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단지 중심 성장정책 넘어 ‘사람이 머무는 도시’로 전환해야
대교·화지·반월동의 오래된 골목과 건물, 혁신의 자산으로 활용
청년·소상공인·크리에이터가 함께 성장하는 ‘논산형 로컬 생태계’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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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산시 인구는 2026년 6월 기준 10만5977명이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34.2%에 이른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지역소멸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논산이 당장 풀어야 할 현실적인 과제가 됐다. 그동안 논산의 지역발전 정책은 ‘산업을 먼저 만들면 일자리가 생기고, 일자리를 따라 사람이 들어온다’는 전제 위에서 추진돼 왔다. 논산시와 인근 지역에 국방 관련 기관과 교육·연구기관이 집적된 여건을 활용해 국방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하고, 국방특화클러스터를 구축하려는 정책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산업 유치와 기반시설 확충을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수도권은 국토 면적의 11.8%에 불과하지만 인구의 50.6%, 국내총생산의 53%가 집중돼 있다. 전국 229개 기초지방자치단체 가운데 141곳, 61.5%가 소멸 위험에 놓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공공기관 이전을 통해 조성된 일부 혁신도시조차 정주 기반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서 직원들이 주말이면 수도권 집으로 돌아가고, 지역 상권도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반복되는 것일까. 산업과 공공기관을 유치하는 데 집중한 나머지, 정작 그 산업이 지역 안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도시환경을 조성하는 데는 충분히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제기된다. 이번호 [표지초대석]에서는 김종욱 충남도의원을 만나 산업단지 중심의 지역발전 정책을 넘어, 청년과 창업가·소상공인·문화예술인이 머물며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가는 도시정책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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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만 있다고 청년이 머무는 것은 아니다”
김종욱 의원은 지역소멸의 원인을 단순히 일자리 부족만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살고 싶어 하는 도시를 조성하지 못하면 청년 인구의 유출을 막기 어렵다는 것이다.
“청년들이 서울을 떠나지 않는 이유를 일자리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일자리가 있어도 살고 싶지 않은 도시라면 청년은 머물지 않습니다. 지방이 수도권과의 격차를 좁히려면 기업과 일자리를 유치하는 것과 함께 청년들이 살고 싶어 하는 동네를 만들어야 합니다.”
김 의원이 말하는 ‘산업을 만드는 도시’는 대규모 산업단지나 고층 건물로 채워진 도시와는 다르다. 도시 안에 다양한 사람이 모이고, 작은 도전과 실험을 이어갈 수 있으며, 소규모 사업자가 감당할 만한 공간이 충분히 존재하는 도시다.
김 의원은 전면적인 재개발 등을 통해 도시를 획일화하면 오히려 도시의 다양성이 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건물이 커지고 임대료가 오르면 작은 가게와 창작공간이 들어설 여지가 줄어들고, 자연스럽게 형성돼야 할 골목의 생태계도 무너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소규모 건물과 오래된 골목은 낙후된 공간으로만 볼 것이 아닙니다. 임대료가 비교적 낮고 다양한 공간 기획이 가능하기 때문에 청년과 소상공인, 창작자들이 새로운 사업을 시험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공간이 사라지면 브랜드를 만들어 내는 골목은 없어지고, 이미 만들어진 브랜드를 소비하는 거리만 남게 됩니다.”
대형 프랜차이즈와 획일화된 상업시설만으로는 지역 고유의 산업과 브랜드를 만들어 내기 어렵다는 것이 김 의원의 판단이다. 지역만의 새로운 산업은 대규모 개발사업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시 안에서 수많은 작은 실험이 축적되며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오래된 골목에서 태어난 새로운 산업
김 의원은 서울 성수동과 홍대, 이태원, 연남동, 연희동 등을 도시가 산업을 만들어 낸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이들 지역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처음부터 계획해 조성한 상권이 아니라, 낡은 건물과 좁은 골목에 소상공인과 창작자들이 모여들면서 자생적으로 성장한 산업 생태계라는 설명이다.
