 1991년 연산 백중놀이 지정 당시 종목 범위와 전승지역을 확인했는지, 두 종목의 동일성을 검토했는지, 법률자문을 받았는지 밝혀야 한다.
향토문화유산 보호위원회 회의록과 보유자 심사자료, 전문가 실연평가 결과도 공개할 필요가 있다.
이번 논란은 왕대리 문화의 가치를 인정할 것이냐는 문제가 아니다. 왕대리 합두레먹이의 역사와 유물은 충분히 보호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역사적 발생지가 같고 핵심 공연 내용까지 겹치는 유산을 별개의 무형유산으로 다시 지정하려면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과 근거가 있어야 한다.
계룡시는 왕대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제대로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현재 지정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무형 종목과 유형 유물·연행공간을 구분해 보호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 전영주 편집장
계룡시가 ‘왕대리 백중놀이’를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별도의 보유자와 보유단체·전승교육사를 인정한 것에 대해 "지정 논리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계룡시는 2024년 1월, 1991년부터 충청남도 무형유산 제14호로 지정·보호되어 온 '연산 백중놀이'와 실질적으로 동일한 전승 내용을 '왕대리 백중놀이'라는 이름의 ‘향토문화유적(기사에서는 ’향토문화유산‘으로 통칭) 제10호’로 지정 고시하고, 같은 해 6월 보유자·보유단체·전승교육사를 인정한 것에 대하여 연산 백중놀이 보존회가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작되었다.
연산 백중놀이 보존회에 따르면 계룡시는 '왕대리 백중놀이'를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오류를 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계룡시는 2023년 09월 <계룡시 왕대리 백중놀이 향토문화유적 지정가치조사 연구용역>을 마치고, 같은해 12월 1일 지정 심의를 개최했다. 그런데 지정 심의 과정이 연구용역 결과와는 무관하게 진행됐다.
따라서 본지는 어떠한 논리적 결함과 불명확한 사실 및 어떤 오용·위반이 있었는지 심층 취재·분석하였다.
연산백중놀이 공연 모습
왕대리백중놀이 공연 모습
■ 논리적 결함과 불명확한 사실들
전문가 의견에 따르면 계룡시가 ‘왕대리 백중놀이’를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별도의 보유자와 보유단체·전승교육사를 인정한 것에 대해 "지정 논리가 서로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계룡시가 발주한 연구용역은 ‘연산 백중놀이’가 왕대리에서 행해지던 합두레먹이를 복원해 만든 공연예술이라고 밝혔다. 왕대리가 연산 백중놀이의 역사적 발생지라는 사실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왕대리 백중놀이는 연산 백중놀이와 다른 문화유산이므로 계룡시 향토문화유산으로 별도 지정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두 놀이는 같은 역사적 뿌리에서 나왔다”고 설명하면서도, 실제 지정에서는 “서로 다른 무형유산”으로 판단한 셈이다.
연구용역과 관련 자료를 검토한 결과, 왕대리 합두레먹이의 역사·학술적 가치와 현존 유물의 보존 필요성은 충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를 연산 백중놀이와 별개의 무형유산으로 지정하고 보유자까지 인정할 만한 근거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왕대리 합두레먹이의 문화적 가치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계룡시 연구용역은 왕대리 전승을 단순한 백중날 공연이 아니라 조선 후기 두레 공동노동과 두레먹이 전통, 김국광 묘소, 광산김씨 문중, 인근 마을과의 관계를 포함한 지역 공동체 문화로 분석했다.
왕대리는 여러 마을의 두레를 이끌던 ‘선생두레’이자 ‘도좌상’ 마을이었다. 백중 무렵이면 인근 마을 주민들이 농기를 들고 왕대리에 모여 김국광 묘소를 참배하고, 국밥과 막걸리를 나누며 큰 잔치를 벌였다.
왕대리에는 지금도 용기와 꿩장목, 방울, 왕대, 농기지주 등이 남아 있다. 특히 방울을 단 농기와 농기 부속품이 한꺼번에 보존된 사례는 드물어 민속자료로서 가치가 크다는 평가다.
따라서 왕대리 합두레먹이의 역사와 관련 유물·공간을 계룡시 향토유산으로 보호하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 검토자료의 판단이다.
"논란은 왕대리 문화의 가치가 아니라,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지정했느냐에 있다."
■ “연산 백중놀이는 왕대리 합두레먹이를 복원한 공연”
계룡시 연구용역은 연산 백중놀이와 왕대리 합두레먹이의 관계를 분명하게 설명했다.
보고서 52쪽에는 “연산백중놀이는 왕대리 합두레먹이를 복원한 공연예술”이라고 적혀 있다.
연산 백중놀이는 왕대리를 중심으로 연산면 일대에서 행해졌던 민속놀이로, 1942년 중단됐다. 이후 왕대리 주민을 포함한 원로들의 고증을 거쳐 1989년 다시 만들어졌다.