“2000년대 이후 소상공인 브랜드 생태계로 성장한 성수동과 홍대, 이태원, 연남동, 연희동은 정부가 설계한 도시가 아닙니다. 수많은 크리에이터와 소상공인이 오래된 건물과 골목에서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며 스스로 만들어 낸 산업 생태계입니다.”
성수동은 준공업지역의 붉은 벽돌 공장과 수제화 공방이 밀집했던 지역이다. 비교적 낮은 임대료와 많은 소규모 건물을 기반으로 2011년 대림창고를 시작으로 카페와 편집숍, 문화공간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오래된 공장과 창고는 철거 대상이 아니라 성수동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자산이 됐다.
연희동 역시 단독주택과 저층 건물이 밀집한 평범한 주거지역에서 출발했다. 2003년 제니스커피하우스를 시작으로 카페가 들어섰고 노아스로스팅, 폴앤폴리나와 같은 로컬 카페·베이커리, 유어마인드와 같은 독립서점이 뒤를 이으며 독특한 동네의 색깔을 만들었다.
이 같은 현상은 수도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전 성심당은 원도심의 오래된 건물에서 시작해 지역경제를 이끄는 대표 브랜드로 성장했고, 대전을 상징하는 베이커리 산업의 중심이 됐다. 강릉의 테라로사와 보헤미안 박이추 커피 역시 지역의 소규모 건축 환경과 문화적 자산을 기반으로 강릉을 대표하는 커피산업 생태계를 만들어 냈다.
“이들 지역과 브랜드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오래된 건물과 소규모 공간이 모여 있는 동네에서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작은 공간이 있었기 때문에 누구나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도전할 수 있었고, 여러 사업자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산업 생태계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골목상권을 넘어 ‘크리에이터 타운’으로
지역발전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일부 골목상권이 단순한 소비 공간을 넘어 새로운 브랜드와 콘텐츠를 생산하는 ‘크리에이터 타운’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논산을 비롯한 지방 소도시에서는 이러한 크리에이터 타운이 자생적으로 형성되기 어려운 구조가 존재한다. 김 의원은 가장 큰 원인으로 ‘크리에이터를 지속적으로 배출하는 기반의 부족’을 꼽았다.
“서울의 크리에이터 타운에는 사람과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학교와 커뮤니티가 있었습니다. 홍대에는 미술대학을 중심으로 한 예술인 생태계가 있었고, 이태원에는 외국인 커뮤니티가 있었습니다. 성수동에는 한양대학교와 소셜벤처 커뮤니티가 있었습니다."
반면 지방 소도시는 새로운 사업을 시도하려는 청년이 있어도 기술을 배우고 실험할 공간이 부족하다. 함께 아이디어를 나누고 협업할 동료를 만나기도 어렵다. 청년창업 지원사업이 개별 사업자에게 단기간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데 그칠 경우, 지속적인 지역 생태계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김 의원은 "그러나 다행히 논산에는 '건양대'와 '금강대'가 있습니다. 두 대학을 단순한 인력 양성기관이나 사업 수행기관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지역의 문제를 대학의 배움으로 연결하고, 그 배움을 다시 논산의 변화로 돌려놓아야 합니다."
"또한 지역문제 해결과 지역인재 양성이라는 공동 목표 아래 문제 발굴, 교육과 연구, 현장 적용과 평가 등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면 하나의 협력 경험이 다음 교육과 정책의 자산으로 축적돼 '크리에이터 타운'으로 형성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논산시와 같은 지방 소도시가 보유한 고유 자원을 브랜드와 산업으로 연결하지 못하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논산에는 서울에 없는 자원이 많습니다. 돈암서원과 명재고택, 종학당과 관촉사, 계백장군유적지와 강경근대역사문화거리 등 풍부한 역사문화유산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원이 일회성 관광상품으로 소비될 뿐, 로컬 브랜드의 원천이나 지역 크리에이터의 창작 기반으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역 자원이 지역 브랜드로 발전하지 못하면 지방의 상권은 결국 수도권과 똑같은 프랜차이즈로 채워진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상권이 형성되면서 지역 고유의 정체성은 약해지고, 관광객이나 청년이 찾아오고 머물 이유도 사라지게 된다는 설명이다.

대교·화지·반월동, 낙후된 원도심 아닌 ‘혁신의 토양’
김 의원은 논산의 대교동과 화지동, 반월동 등 원도심을 바라보는 관점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래된 건물과 좁은 골목을 무조건 철거하고 새로 짓는 개발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새로운 콘텐츠와 브랜드가 탄생할 수 있는 자산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이 도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도시가 산업을 만든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대교동과 화지동, 반월동에 남아 있는 오래된 건물과 소규모 공간,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형성한 분업 생태계는 낙후의 흔적이 아니라 혁신의 토양이 될 수 있습니다.”
김 의원의 주장은 명료했다.
논산 원도심을 살리기 위해서는 거리 정비나 건물 외관 개선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공간 안에서 실제로 활동할 사람을 키우고, 그들이 제품과 콘텐츠를 만들며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원도심의 공간을 활용해 청년 창업가와 예술가, 로컬푸드 생산자, 디자이너, 콘텐츠 제작자들이 낮은 비용으로 입주하고 협업하도록 돕는다면 논산만의 새로운 상권과 산업이 형성될 수 있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한 건물 리모델링이나 거리 정비를 넘어 지속적으로 사람을 키우는 정책이 필요하다. 로컬 브랜드 기획과 디자인, 온라인 유통, 영상 제작, 공간 운영 등을 배울 수 있는 ‘로컬 스쿨’을 마련하고, 창업자들이 제품과 서비스를 시험할 수 있는 공유공간도 조성해야 한다.
또한 기존 주민과 상인, 건물주가 함께 참여해 임대료 상승으로 창작자와 소상공인이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예방해야 한다. 어렵게 활성화된 골목이 대형 자본과 프랜차이즈 중심의 소비 공간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장기적인 관리체계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방의 자체적인 산업을 원한다면 산업단지만 먼저 만들 것이 아니라 도시를 함께 만들어야 합니다. 기업이 들어올 부지를 마련하는 것과 동시에 그곳에서 일할 사람들이 살고, 쉬고, 문화를 즐기며 새로운 사업을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성수동을 복제하지 말고 논산만의 동네를 만들어야”
김 의원이 제안하는 해법의 핵심은 ‘로컬 브랜딩’이다. 로컬 브랜딩은 외부에서 성공한 상권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오는 것이 아니라, 잠재력 있는 동네에 그 지역만의 역사와 문화, 사람, 자원을 결합해 새로운 공간과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전략이다.
“논산의 어느 동네를 제2의 성수동으로 만들겠다는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동네가 성수동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는 만날 수 없는 그 동네만의 무언가가 되는 것입니다.”
논산은 군과 국방, 농업, 딸기, 젓갈, 전통시장, 근대건축물, 문학과 선비문화 등 다양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자원을 단순히 축제나 관광상품으로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디자인과 식품, 교육, 출판, 영상, 공연, 체험산업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지방 소도시의 도시정책은 거대한 계획보다 ‘살고 싶은 동네 하나’를 만드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방 소도시에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하나입니다. 청년이 살고 싶어 하는 동네 하나를 먼저 만드는 것입니다. 청년이 머물고 새로운 가게와 브랜드가 생기면 방문객이 찾아오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집니다.”
그동안 지방도시는 산업단지와 기업 유치를 성장의 출발점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김 의원은 이제 산업정책과 도시정책의 순서를 다시 살펴야 한다고 주문한다. 기업을 유치하는 정책과 함께 사람이 머물고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할 수 있는 도시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결국 지역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건물의 높이나 산업단지의 면적만이 아니다. 청년이 작은 공간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는지, 지역의 오래된 자원이 새로운 브랜드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지, 주민과 창작자가 함께 동네의 정체성을 만들어갈 수 있는지가 지역 경쟁력을 좌우한다.
“논산이 가진 오래된 골목과 건물, 역사와 문화는 버려야 할 과거가 아닙니다.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논산만의 자산입니다. 지역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청년들이 살고 싶고 도전하고 싶은 동네를 만드는 것, 그것이 논산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여는 출발점입니다.”