연산 백중놀이는 1990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받고, 1991년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됐다.
국가유산포털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도 연산 백중놀이가 왕대리를 중심으로 연산면 일대에서 전승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왕대리는 기존 충남도 무형유산의 기원과 전승지역에 이미 포함된 것이다.
그렇다면 계룡시가 왕대리 백중놀이를 별도의 무형유산으로 지정하려면 연산 백중놀이와 무엇이 다른지를 분명하게 밝혀야 되는데, 그것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두 놀이가 별개의 무형유산이라면 최소한 전승계보와 공연 순서, 가락·춤·복식·의례, 전승공동체 등에서 뚜렷한 차이가 확인돼야 한다. 그러나 연구용역에는 두 종목을 구분할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지 않았다.
오히려 두 놀이는 역사적 기원과 주요 연행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 왕대리 합두레먹이가 공통의 뿌리이며, 왕대리의 도좌상기와 기세배, 김국광 묘소 참배, 효자·효부 포상, 불효자 징벌, 머슴놀이 등이 연산 백중놀이의 핵심 내용으로 이어졌다.
보존회가 공연 내용을 비교한 결과에서도 왕대리 백중놀이 여덟 마당 가운데 일곱 마당이 연산 백중놀이와 같거나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엄사예술단이 발행한 책자에 실린 공연 사설도 연산 백중놀이의 “연산골이 복을 받아”를 “왕대리가 복을 받고”로, “우리 동리 만만세”를 “계룡시 만만세”로 바꾼 형태다.
현재 공개된 자료만 보면 왕대리 백중놀이는 연산 백중놀이와 별개의 종목이라기보다 연산 백중놀이의 역사적 원형 또는 지역적 재현에 가깝다는 것이다.
연구용역 스스로도 선생두레와 쌍용기가 왕대리 한 마을이 아니라 임리·향교골 등 연산 권역 여러 마을이 공유한 두레 문화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왕대리의 상징으로 내세워진 요소들이 실은 연산 일대의 공동 유산이라는 뜻이다.
■ ‘역사적 원형’과 ‘현재 공연’ 뒤섞여
연구용역은 세 가지 대상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첫째는 1942년 이전 왕대리에서 실제 행해졌던 합두레먹이다. 둘째는 1989년 복원돼 충남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연산 백중놀이다. 셋째는 엄사예술단 등이 현재 공연하는 왕대리 백중놀이 또는 창작공연 ‘왕대리락’이다.
연구용역은 왕대리 합두레먹이가 1942년 중단됐고, 마을 단위 두레먹이도 1970년대 무렵 사라졌다고 밝혔다. 당시 합두레먹이를 직접 경험한 주민들도 대부분 세상을 떠난 상태다.
농신제와 액풀이, 머슴 포상 등 일부 순서가 실제 왕대리 합두레먹이에 있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연구용역은 이 같은 내용이 연산 백중놀이를 공연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추가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보고서는 현재 공연되는 ‘왕대리락’도 전통 원형이 아닌 ‘창작공연’으로 표현했다.
그렇다면 계룡시가 지정한 왕대리 백중놀이가 과거 합두레먹이의 복원인지, 연산 백중놀이에서 다시 파생된 공연인지, 왕대리락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창작 종목인지부터 분명히 해야하는데 그것이 불명확하다.
■ 전승 끊겼는데 보유자는 누구에게 배웠나
무형유산은 오래된 물건이나 장소와 달리 사람과 공동체를 통해 이어지는 전승이 중요하다.
그러나 왕대리 합두레먹이는 1942년 중단됐고, 마을 풍장도 사라졌다. 연구용역도 “합두레먹이는 이미 소멸됐다”며 옛 내용을 모두 담아 복원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계룡시가 김재범 씨를 보유자로 인정한 근거도 공개돼야 한다.
보유자를 인정하려면 누구에게서 어떤 내용과 기능을 전수받았는지, 어느 기간 동안 전승 활동을 했는지, 과거 놀이와 현재 공연이 얼마나 같은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심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공개된 자료에서는 김 씨가 1990년 연산 백중놀이의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출연 당시 지도를 맡았다는 사실은 확인되지만, 왕대리 합두레먹이의 독립적인 전승계보를 이어받았다는 자료는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았다.
적어도 ▲1942년 이전 연행과 현재 공연의 비교표 ▲1989년 연산 백중놀이와 현재 왕대리 백중놀이의 비교표 ▲보유자의 전승계보 ▲기능·예능 심사 결과 ▲왕대리 주민 참여 현황 ▲전문가 현장조사와 실연평가 자료가 공개돼야 한다.