김 의원의 주장과 같이 산업을 유치하는 도시를 넘어 사람이 머물고 도전하며, 지역의 자원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도시로 전환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지속 가능한 논산의 미래를 여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 전영주 편집장
논산시 인구는 2026년 6월 기준 10만5977명이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34.2%에 이른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지역소멸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논산이 당장 풀어야 할 현실적인 과제가 됐다.
그동안 논산의 지역발전 정책은 ‘산업을 먼저 만들면 일자리가 생기고, 일자리를 따라 사람이 들어온다’는 전제 위에서 추진돼 왔다. 논산시와 인근 지역에 국방 관련 기관과 교육·연구기관이 집적된 여건을 활용해 국방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하고, 국방특화클러스터를 구축하려는 정책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산업 유치와 기반시설 확충을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수도권은 국토 면적의 11.8%에 불과하지만 인구의 50.6%, 국내총생산의 53%가 집중돼 있다. 전국 229개 기초지방자치단체 가운데 141곳, 61.5%가 소멸 위험에 놓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공공기관 이전을 통해 조성된 일부 혁신도시조차 정주 기반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서 직원들이 주말이면 수도권 집으로 돌아가고, 지역 상권도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반복되는 것일까. 산업과 공공기관을 유치하는 데 집중한 나머지, 정작 그 산업이 지역 안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도시환경을 조성하는 데는 충분히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제기된다.
이번호 [표지초대석]에서는 김종욱 충남도의원을 만나 산업단지 중심의 지역발전 정책을 넘어, 청년과 창업가·소상공인·문화예술인이 머물며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가는 도시정책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일자리만 있다고 청년이 머무는 것은 아니다”
김종욱 의원은 지역소멸의 원인을 단순히 일자리 부족만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살고 싶어 하는 도시를 조성하지 못하면 청년 인구의 유출을 막기 어렵다는 것이다.
“청년들이 서울을 떠나지 않는 이유를 일자리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일자리가 있어도 살고 싶지 않은 도시라면 청년은 머물지 않습니다. 지방이 수도권과의 격차를 좁히려면 기업과 일자리를 유치하는 것과 함께 청년들이 살고 싶어 하는 동네를 만들어야 합니다.”
김 의원이 말하는 ‘산업을 만드는 도시’는 대규모 산업단지나 고층 건물로 채워진 도시와는 다르다. 도시 안에 다양한 사람이 모이고, 작은 도전과 실험을 이어갈 수 있으며, 소규모 사업자가 감당할 만한 공간이 충분히 존재하는 도시다.
김 의원은 전면적인 재개발 등을 통해 도시를 획일화하면 오히려 도시의 다양성이 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건물이 커지고 임대료가 오르면 작은 가게와 창작공간이 들어설 여지가 줄어들고, 자연스럽게 형성돼야 할 골목의 생태계도 무너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소규모 건물과 오래된 골목은 낙후된 공간으로만 볼 것이 아닙니다. 임대료가 비교적 낮고 다양한 공간 기획이 가능하기 때문에 청년과 소상공인, 창작자들이 새로운 사업을 시험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공간이 사라지면 브랜드를 만들어 내는 골목은 없어지고, 이미 만들어진 브랜드를 소비하는 거리만 남게 됩니다.”
대형 프랜차이즈와 획일화된 상업시설만으로는 지역 고유의 산업과 브랜드를 만들어 내기 어렵다는 것이 김 의원의 판단이다. 지역만의 새로운 산업은 대규모 개발사업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시 안에서 수많은 작은 실험이 축적되며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오래된 골목에서 태어난 새로운 산업
김 의원은 서울 성수동과 홍대, 이태원, 연남동, 연희동 등을 도시가 산업을 만들어 낸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이들 지역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처음부터 계획해 조성한 상권이 아니라, 낡은 건물과 좁은 골목에 소상공인과 창작자들이 모여들면서 자생적으로 성장한 산업 생태계라는 설명이다.
“2000년대 이후 소상공인 브랜드 생태계로 성장한 성수동과 홍대, 이태원, 연남동, 연희동은 정부가 설계한 도시가 아닙니다. 수많은 크리에이터와 소상공인이 오래된 건물과 골목에서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며 스스로 만들어 낸 산업 생태계입니다.”
성수동은 준공업지역의 붉은 벽돌 공장과 수제화 공방이 밀집했던 지역이다. 비교적 낮은 임대료와 많은 소규모 건물을 기반으로 2011년 대림창고를 시작으로 카페와 편집숍, 문화공간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오래된 공장과 창고는 철거 대상이 아니라 성수동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자산이 됐다.
연희동 역시 단독주택과 저층 건물이 밀집한 평범한 주거지역에서 출발했다. 2003년 제니스커피하우스를 시작으로 카페가 들어섰고 노아스로스팅, 폴앤폴리나와 같은 로컬 카페·베이커리, 유어마인드와 같은 독립서점이 뒤를 이으며 독특한 동네의 색깔을 만들었다.
이 같은 현상은 수도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전 성심당은 원도심의 오래된 건물에서 시작해 지역경제를 이끄는 대표 브랜드로 성장했고, 대전을 상징하는 베이커리 산업의 중심이 됐다. 강릉의 테라로사와 보헤미안 박이추 커피 역시 지역의 소규모 건축 환경과 문화적 자산을 기반으로 강릉을 대표하는 커피산업 생태계를 만들어 냈다.
“이들 지역과 브랜드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오래된 건물과 소규모 공간이 모여 있는 동네에서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작은 공간이 있었기 때문에 누구나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도전할 수 있었고, 여러 사업자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산업 생태계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골목상권을 넘어 ‘크리에이터 타운’으로
지역발전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일부 골목상권이 단순한 소비 공간을 넘어 새로운 브랜드와 콘텐츠를 생산하는 ‘크리에이터 타운’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논산을 비롯한 지방 소도시에서는 이러한 크리에이터 타운이 자생적으로 형성되기 어려운 구조가 존재한다. 김 의원은 가장 큰 원인으로 ‘크리에이터를 지속적으로 배출하는 기반의 부족’을 꼽았다.
“서울의 크리에이터 타운에는 사람과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학교와 커뮤니티가 있었습니다. 홍대에는 미술대학을 중심으로 한 예술인 생태계가 있었고, 이태원에는 외국인 커뮤니티가 있었습니다. 성수동에는 한양대학교와 소셜벤처 커뮤니티가 있었습니다."
반면 지방 소도시는 새로운 사업을 시도하려는 청년이 있어도 기술을 배우고 실험할 공간이 부족하다. 함께 아이디어를 나누고 협업할 동료를 만나기도 어렵다. 청년창업 지원사업이 개별 사업자에게 단기간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데 그칠 경우, 지속적인 지역 생태계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김 의원은 "그러나 다행히 논산에는 '건양대'와 '금강대'가 있습니다. 두 대학을 단순한 인력 양성기관이나 사업 수행기관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지역의 문제를 대학의 배움으로 연결하고, 그 배움을 다시 논산의 변화로 돌려놓아야 합니다."
"또한 지역문제 해결과 지역인재 양성이라는 공동 목표 아래 문제 발굴, 교육과 연구, 현장 적용과 평가 등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면 하나의 협력 경험이 다음 교육과 정책의 자산으로 축적돼 '크리에이터 타운'으로 형성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논산시와 같은 지방 소도시가 보유한 고유 자원을 브랜드와 산업으로 연결하지 못하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논산에는 서울에 없는 자원이 많습니다. 돈암서원과 명재고택, 종학당과 관촉사, 계백장군유적지와 강경근대역사문화거리 등 풍부한 역사문화유산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원이 일회성 관광상품으로 소비될 뿐, 로컬 브랜드의 원천이나 지역 크리에이터의 창작 기반으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역 자원이 지역 브랜드로 발전하지 못하면 지방의 상권은 결국 수도권과 똑같은 프랜차이즈로 채워진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상권이 형성되면서 지역 고유의 정체성은 약해지고, 관광객이나 청년이 찾아오고 머물 이유도 사라지게 된다는 설명이다.