이러한 자료 없이 보유자와 보유단체·전승교육사·이수자까지 인정했다면 지정의 실질적인 타당성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연구용역에는 ‘가능성이 있다’, ‘추정된다’, ‘보인다’는 표현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왕대리 합두레먹이가 17세기 이후 만들어졌을 가능성, 김국광 묘소의 제사가 합두레먹이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 광산김씨 문중의 토지경영이 대규모 합두레먹이의 기반이 됐다는 내용 등은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연구자의 해석이다.
왕대리에 과거 쌍용기가 존재했는지, 현재 남아 있는 농기의 ‘을미년’이 1955년을 뜻하는지, 농신제와 액풀이가 원래 왕대리 전승에 포함됐는지도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이러한 추정은 왕대리의 역사와 향토적 가치를 해석하는 자료로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별도의 무형유산을 만들고 특정인을 보유자로 인정하는 직접적인 증거로 사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 중복 지정 모두가 불법인 것은 아니지만…
같은 역사와 관련된 문화유산을 여러 방식으로 보호하는 것 자체가 모두 불법은 아니다.
예를 들어 충남도는 ‘연산 백중놀이’라는 공연과 전승공동체를 무형유산으로 보호하고, 계룡시는 왕대리에 남아 있는 용기·꿩장목·방울·왕대 등을 향토유형유산으로 지정할 수 있다.
합두레먹이가 열렸던 깃대배기와 농기지주, 김국광 묘소 주변의 연행공간을 향토기념유산이나 역사문화공간으로 보호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처럼 보호 대상이 다르면 중복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는 지정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연산 백중놀이와 실질적으로 같은 공연을 또 하나의 무형유산으로 지정하고, 별도의 보유자와 전승단체를 운영하는 경우다.
계룡시 조례는 향토문화유산을 국가나 충남도가 지정하지 않은 문화유산으로 규정하고 있다. 왕대리 백중놀이가 연산 백중놀이와 같은 대상이라면 조례가 정한 지정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별개의 대상이라면 전승계보와 공연 내용, 보유단체, 보호 범위가 어떻게 다른지를 계룡시가 입증해야 한다.
이번 지정이 곧바로 무효라고 단정하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상위법이 모든 중복 지정을 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고, 왕대리 합두레먹이의 역사·학술적 가치와 관련 유물의 보존 필요성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처럼 연산 백중놀이와 왕대리 백중놀이를 각각 별개의 무형유산으로 두고, 별도의 보유자와 전승체계를 운영하는 방식은 법적·행정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검토자료의 결론이다.
특히 계룡시가 보유자 등을 인정한 조례상 근거가 있는지, 국가와 충남도 무형유산에서 사용하는 ‘보유자·전승교육사·이수자’라는 명칭을 기초자치단체가 사용할 수 있는지는 별도의 법적 검토가 필요하다.
지정 전체의 당연무효를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지정 대상을 변경하거나 재심의할 필요성은 높다는 것이다.
■ 유물·장소 중심으로 다시 지정해야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으로는 무형 종목의 중복 지정 대신 왕대리에 남아 있는 유물과 장소를 중심으로 보호 대상을 다시 정하는 방안이 제시된다.
왕대리 합두레먹이의 역사적 가치와 함께 용기·꿩장목·방울·왕대·농기지주·사진·구술기록·연행공간 등을 ‘왕대리 합두레먹이 관련 유산 일괄’로 지정하는 방식이다.
연산 백중놀이는 기존 충남도 무형유산으로 전승하되, 왕대리 주민이 참여하는 공동 전승이나 교류 방안을 마련할 수도 있다.
실제 다른 지역에서는 시·군 향토문화유산이 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되면 기존 향토문화유산 지정을 해제해 이중 관리와 이중 지원을 막은 사례가 있다.
담양군의 ‘부채장’은 2007년 군 향토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지만, 2010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48호로 지정되면서 군 지정을 해제했다.
이는 같은 종목을 두 단계에서 동시에 운영하기보다 상위 지정으로 통합해 보유자와 전승체계, 예산 지원을 정리한 사례다.
계룡시가 왕대리 백중놀이의 별도 지정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면 그 근거를 시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충남도와 논산시에 사전 의견을 물었는지, 1991년 연산 백중놀이 지정 당시 종목 범위와 전승지역을 확인했는지, 두 종목의 동일성을 검토했는지, 법률자문을 받았는지 밝혀야 한다.
향토문화유산 보호위원회 회의록과 보유자 심사자료, 전문가 실연평가 결과도 공개할 필요가 있다.
이번 논란은 왕대리 문화의 가치를 인정할 것이냐는 문제가 아니다. 왕대리 합두레먹이의 역사와 유물은 충분히 보호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역사적 발생지가 같고 핵심 공연 내용까지 겹치는 유산을 별개의 무형유산으로 다시 지정하려면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과 근거가 있어야 한다.
계룡시는 왕대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제대로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현재 지정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무형 종목과 유형 유물·연행공간을 구분해 보호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 전영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