대교·화지·반월동, 낙후된 원도심 아닌 ‘혁신의 토양’
김 의원은 논산의 대교동과 화지동, 반월동 등 원도심을 바라보는 관점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래된 건물과 좁은 골목을 무조건 철거하고 새로 짓는 개발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새로운 콘텐츠와 브랜드가 탄생할 수 있는 자산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이 도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도시가 산업을 만든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대교동과 화지동, 반월동에 남아 있는 오래된 건물과 소규모 공간,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형성한 분업 생태계는 낙후의 흔적이 아니라 혁신의 토양이 될 수 있습니다.”
김 의원의 주장은 명료했다.
논산 원도심을 살리기 위해서는 거리 정비나 건물 외관 개선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공간 안에서 실제로 활동할 사람을 키우고, 그들이 제품과 콘텐츠를 만들며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원도심의 공간을 활용해 청년 창업가와 예술가, 로컬푸드 생산자, 디자이너, 콘텐츠 제작자들이 낮은 비용으로 입주하고 협업하도록 돕는다면 논산만의 새로운 상권과 산업이 형성될 수 있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한 건물 리모델링이나 거리 정비를 넘어 지속적으로 사람을 키우는 정책이 필요하다. 로컬 브랜드 기획과 디자인, 온라인 유통, 영상 제작, 공간 운영 등을 배울 수 있는 ‘로컬 스쿨’을 마련하고, 창업자들이 제품과 서비스를 시험할 수 있는 공유공간도 조성해야 한다.
또한 기존 주민과 상인, 건물주가 함께 참여해 임대료 상승으로 창작자와 소상공인이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예방해야 한다. 어렵게 활성화된 골목이 대형 자본과 프랜차이즈 중심의 소비 공간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장기적인 관리체계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방의 자체적인 산업을 원한다면 산업단지만 먼저 만들 것이 아니라 도시를 함께 만들어야 합니다. 기업이 들어올 부지를 마련하는 것과 동시에 그곳에서 일할 사람들이 살고, 쉬고, 문화를 즐기며 새로운 사업을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성수동을 복제하지 말고 논산만의 동네를 만들어야”
김 의원이 제안하는 해법의 핵심은 ‘로컬 브랜딩’이다. 로컬 브랜딩은 외부에서 성공한 상권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오는 것이 아니라, 잠재력 있는 동네에 그 지역만의 역사와 문화, 사람, 자원을 결합해 새로운 공간과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전략이다.
“논산의 어느 동네를 제2의 성수동으로 만들겠다는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동네가 성수동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는 만날 수 없는 그 동네만의 무언가가 되는 것입니다.”
논산은 군과 국방, 농업, 딸기, 젓갈, 전통시장, 근대건축물, 문학과 선비문화 등 다양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자원을 단순히 축제나 관광상품으로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디자인과 식품, 교육, 출판, 영상, 공연, 체험산업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지방 소도시의 도시정책은 거대한 계획보다 ‘살고 싶은 동네 하나’를 만드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방 소도시에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하나입니다. 청년이 살고 싶어 하는 동네 하나를 먼저 만드는 것입니다. 청년이 머물고 새로운 가게와 브랜드가 생기면 방문객이 찾아오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집니다.”
그동안 지방도시는 산업단지와 기업 유치를 성장의 출발점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김 의원은 이제 산업정책과 도시정책의 순서를 다시 살펴야 한다고 주문한다. 기업을 유치하는 정책과 함께 사람이 머물고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할 수 있는 도시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결국 지역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건물의 높이나 산업단지의 면적만이 아니다. 청년이 작은 공간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는지, 지역의 오래된 자원이 새로운 브랜드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지, 주민과 창작자가 함께 동네의 정체성을 만들어갈 수 있는지가 지역 경쟁력을 좌우한다.
“논산이 가진 오래된 골목과 건물, 역사와 문화는 버려야 할 과거가 아닙니다.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논산만의 자산입니다. 지역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청년들이 살고 싶고 도전하고 싶은 동네를 만드는 것, 그것이 논산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여는 출발점입니다.”
김 의원의 주장과 같이 산업을 유치하는 도시를 넘어 사람이 머물고 도전하며, 지역의 자원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도시로 전환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지속 가능한 논산의 미래를 여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 전영주 편집장